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vew] 영화가 머무르는 자리, 프리즘오브(PRISMOF) [도서]

글 입력 2018.09.08 21: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영화관의 어둠에 잠겨 
수천만 번째 태초의 빛이 스크린에 떨어지길 
숨죽여 기다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살아보기를 결심하고 있다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
책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김혜리 저
 

영화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영화는 아직 내게 없는 메시지를 쥐고 있는, 언제든 내게 그것을 던져줄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왔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 무엇을 결코 얻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에, 영화가 시작하기 전 마음은 늘 설렌다. 영화에 따라 감정적인 기대치는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랬다. 모든 영화가 나의 기대에 늘 확실한 보답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기대하지도 못했던 무엇을 던져주는 영화를 만나며, 또 그런 영화를 만나자는 마음으로 다시, 영화관에 들어간다.
 
영화를 본 뒤 '얻어낸 것 같은' 메세지는 대체로 불분명한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맴도는 무엇은 어떤 감정이기도, 단어이기도, 기억이기도, 장면이기도 했다. 때로는 그런 불분명한 것들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럴 때면 글을 썼다. 그러다 보면 나를 사로잡은 무엇에서 천천히 벗어날 수 있었다. 느낌을 언어로 기록하면서는, 논리가 생겼다. 나도 알지 못했던 장면의 개념이 서서히 잡히는 희열은 컸다.
 
글을 쓰면서 잘 모르겠는 부분을 알기 위해 책을 찾아보고, 평론가의 글도 찾아 읽었다. 정말 영화를 보고 감탄할만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 영화적 해석을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았다. 널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하나 똑같은 것이 없었다. 말 그대로, '스펙트럼'이었다. 무슨 색이라 정의하는 것보다, 나는 그 스펙트럼 사이를 유영하기를 즐겼다. 영화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여러 빛깔이었겠지만, 그래서도 영화가 작용하는 범위는 그 모든 빛깔이 머무르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

20180908_210426.jpg
 

이런 내게, '라이트-프리즘-스펙트럼'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 잡지 '프리즘오브'는 그래서 더 반가웠다. 영화 <파수꾼>에서 의미가 있는 제반 환경을 알아보고(라이트), 본격적으로 영화적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프리즘), 이 영화가 각자의 시선으로 뻗어나갔을 때 어떤 색을 띠는지(스펙트럼), 차례로 살펴본다.
 

1. 라이트
"라이트 섹션에서는
백색광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색깔을 띠기 전,
어떤 빛이 프리즘에 닿았는지 살펴본다."
 
2. 프리즘
"<파수꾼>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캐릭터'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영화의 주 갈등은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다. …
프리즘 섹션에서는 이러한 캐릭터들의 심리를 포함해
영화적 구성을 살펴본다."
 
3. 스펙트럼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채로운 색으로 펼쳐지는 빛의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시선과 다각적인 해석을 통해
<파수꾼>이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구성이라니. 보통의 잡지에서 여러 섹션을 포괄하는, 혹은 관통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나 줄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종종 잡지를 읽다가 길을 잃는다. 아니, 애초에 애독자가 아니면 어느 섹션을 보고 있는지 간과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 잡지가 지닌 매력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잡지도 무분별한 구성을 의도하거나 지향하진 않는다, 잡지의 아이덴티티를 위해서라도. 그런 면에서 이 잡지는 영화라는 매체와 영화 이후에 일어나는 작용을 은유할 무엇을 아주 잘 찾아내, 설득력있는 방법론을 잘 구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issue_09_cover_regular.jpg


이번 9호에서 다루는 영화는 2011년 개봉한 <파수꾼>이다. 표지에는 '파, 수, 꾼' 세 글자가 마치 수정 테이프를 직직 그어 놓은 그래픽에 해체된 이미지로 나타나있다. 이런 표지 디자인은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 이라는 원래 '파수꾼' 정의를 묘하게 배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를 경계한다는 것은 원래 있는 모습을 지켜낸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표지의 조형요소가 불규칙하게 흩어진 이미지보다 잘 정리된 이미지가 어울릴 파수꾼은, 그러나 표지를 보니, 아마도 본분을 다하지 못한 모양이다.
 
왜, 실패했을까.
 
이 '왜'에 관한 화살을 특정한 캐릭터에게 겨냥해봤자 소용없다. "영화 <파수꾼>은 마치 수평이 정확히 맞는 저울 같"기 때문이다. 마치 기태의 아버지가 아이들의 세계에 한 발자국도 진입할 수 없었던 것처럼, '왜'에 관한 단서를 특정한 캐릭터에게서 얻어내려고 한다면 영화가 말하는 (하나가 아닌)진실에 가 닿지도 못한 채 등을 돌려야 한다.


