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완전한 파수꾼들의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18.09.0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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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독립영화를 접했다. 그것도 독립영화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파수꾼’을 보았다. 이 영화는 여느 청소년물과는 달랐다. 착하고, 우등생이고 모범생인 애들과 대립하는 못되거나 일진인 학생들로 나뉘는 이분법적 캐릭터 구조가 아닌 조금 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이 영화는 ‘소년기’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렸을 때 아프고 상처를 많이 받아야 나중에 성장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파수꾼’의 소년들은 자라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파수꾼의 사전적 정의는 ‘경계하며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번 프리즘오브 호에서 손예은 에디터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파수꾼이라고 본다면, 인물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세상과의 경계선 안팎을 넘나드는 각자의 자아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어른이 되어도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아를 아직 불완전한 존재들이 어떻게 미숙하게 그리고 서툴게 지키려고 고군분투했는지 이 부분을 유심히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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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이 영화에는 기태, 희준(별명: 베키), 동윤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기태는 반에서 잘 나가는 일종의 ‘짱’이고 희준은 나름 공부 좀 하던 기태와 같은 반이자 제일 친한 친구다. 동윤은 기태와 다른 반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였고 이 셋은 철길에서 캐치볼을 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잘못되었는지, 희준은 점점 기태를 피하게 되고 결국 희준은 전학을, 동윤은 자퇴를 선택한다. 그리고 기태는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복구할 수 없게 된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셋의 우정이 파국을 향해 가는 순간, 결국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모든 인물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한 사람이 크게 잘못한 것도, 못한 것도 없었다. 그저 애정 표현이 서툴렀고, 그걸 이해하고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렸을 뿐이었다. 이번 프리즘오브호가 좋았던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프리즘 섹션에서는 캐릭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선인과 악인을 나누지 않는다. 기태, 기태의 아버지, 희준, 동윤 캐릭터와 이에 더불어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 플롯의 효과, 카메라 구도, 야구공을 통해 본 셋의 관계를 자세히 분석하며 영화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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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태 캐릭터 분석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부분은 어쩌면 ‘희준이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부분이었다. 위계질서가 짙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기태는 권력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다.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사실 그는 ‘폭력’을 쓰는 것에 있어 큰 간극을 느끼는데 이는 나중에 기태의 패거리들이 동윤을 집단 구타할 때 하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인해 집은 더 이상 기태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했고, 또한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학교와 친구들이 그에게 전부였기에 제대로 된 사랑의 표현을 알지 못했다. 애정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타인의 인정에 목매달고 상대방의 거부에도 굉장히 민감하다. 그렇기에 그는 희준을 괴롭히지만 또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미안하다’라고 얘기했으니 그에게 ‘원래대로’의 모습을 강요한다.

기태는 가해자이다. 그렇지만 뼛속까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희준이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기태의 결핍을 이해해주지 못한 희준을 잠시 탓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기태는 여전히 ‘가해자’의 입장이고 이 점은 ‘나는 남고 출신입니다’를 적은 배태랑 에디터가 쓴 대로 분명 잘못된 점이다. 비록 표현의 방법이 서툴러서, 마음이 어긋났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순간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기태의 지나친 관심은 희준의 자아를 지키는 경계를 훼손시켜놓았고 결국 희준은 전학을 감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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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희준은 어떤 캐릭터일까. 기태와 비슷하게 피해자이지만 완전히 피해자로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전학’을 간다고 얘기함으로써, 기태에게 더 이상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면서 그에게 큰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에디터는 희준을 ‘도망자’로 본 듯하다. 그리고 ‘도망자는 비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희준은 기태의 괴롭힘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회피하고 무시한 캐릭터가 맞다. 그러나 그는 기태의 아버지를 만나고, 동윤이를 추운 겨울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설득하며 다시 그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도망자였지만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닌 셈이다. ‘희준의 도망은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남아준 아이들의 흔적이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희준의 선택은 기태와 동윤에 비해 매우 평범했고 보통의 아이들이 할 만한 선택이었기에 그에게 더욱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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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윤은 두 캐릭터에 비해 애매한 위치에 놓인 캐릭터다. 기태와 희준의 싸움에 휘말리지도, 그렇다고 그 둘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은 애매한 중재자였다. 에디터는 ‘어른이 되어간’ 동윤이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까지 기태 곁에 있었기에 동윤은 죄의식을 더 크게 느끼게 되고 모두가 떠난 다음에야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된다. 동윤이 기태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기태의 세계를 완전히 뒤엎어버리고 ("너까지 그럼 안돼"라는 기태의 대사에서 그의 불안한 심리가 느껴진다), 이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기태는 결국 돌이키지 못할 선택을 하게 된다. 동윤은 그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기태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만 기태가 사라진 다음에도 동윤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동윤이 감내해야 할 시간들’이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과연 동윤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감내하고 ‘어떤’ 어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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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영화 이후의 이야기

캐릭터 분석 뒤에는 관객들의 생각이 중심이 된 오피니언 및 인터뷰가 나왔다. 관객 서베이, 청소년 인터뷰, 독립영화감독 인터뷰 등 영화 ‘파수꾼’과 관련하여 소년들의 성장, 현재 한국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화일지 가장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그들에 대한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청소년물에선 중고등학생 때의 추억이 미화되어 나오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때가 항상 행복하고 좋았느냐고 물어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고 답할 것 같다.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청소년의 관계는 순수해서 오히려 더 폭력적이고, 날카롭고 악독한 경우가 많다. 특히 친구가 전부인 사춘기에 인간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학교에서 버틸 수 없게 된다. ‘파수꾼’은 미완성된 인간의 이야기를 그려냈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기에 더욱 잔인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여서 인터뷰한 고등학생들처럼 더욱 공감하며 봤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나는 남고출신입니다’ 글을 보며 필자가 겪지 못한 남고 생활을 엿보았다. 이들의 미묘한 신경전 그리고 심리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던 글이었다. 모두가 폭력에 묵인하고 있다는 배태랑 에디터의 의견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 어쩌면 필자도 누군가에겐 기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독립영화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독립영화의 모호성’에 대해서 새롭게 알아갔고, 여러 오피니언을 통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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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봤다고 해서 그 영화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다 본 후의 우리들의 생각,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각자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다 특별하고 다양하기에 1인칭의 관점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있어 여러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수를 모아 하나의 잡지로 만들어낸 프리즘오브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만들어준 프리즘오브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다음 호에 등장할 영화 ‘라라랜드’와 더 발전된 프리즘오브가 기대된다.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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