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이디 버드는 다시 크리스틴으로. [영화]

글 입력 2018.09.1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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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하기 전까지 한 번도 이사를 간 적이 없다. 여전히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작은 마을에 있는 그 집 그대로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라왔던 그곳에는 내 모든 추억이 가득하다. 예정할 수밖에 없는 그곳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어찌나 싫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꼭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미술관도 있고, 지하철도 있고, 없는 게 없는 서울에서 그동안 살아왔던 나를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다른 사람의 집을 자기 집이라고 거짓말하고, 예쁘고 세련된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서 자신을 속여버리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아,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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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처럼 우리는 때로는 다른 세계를 꿈꾸면서 산다. 특히, 가족과 학교가 ‘나’라는 사회의 전부인 학창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가족의 곁에서, 그들의 것이 곧 나의 것이 되는 상황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클 때 원망하기 쉬운 대상이 딱 가족이다. 그래서 나도, 레이디 버드도 우리는 ‘나’를 지우고 ‘가족’을 지우는 방식으로 이상을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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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지울수록 결국 드러나는 것은 ‘나’이다. 힘들고 어렵게 친해진 ‘제니’와의 만남도 새로운 남자친구인 ‘카일’과의 첫 경험도 좋은 추억이 되지 못했다. 결국, 레이디 버드는 성 소수자였던 자신의 전 남자친구의 아픔도 이해하게 되었고, 베스트 프렌드인 ‘줄리’의 곁으로 돌아간다. 그토록 꿈꾸던 뉴욕에서 그녀는 이름을 묻는 친구에게 “내 이름은 크리스틴이야.”라고 말한다. 꿈꿔왔던 것을 이루고 이상했던 삶을 사는 방법은 그냥 ‘나’다워지는 것, 그것뿐이다.



그리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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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와 그녀의 엄마 ‘매리언’은 무지막지하게 싸운다. 여느 사춘기 학생과 엄마처럼 싸워 댄다.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며 함께 음악을 듣고 서로를 껴안다가도 뒤돌아서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모습에 또다시 싸운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야말로 ‘징그럽게’ 싸우던 나와 엄마가 생각난다.


“나는 네가 언제나
가능하면 최고의 모습이기를 바라.”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엄마와 딸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엄마는 항상 내가 더 잘되라고, 더 옳은 선택을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잔소리한다. 레이디 버드는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이라고 대답했다. 학창 시절 언제나 엄마의 잔소리가 못 미더웠던 나의 마음 또한 레이디 버드의 마음과 같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미친 듯이 싸우던 그 보통 날 엄마에게 얘기하고 싶다. 나는 나, 대로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을까?

레이디 버드가 뉴욕으로 떠나는 날, 마지막까지 차갑게 딸을 보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매리언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나에게 모질게 대한 순간 이후에 혼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녀의 엄마가 결국 보내지 못한 (아빠에 의해 나중에 보게 되지만) 편지들처럼 나에게 차마 건네지 못한 수많은 위로의 말들이 있었겠지. 또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혼자 울고 있는 엄마 옆에서 함께 울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차마 하지 못한 모든 말들을 빠짐없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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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집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내가 나를 지우고, 다시 나를 찾는 그 모든 순간에 내 옆에 있어 주었던 엄마에게 나도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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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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