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판소리 가락과 서양 이야기의 이색 하모니 - 판소리 오셀로 @정동극장

판소리 가락과 서양 이야기의 이색 하모니
글 입력 2018.09.0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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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가락과 서양 이야기의 이색 하모니"

판소리 오셀로
- 동양+여성의 눈으로 재해석된 오셀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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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내용에 앞서


신라시대 처용의 설화와 '오셀로'를 엮어 원작에 대한 재해석을 펼친다. 처용과 오셀로 두 이야기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이 두 이야기를 엮어볼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였는데 처용의 이야기를 서두에 배치한 뒤 이어서 오셀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극 중 극 구조에서 처용과 오셀로, 이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주변의 다른 외모, 이방인이지만 훌륭한 능력으로 지위와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던 그들. 하지만 서로의 마지막은 확연히 다르다. 오셀로는 질투, 분노, 의심에 휩싸여 비극적 결말을 맺지만 처용은 통 큰 양보를 통해 상대를 무너뜨린다.

닮은 듯 다른 이 두 남자의 운명이 엇갈리게 된 지점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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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여성'이 바라본 '서양+남성'


희비쌍곡선의 <판소리 오셀로>에서 소리꾼 단은 남성 중심의 관점을 해체시키고자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당대 가부장적 세계관이 만든 산물이다. 여성은 대게 창녀 혹은 악인으로 표현되며 수동적이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또렷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며 여성의 성적 욕망은 억압받아야 하는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약하고 위축된 여성으로 묘사되어 온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는 남성(남편 오델로)가 야기한 비극적 상황에 대해 도망치지 못하고, 저항하고 자신을 변호할 힘조차 없다. 남성 인물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내 묻히며 끝까지 불완전하고 미숙한 채로 표현된다.

하지만 원작이 가진 정서에 반하여, 기생 설비 '단'이 풀어나가는 '먼 데서 온 이야기' 속 오셀로는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을 대비시킨다. 동양의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처용의 입장을 관조한다. 세속적이거나 일반적인 한계에서 벗어난 불교적 사상을 지닌 여성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색다르다.

화자 단은 "질투란 짐승에게 결코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셰익스피어 원작에는 없던 내용으로 지극히 동양적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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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포용력이
공연예술 전체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막이나 장이 아니라 ‘대목’ 중심의 서사가 가진
독특한 느슨함이 있거든요.

-중앙선데이 인터뷰 중




이야기꾼 설비가 들려주는 '먼 데서 온 이야기'


신라시대의 설화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신명나게 풀어나가는 화자 '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생, 즉 설비(設妃), 직업 이야기꾼이다. 비록 원작 내용과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판소리로 전하고자 채택한 이야기의 정체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서양의 이야기라는 것에서 흥미로웠다.

<판소리 오셀로>는 막의 구분이 없기에 장면의 전환이 따로 없이 인터미션 없이 8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여러 등장인물 대신 단 한 명의 소리꾼만이 등장한다. 이 공연은 1인극 창극이기에 단은 주인공 오셀로, 이아고 그리고 데스데모나로 시시각각 변하며 소리는 물론 노래와 연기까지 소화한다. 아무래도 한 명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쉽지 않았을 텐데, 관객들은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다. 게다가 판소리에 맞게 아쟁, 가야금, 장구, 북, 피리등으로 이뤄진 다양한 연주 또한 눈 앞에 펼쳐진 소리와 딱 맞은 짝꿍같은 느낌을 받았다.

'판소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이 판소리의 포용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판소리의 대중화 혹은 현대화를 도모한 것은 아니다. 작품 내용을 잘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매게채일 뿐, 판소리와 동등하게 무용이나 연기가 들어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고 동시대적 감성의 표현욕구가 먼저이다.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하였던 판소리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었던 이번 공연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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