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캐나다] '시선'의 고통

글 입력 2018.09.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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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머리여서 고객에게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현재 한국에서 하고 있는 드라마 ‘내 ID는 강남미인’에서도 이러한 실상들이 담겨 있다.


나는 짜증이 났다.



누구를 향한 관심? '시선'의 불편함

나를 보는 사람들, 남을 보는 사람들, 누군가를 향한 시선….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며 우리는 누군가의 ‘바라봄‘이 익숙해졌다. 나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눈빛이 부정적인 의미로 느껴졌었다. 외모에 집착하고 누군가의 모습을 판단하는 것에 대하여 당연하게 생각하고 입 밖으로 쉽게 내뱉는 사회에 살아가며 ‘왜 그렇게 남들에게 관심이 많은 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강해져 가고 있다.

사실 누군가의 시선은 단순히 ‘꾸며지지 않은 외모‘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큰 흉터를 가지고 있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다르면 한국사회의 지옥 같은 바라봄은 ‘다름‘을 가진 누군가를 쫓아 다니며 불편하게 만든다.


캐나다에서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이 외곽에 있는 지역이어서 항상 동네 멀리까지 가는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에 오랜 시간 있다 보니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행동을 보게 된다. 바쁜 출근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에서 아침 버스를 타면 화장을 하며 손이 급한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캐나다 버스의 아침 풍경은 책을 읽고, 휴대폰을 하고, 버스기사 또는 다른 승객과 대화를 하거나 한다.

화장을 하기 싫어도 괜히 그날 한 소리 듣기 싫어 항상 버스에서 대충이라도 했던 나에게 너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들은 남의 겉모습에 대해 쉽게 말하는 것을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대화를 하며 사람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라는 생각이 대중적이다.

‘흉터’를 가진 사람들이 콤플렉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만큼 그들에게 신경 쓰이는 부분인지 나는 미쳐 알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캐나다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만들어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시선'은 더욱 깊은 흉터가 된다_ 나의 에피소드

평소에 요리도 못하는 내가 캐나다까지 가서 혼자 밥을 해먹으려니 항상 곤욕이었다. 어느 날, 만두를 하나 사와 먹으려고 했는데 이때, 사고가 터져버린 것이다.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있던 만두를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의 기름에 넣은 순간이었다. 고여있던 뜨거운 기름과 차가운 만두가 만나 기름이 얼굴에 다 튀어 버린 것이다.  찬물로 얼굴을 씻고 괜찮겠지 했다. 10분.. 20분.. 얼굴은 뜨거워져만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집 앞의 약국을 뛰어가 약사에게 말했고 약사는 괜찮다며 약을 주었지만, 이미 얼굴의 반 이상이 화상으로 덮은 뒤였다.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랄만한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그날은 화상흉터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무서움 반이었다. 나머지 반은 레스토랑 서버로 일 하는 나였기에 ‘내일 이 얼굴로 어떻게 일하지?’ 였다.

그러나 내가 출근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느꼈다. 캐나다는 ‘서버‘라는 직업이 손님과 어느 정도의 관계를 형성하며 항상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렇기에 단골손님이든, 누구이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형성하곤 한다.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 손님의 80%정도가 캐네디언, 백인이었다. 분명히 모두가 내 얼굴을 보면 알텐데, 오늘 하루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 누구도 나의 얼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다. 단골손님들 마저도.

‘정말 남에게 무관심하구나‘ 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에 몇 번이고 나를 보며 놀라며 ‘얼굴이 왜그래?’라는 말을 들었으면 나는 더욱 신경 쓰이고, 모두가 날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걸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심할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 당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다름'이 없는 사회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너그럽다고 해야 할까? 그들이 사회에 정착하고 모두와 어울려 살수 있는 환경이다. 장애아동의 부모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 저곳 아이와 함께 다니며 사회에 살아가는 질서를 가르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소란들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종종 내가 일하던 가게에 자폐 남자아이와 부모가 들어와 메뉴를 읽어보고 ‘오늘은 이게 먹고 싶니? 메뉴를 하나씩 봐봐’ 라며 레스토랑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을 시켰고, 부모 또한 레스토랑 직원에게 ‘아이가 궁금해 해서요. 메뉴만 잠깐 보고 나갈께요’ 라며 정중한 한 마디만을 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알만한 가족의 상황이니 직원이나 손님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나는 ‘남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으로 이미 장애부모는 힘들 것이고, 시민이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보편화 되어있다고 느껴졌다. 그냥, 그들은 그 아이가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사람 자체를 존중하며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관심 속의 무관심’은 그들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성장 발판을 만들어주고, 사회 정착에 도움을 준다.


빠르게 발전하는 우리 한국인 만큼, 이러한 긍정적인 부분도 하루 빨리 받아들여져 누구 할 것 없이 사회에서 함께 정착하며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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