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삶과 죽음의 철학, '이방인' [공연]

죽음 앞에서 삶의 가치를 찾다
글 입력 2018.09.0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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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라는 시험이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수능 같은 시험인데, 객관식이 없고 논술형으로만 출제된다. 밥 벌어먹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학과가 '가장 낮은 커트라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과' 정도로 치부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 문제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라고 한다. 매년 "우리는 진실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의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가?", "인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와 같은 심오한 문제들이 출제되고,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을 논술식으로 적어 내려간다.

이처럼 철학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인들의 생각을 지배한다는 출판사 '갈리마르'의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이 연극의 원작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왜 이 책을 좋아하는 걸까? 어떤 철학을 품고 있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지하로 향하는 극장 입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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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억양, 꼿꼿한 태도,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리고 내뱉는 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객석에서 만난 뫼르소는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에서도 타자로 자리하고 있는 듯한 이방인이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을 겪은 인물에게서는 일반적으로 나오지 않을 법한 반응.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자신과 큰 상관이 없는 제 3자의 일인 양 그날의 날씨, 귀찮음, 편의에 대해 말하는 그의 독백은 인물과의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기묘한 야릇함을 느끼며 뫼르소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왜 이 작품이 철학의 나라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작품을 보며 수많은 질문을 머릿속으로 쏟아내게 되는 것이, 진정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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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알제의 선박 중개 사무소에서 일하는 뫼르소는 어느 날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이몽과 친해진다. 레이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이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뫼르소는 레이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이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이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으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이몽을 찌른 아랍인을 다시 만난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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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평범하지 않다. 자신의 삶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마치 자기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듯 초연하고 무관심하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별다른 슬픔을 표하지 않고, 애인인 마리가 결혼에 대해 말하자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러자"는 식의 답을 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다. 그랬던 그의 평온했던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레이몽의 계획에 도덕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고민 없이 동참했던 그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사람을 살해한다. 푸쉭 푸쉭 소리를 내며 무대 전체를 뒤덮는 아지랑이 속에서 뫼르소는 관객에게 처음으로 흥분과 불안을 표정과 몸짓으로 표출한다.

연극 '이방인'은 엄마의 죽음-아랍인의 죽음-자신의 죽음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뫼르소에게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각각의 죽음 앞에서 이방인 뫼르소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아 나간다. 죽음은 뫼르소에게 두려움, 삶에 대한 미련을 선사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런 그의 변화는 재판을 받는 장면, 신부의 방문 장면, 마지막 감옥에서의 독백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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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던 그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다. 마침 뫼르소의 재판 바로 다음 재판이 화제가 된 존속살인 사건인 바람에, 엄밀히 말하면 사건과는 연관이 없던 뫼르소 어머니의 죽음이 아랍인 살해 사건과 엮여 버린다. 검사와 변호사가 각각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두고 언쟁을 벌이거나 관객석을 향해 호소하는 동안,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것은 모두 태양 때문이었다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그들에 의해 철저히 소외된다. 자신의 사건임에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재판장의 사람들에 분노를 표하면서도, 막상 말해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는 그의 말은 재판이 뫼르소가 이방인-삶의 주체 사이에 위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재판 이후 감옥에 갇혀 사형선고일을 기다리던 뫼르소는 그때그때 필요한 욕구를 해소하고 살았던 과거와 달리 감옥이라는 제한적 공간에서 그 모두를 할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 자신을 찾아온 신부와의 대립씬에서는 그의 변화가 특히 두드러지는데, 화를 내고 악을 쓰며 욕지거리를 해대는 그의 모습은 신부의 퇴장 이후 뫼르소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을 불러오는 터닝포인트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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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뫼르소는 세상의 고요함을 정다운 무관심으로 느끼고 자신을 이방인이 아닌 세계와 닮은 형제로 느낀다. 또한 행복하다고 느낀다. 죽음을 통해 삶의 희망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삶과 언젠가 이어질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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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뫼르소라는 인물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재판에서의 검사의 태도는 바람직한가? 그렇다고 뫼르소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아야 하는가? 뫼르소를 찾아온 신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뫼르소를 살인에 이르게 하는 저 태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에 뫼르소가 많은 구경꾼의 증오의 함성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수많은 질문이 있었고, 스스로 나름의 해답을 구해보기도 했다. 딱 이거다, 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원래 철학적인 게 다 그런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은 관객을 살아있게 한다. 철학적인 질문에 답함으로써 스스로 사고할 수 있음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작품은 독자가, 관객이 작품을 여러 번 찾게 만든다. 여러 번 봐도 아리송하고, 한 번만 더 보면 알 것도 같고, 곱씹을수록 그 의미를 더해 가기 때문에. 보다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도 이방인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이방인
- L'Étranger -


일자 : 2018.08.21(화) ~ 09.16(일)

시간
평일 20시
주말 15시
월요일 쉼

장소 : 소극장 산울림

티켓가격
전석 40,000원

주최/주관
극단/소극장 산울림

관람연령
만 15세이상

공연시간
105분




문의
극단 산울림
02-334-5915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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