“인과관계에 의해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서사에서 죽음의 동기와 실체가 모호함에 빠지는 서사로의 전환, 즉 약화된 동기화는 영화의 주제와 깊이 결부된 문제이다. 사소한 오인으로 붕괴되는 관계의 연약함을 성찰하기 위해 이 영화는 거대하고 명확한 실수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균열에 의해 갈라지는 관계를 보여주려 한다.” (61쪽)

“서사의 틈새를 메우지 않고 열린 채로 남겨둠으로써 관계의 모호성이라는 주제를 우직하게 밀어붙인다.” (62쪽)
 
   
*

20180908_210622.jpg
 
   
관객은 은연중에 어떤 믿음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넌다. 자살자는 피해자인 희준일 거라는 믿음, 기태의 죽음에는 숨은 가해자가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게 누군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러나 영화는 그런 믿음을 하나씩 거절한다. 단지 묘사할 뿐이다. 기태와 희준과 동윤이 있었고, 그들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무너졌다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PRISM’섹션에서 각 캐릭터에 부여된 소제목처럼, 우리는 각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해볼 수 있다고. 최근 읽었던 최은영 작가의 책 <내게 무해한 사람>도 비슷한 맥락에서 떠올랐다. 여러 단편이 엮인 이 소설에서는, 한때 모든 마음을 내어줬던 친척이 떠나고, 연인과 헤어지고, 그렇게 가까이 마음을 나눴던 친구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비극이, 하지만 현실에서도 흔해서 비극인지도 모르겠는 헤어짐과 닿지 않는 마음이 패턴처럼 반복된다. 관계는 그렇게 모호하고, 연약하다.
      
*
  
20180908_211027.jpg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기태를 제대로 변호하고, 다른 한 명을 가해자라 지목하고 싶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관객 서베이 결과도 보여주듯, 기태는 가장 안타까운 결말을 맞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입한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나는 나만의 이유로, “각자의 자리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무게추를 지키는 접시 위에 관객의 삶을 한 움큼 올려놓아야 비로소 기울기 시작"하는 이 게임에서 과감히 기태의 저울에 무게를 주고, 가만히 희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20180908_232431.jpg
 

관객 서베이 5번, ‘기태의 자살은 누구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시나요?’에 답을 ‘희준’이라 체크한 나는 어떤 면에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이미 실패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준’을 지목한 사람이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희준의 회피는 ‘무시’와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희준의 눈에 두려움이 비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짜증스러워하는 경우가 잦았다. … 이처럼 희준의 회피는 도망이 아닌 멸시에 가깝고…” (66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권력자는 기태였고, 감정적인 측면에서 권력자는 희준이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기태의 목소리, 떨리는 입술, 씰룩이는 볼을 쳐다보는 희준의 냉담한 눈빛과 건조한 표정은, 그래서 기태가 희준에게 행사한 무력만큼이나 폭력적이었다.
 

희준: 아까 무슨 얘기 한거야?
기태: 응? 뭔 소리야?
희준: 방 안에서 보경이랑 얘기하던데.
기태: 봤어?
희준: 봤으니까 묻지.
기태: 음, 별 얘기 안했어. 너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야 오해하지 마라 진짜.
 

중국집에서 대놓고 마음을 표현하는 보경의 행동에 난처하게 응대하는 기태의 모습이 왜 희준에게 보이지 않았던 걸까. ‘오해하지 마라’고 말하는 기태의 마음이, 동윤도 알고 관객도 알겠는 그 마음이 희준에게 왜 그렇게 닿을 수 없었을까.

기태를 잘 모르는 희준의 무지를 채운 건 ‘자존심’이었다.(78) 찬찬히 생각해보니, 나는 동윤이 기태에게 느낀 배신감은 인정하지만, 희준의 자존심은 알량하다고, 이기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희준의 마음을 그렇게 배려했던 기태인데, 왜 몰라. 너도 같이 기찻길에서 걷고 웃으며 떠들었잖아. 맞을 때 기태에게 친구인데 한 번이라도 왜 그러는지 묻지 그랬어. 기회는 많았을텐데. 너도 알고 있었잖아, 이미 기태는 어딘가 뒤틀린 애라는 걸, 감정적으로 너는 기태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렇게 완고한 마음으로 기태를 대한거지 너. 왜인지 희준만 끊임없이 추궁하는 나였다.

