[Opinion]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영화]

영화 < 빅 >. 멋진 어른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9.0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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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and soul~
 
피아노 씬으로 유명한 영화 <빅 (페니 마샬 감독, 1988)>. 미국의 국민할배 톰 행크스의 보송보송한 시절을 온전히 담아내는 이 영화는 하루아침에 30살의 몸을 갖게 된 천방지축 13살 조쉬의 이야기이다. 계산적으로 굴지도 않고, 남들의 시선마저 신경 쓰지 않는 조쉬를 통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진짜 어른스러움은 무엇인가’
 
모든 영화에서 그러하듯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가는 것은 주인공 조쉬이다. 하지만 두 번째 관람인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다른 쪽으로 눈이 갔다. 조쉬 바로 옆에 있는 또 한 명의 어른, 수잔에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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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의 회사동료이자 연상의 (좀 많이 연상의) 여자친구인 수잔. 질투심에 불타 일부러 훼방을 놓는 동료 폴로부터 조쉬를 지켜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름 뻥 뚫려있던 그들 연애의 탄탄대로는 조쉬의 거대한 비밀 앞에 가로막힌다. 실은 자신이 13살이라는 조쉬의 충격 고백을 콧방귀를 뀌며 흘려듣던 수잔, 한순간 모든 퍼즐조각이 맞춰지며 조쉬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는다. 결국 아이로 돌아가는 조쉬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건네기 위해 정신없이 뛰는 수잔. 그리고 마침내 둘은 서로를 마주한다.
 
“나랑 같이 가요!”
 
이별이 싫은 조쉬는 함께 어린이가 되자며 수잔의 손을 잡아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잔은 화사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 저리 줄을 바꿔가며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일일까. 수잔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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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겪었으면 됐어. 내 말 알겠어? ...알 리가 없지.”
 
 
 
20살로 돌아가고 싶어!

 
친구들과 만나면 종종 추억에 젖는다. 20살 때는 이런 게 재밌었고 저런 게 재밌었고,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고. 하여 수다의 끝은 항상 같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땐 좋았는데!’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시절 한 순간 쯤은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그것은 유년기일 수도 있고 청소년기일 수도 있으며, 나처럼 20살일 수도 있다. 나는 20살 때 참 재밌었다. 새내기 특유의 단합심으로 동기들과 신나게 어울려 놀았고 술도 진탕 마시고 게임도 열심히 해댔으며, 지금보다 여행도 훨씬 자주 갔다.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재미를 느낄 만한 일이 지금보다 그 때 훨씬 많았으니,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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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만약 지금, 내 앞에 졸타(영화 속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가 나타나서 나를 과거로 보내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돌아갈까? 웃기게도, 내 대답은 NO였다. 문득 뒤돌아보니 그 때가 마냥 좋지만도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비해 20살의 나는 외로움을 감당해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하여 당연히 찾아오는 외로움의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를 더욱 깊은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던 기억들이 난다. 그 뿐일까. 남에게 좋아 보이기 위해 종종 거짓말도 했으며, 내 기분조차 제대로 컨트롤 못해 타인에게(주로 그 때 당시의 남자친구에게. 덕분에 이 친구가 고생 꽤나 했다.) 맡겨버리는 어리숙함도 있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진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때문에 자존감도 낮았다.

까놓고 보면 마냥 핑크빛도 아닌데 현재의 내가 그 때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시간은 ‘미래’라는 것과 달리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고민거리도, 위협도 되지 않는 그저 ‘지나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없다.


만약 돌아간다고 해도, 그곳은 유토피아가 아닐 것이다. 물론 현재의 고민에 비해 그 무게가 가벼울 수는 있다. 하지만 어른의 세상에 들어간 조쉬가 머지않아 바쁘다며 허둥대는 모습을 닮아버린 것처럼 나 역시 곧 20살의 환경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럼 결국 끝은 똑같다. 그리스신화 속 거대한 하늘을 짊어지느라 고통스럽게 찌부러지는 아틀라스처럼, 그렇게 일그러질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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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이 조쉬만큼 어른스럽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수잔은 이미 알고 있다. 그 때도 그 때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여 그녀는 괜한 미련을 갖기보다 그 과거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현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시기하는 직장동료 폴이 대체 그 놈의 어디가 좋냐며 툴툴대자 그에 대한 수잔의 대꾸는,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영화의 최고 명대사이다.

 
He’s grown up.
(그 사람은 어른이야.)

 
조쉬를 ‘어른’으로 대우받게 만드는 것은 솔직함이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지만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압박감에 휩싸여 숨겨놓기 바빴던 천진함, 멍청함, 유치함을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당당하게 꺼내놓는 용기가 조쉬를 어른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수잔을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겸허함이다. 분명 어린이의 그것보다 훨씬 묵직할 어른의 무게를 담담히 견뎌보겠다는 의지가 수잔을 어른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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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견뎌냄의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더 깊어진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러했다. 20살의 나에 비해 현재의 나는 자존감도 높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히 알며, 지켜내야 할 나만의 소신이라는 것들도 몇 개 생겼다. 나를 자연스럽게 꾸미는 법을 알게 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하여 난 그냥 지금이 좋다. 과거의 모든 순간에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항상 그 때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왔다. 하여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피아노 연주 씬을 링크한다. 좋은 건 함께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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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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