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의 기능

글 입력 2018.09.0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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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방인일까


주인공 뫼르소는 참 특이하면서도 가장 평범한 사람이 아닌가싶다. 이 작품의 제목인 ‘이방인’은 곧 뫼르소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감정과 관례에 있어 굉장히 초연한, 그래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방인이다. 모든 것에 무심하고 그저 숨을 쉬고 있기에 삶을 영위하는 인물. 하지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며 자신의 세계가 뚜렷한 인물이기도 하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을 전보를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러 양로원에 가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담배도 피고 커피도 마신다. 그리고 이 행동들은 나중에 그의 재판에서 그의 인간성을 의심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사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뫼르소를 감상하다 보면 그의 행동이 모두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는 마리에게 난 아무래도 괜찮지만 “네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 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너무나 이해가 된다. 뫼르소를 지켜보다보면 우리가 감정을 학습당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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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도 가끔 연극의 일부가 되었다


요즘은 관객을 연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정도도 더 세지고 있다. 아예 무대 안에 관객석을 만들거나, 관객의 의견대로 결말이 정해지거나, 심지어 관객이 배우를 따라 돌아다니는 형태의 연극도 존재한다. 나는 이 예시들처럼 관객이 무언가를 해야만 연극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극 이방인에선 간접적이지만 굉장히 효과적인 연출로 관객석을 활용한다.

뫼르소와 마리가 페르난델 영화를 보는 장면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둘이 관객석을 향하여 앉거나 대각선으로 앉거나 관객석을 등지고 앉아도 영화를 보는 연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연극에서 뫼르소와 마리는 관객석을 등지고 앉아 벽에 빔 프로젝터로 쏘아진 영화를 보았다. 순간 극장은 영화관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배우들을 보자 자연스럽게 시선은 배우가 아닌 영화로 향하게 되었다. 흑백의 프랑스 코미디 영화는 몰입감을 더욱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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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재판장이다. 검사가 “배심원 여러분” 이라고 했을 때, 극장은 법원이 되었고 관객들은 배심원이 되었다. 재판 중에 뫼르소가 관객석으로 올라와 맨 뒤에서 재판을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자신이 주인공인 재판을 지켜보는, 그것도 제일 뒤에서 지켜보는 제 3자가 된 것 같은 뫼르소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뫼르소는 뒤에 서 있다가 객석과 객석 사이의 계단에 배심원 혹은 재판 구경자가 된 관객들과 나란히 앉아있기도 한다.

관객과 아이컨택을 하는 장면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원작처럼 연극에도 뫼르소의 독백이 주가 되는데 이런 요소들을 넣어 관객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그건...태양 때문이었습니다.


뫼르소(Meursault)는 바다(Mer)와 태양(Soleil)을 조합한 남자 이름이다. 바다에 놀러갔다가 태양을 보고 살인을 저지른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살인 행위를 불러일으킨 동기에 대해 직접 소명해달라는 재판장의 말에 뫼르소는 그건 태양 때문이었다고 답한다. 대답 후 이어진 변호사의 변론이 끝난 후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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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가 샘으로 가서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은 아주 세세히 묘사되어있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그러자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칼을 꺼내더니, 햇빛 속에서 내게 들이댔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자 마치 그것이 긴 칼날이 되어 내 이마까지 와 닿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눈썹 위에 모였던 땀방울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터운 막을 만들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 내 눈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흔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마치 온 하늘이 활짝 열려 불같은 비를 쏟아 붓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되어 손으로 권총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건조하고 요란한 소음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 장면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번쩍한 햇빛 조명과 하얀 안개는 햇빛에 취한 당시의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조명은 너무 노랗지도 하얗지도 않고 진짜 햇볕이 뜨겁게 내려쬘 때의 느낌이었다. 첫 공연 전날까지 많은 시도 끝에 만들어낸 조명이라고 한다. 중요한 독백이라 뫼르소의 얼굴이 잘 보이게 했을 수도 있지만, 조명과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뫼르소의 불안한 얼굴이 상황의 긴장감과 그의 심리를 더욱 잘 전달해주었다.



사형 선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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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뫼르소적인 톤을 한결같이 유지하다가 사형 선고 후에 톤은 물론 목소리까지 바뀌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막상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자 감정들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인가. 하이데거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뫼르소는 살인과는 상관없는 자신의 사생활이 재판에서 활용된 것과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의 부조리함, 자유를 박탈당한 데서 오는 고통, 그리고 사제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 다양한 감정의 폭풍 끝에 그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평온함을 느낀다. 세 가지 죽음과 각각의 죽음을 대하는 뫼르소의 태도가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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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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