   
20180908_211341.jpg


하지만 결국 ‘희준은 여전히 기태를 잘 모른다.’는 사실에, 희준을 향해 겨냥한 나의 화살을 조용히 내려야 했다. 나는 희준처럼 어떤 무력에 압도당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고, 그런 점에서 나는 희준의 상황을 모른다. 희준이 "선택권이 없다"고 느꼈다면, 그 이유를 왜 기태에게 정면으로 묻지 않았는지 아쉬워하는 건 오로지 나의 욕심일 뿐이리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 한 기태의 여린 감정이 아무리 안쓰럽고 안타까워도, 희준 쪽에서 더 노력하길 바라는 건 단지 기태를 편들고 싶은 나의 이기심일 것이라는 걸, 희준에게 노력할 의무는 없었다는 걸, 프리즘오브를 읽으며 인정해야 했다.

아, 그래도 화살은 내렸지만 내 눈은 여전히, 본능처럼 희준을 쳐다본다. 기태의 죽음 후에도 괴롭지 않은 희준은 고등학교 졸업 후 괴로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겠지. 이 사실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차라리 동윤처럼 "긍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닌 성장"(85)을 하더라도, 좌절해서 완전히 넘어져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어른이 되는 게 낫다. 이미 인간은 불완전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면, 그런 전제하에 나는 희준보다 동윤같은 어른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벌레같은 사람인지 아는, 선의를 베풀어도 다른 이에게 악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신을 의심하며 모호한 관계를 두려워할 줄 아는,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어른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다시 다른 벌레같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인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게 나의 스펙트럼이다.

*

잡지 프리즘오브는 ‘누구의 편을 들기를 포기’한 영화 <파수꾼>의 각 캐릭터의 완벽한 균형을 다시 한 권의 잡지 안에 균형 있게 담아내는 한편, 이 영화가 독립영화 계보에서 어떤 의미인지 정리하고, 이 영화를 보는 의견에 관해 캐릭터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의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등,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경험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영화는 각자의 프리즘을 통해, 수없이 많은 스펙트럼으로 뻗어나간다. 그 모든 곳에 영화가 머무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프리즘오브를 통해 잘 모르는 영화는 찾아보고 싶고, 잘 아는 영화는 더 잘 보고 싶다.





프리즘오브(PRISMOf) 9호 <파수꾼>
 
[ISSN] 2586-7377
[ISBN] 979-11-963742-0-4 03680
 
[정가] 15,000원
[페이지수] 160쪽
[판형] 175mm x 250 mm
[출판일] 2018년 7월 30일 발행
 
 
[책 소개]

프리즘오브는 매 호 한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는 계간 영화잡지입니다.
Prism과 Of의 합성어로 영화에 대한 프리즘,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프리즘을 담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여 관객의 영화적 경험을 확장시키며 소장가치 있는 매거진을 지향합니다.


프리즘오브 9호 <파수꾼>

<파수꾼>은 2011년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제작 지원비 5,000만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가 이렇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독립영화계에, 또 한국 영화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일입니다. 프리즘오브 9호에서는 각각의 인물들과 영화의 촬영기법 및 내러티브를 분석하며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힘을 찾고, <파수꾼>의 이야기를 가부장적 남성사회와 청소년의 시선 등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봅니다. 또한 인터뷰, 기고글 등의 기사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와 미래, 독립영화의 역할을 조명합니다.

 
[저자] 프리즘오브 편집부
[출판사] 프리즘오브 프레스 (PRISMOf PRESS)

프리즘오브 프레스는 영화소비채널 무비즈댓매터(movies that matter)에 소속된 디자인 프레스입니다.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모여 영화와 관련된 책을 기획, 디자인, 출판하며 시각예술과 텍스트가 어우러진 컨텐츠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목차]

[LIGHT]
24 한국독립영화 계보
30 독립영화, <파수꾼>
34 모두의 이야기
 
[PRISM]
44 기태 - WE NEED TO TALK ABOUT HIM
48 아들이 죽었다
50 <파수꾼>의 공간: 기찻길, 집, 학교
58 회상하는 화자들의 이행: 정보의 심도가 주는 플롯의 효과
64 희준 - 도망자는 모두 비겁한가
68 <파수꾼>의 촬영: 키노아이로 바라본 파수꾼
76 공의 궤적
82 동윤 - 어른이 된다는 것
 
[SPECTRUM]
92 <파수꾼> 관객 서베이
94 인터뷰 - 청소년 대담
108 이행기(liminality)의 소년들과 ‘거울’
114 나는 남고 출신입니다
120 여기 또다른, <용서받지 못한 자>
124 인터뷰 - 유지영 영화감독
136 소년들은 자랄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8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