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은 것은 허무뿐,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예술]

복수 뒤에 남은 것
글 입력 2018.09.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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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 그 이름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인물과 주인공이 다른 경우도 있다. 제목에 '록키 호러'가 등장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브래드와 자넷 혹은 프랑큰 퍼터에 가까운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어제 관람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도 비슷한 경우였다. 모든 이야기가 조씨고아를 중심으로 흘러가기는 하는데, 진짜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국립극단 포스터]조씨고아, 복수의 씨앗_180904-181001.jpg
 

시놉시스

진나라 대장군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조순의 가문을 멸족하는 정치적 처단을 자행한다. 조씨 집안의 문객 정영은 자신의 자식과 아내를 희생하면서 조순의 손자 조씨고아를 살려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조씨고아를 자신의 아들 정발로 키운다. 이를 알아채지 못한 도안고는 정영을 자신의 편으로 믿고 정발을 양아들로 삼는다. 20년이 지나 정발이 장성하자 정영은 참혹했던 지난날을 고백하며 도안고에 대한 복수를 부탁하는데....


중국 진나라 시대, 라이벌에 의해 모함을 받아 멸문된 가문의 복수를 하는 마지막 혈통의 이야기. 오래된 중국 고전 희곡이기 때문이었는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작품 제목도 참 예스럽고 구미를 당기는 맛이 없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평이 워낙 좋은 편이길래 "과연 어떤 작품인지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시끌시끌한 명동 거리, 입맛 당기는 냄새를 풍기는 길거리 노점상들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중국 작품을 보러 가는 김에 만두나 먹자며 군만두 한 접시를 사 먹은 후 극장에 들어섰다.

미리 예매해 놓은 티켓을 찾아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서 내 자리를 찾아 의자에 안착하니, 휑한 무대와 몇 가지 소품이 줄에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릇 같은 게 올려져 있는 반상이 하나, 동그란 원과 사람 팔 모형 등등. "저것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고...?"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하나하나 살펴보며 막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인상적인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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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연출의 작품을 이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뮤지컬 '아리랑'이었는데, 평소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를 펼치는 작품들을 주로 보았던지라 과장되게 대사와 행동을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때문에 작품의 웃음 포인트가 되는 그 연출들이 별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이후 유명한 연출이지만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웬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연출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고선웅 연출 특유의 연출 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비록 그의 작품을 두 작품밖에 보지 못했지만, 내가 느낀 바로 그의 연출은 참 '연극적'이다. 관객들에게 "이것은 연극이오!"하고 외치듯 각 인물은 대사 톤과 행동을 과장되게 표현한다. 심지어 대사하며 무용 동작들을 선보이거나 폴짝폴짝 뛰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고 작품과의 거리를 유지하게 만드는 대신 자칫 작품에 대한 몰입을 깰 수 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열연과 몰입도 있는 이야기 전개, 지루할 틈 없이 던져지는 웃음 포인트들은 눈에 보이게 드러내 놓은 매달린 무대 소품들이나 오버스러운 배우들의 대사 톤과 행동들에 관객들이 금세 적응하게 만들었다.

인물들이 죽을 때마다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해 검은 부채를 촥 펼쳐 죽음을 상징하는 배우의 존재나, 마지막쯤 희생당한 인물들이 모두 등장해 정영을 지나쳐 가는 장면에서의 연출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딘지 옛날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쓰일 것 같은 높낮이 차이가 큰 대사 톤은 중국 진나라라는 시대적 배경과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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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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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조순 대감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던 정영은 공주의 부탁으로 조씨 집안의 마지막 남은 씨, 조씨고아를 지키기 위해 비슷한 또래의 자신의 아들과 조씨고아를 바꿔치지 한다. 이를 알게 된 정영의 아내는 울고 화도 내며 정영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결국 정영은 자신의 아이를 희생시킨다. 1막에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되어 재미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의리가 중요하고 높은 집안의 자손이라도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키려는 정영의 선택에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1막 마지막, 결국 자식을 잃고 정영의 아내가 외치는 통탄에 찬 말이 나의 불만에 이름을 달아 주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어도 귀한 댁의 자손인 조씨고아의 목숨보다 정발(정영의 아들)의 목숨이 낮게 쳐지는 것에 대한 울분을 쏟아내며 남편을 원망하는 정영의 아내의 울부짖음은 1막까지는 몰랐지만 이 작품 전체를 꿰뚫는 복선이었다.

정영은 조씨 집안에 의리를 지친 여러 사람과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의 넋을 뒤로 한 채 조씨고아를 자신의 아들로 속이고 도안고의 양자로 들인다. 그가 장성한 스무 살이 되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조씨고아에게 모든 사실을 밝힌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던 조씨고아는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도안고에게 복수한다. 모든 복수가 끝나자 정영은 지난 20년 동안의 삶의 목표가 사라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어느 것 하나 없다. 자기 자식은 높으신 분의 자손을 지키기 위해 죽었으며, 이로 인해 아내 또한 잃었고, 자신의 팔 한쪽은 잘라버렸다. 복수 후, 그에게 남은 것은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허무함 뿐이다.

작품의 제목과 시놉시스만 읽고 중국 고전다운 복수극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통쾌한 복수로 끝나기는커녕 찝찝함과 슬픔만이 자리했다. 마치 조씨 가문에 그러했듯이 씨 하나 남기지 않고 도안고의 집안을 멸문시키겠다는 왕의 말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던 정영의 표정. 그리고 왕과 조씨고아가 높으신 분들의 즐거운 파티를 즐기러 떠난 후 남은 정영 앞에 환영처럼 찾아온 죽은 이들의 영혼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결코 영웅의 복수가 아님을 시사한다. 아랫사람인 정영이 고개를 조아려 인사해 보지만 그가 마치 없는 사람인 양 지나쳐가는 희생자들의 모습은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기록된다면, 그리고 후대에 전해진다면 정영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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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죽음을 상징해주던 검은 옷의 배우가 등장해 흰 나비를 무대 위에 두는 것까지만 했다면 더 여운이 길게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사도 나쁘진 않았지만, 갑자기 해설자가 등장하니 슬픔의 맥이 끊기는 것 같았달까. 검은 옷의 배우는 죽음을 상징했었고, 흰 나비는 흔히 영혼을 상징하니 복수를 끝낸 정영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음을 의미하나보다 싶다. 통쾌한 복수극보다 더 현실적이고, 생각해 볼 만한 결말인 것 같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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