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이방인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9.1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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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소설과 같이, 연극 이방인 역시 이 강렬한 한 문장으로 극의 시작을 알린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딤담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인다.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 뒤로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라고 덧붙인 무심한 한 마디는 그가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인물임을 시사한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어떠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심지어는 장례식 다음날 연애를 시작하기도 한다.

뫼르소의 무심한 태도는 어머니 뿐만 아니라 연인 마리에게도, 친구 레이몽이나 그의 이웃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시종일관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라는 그의 태도는 그가 마치 감정 없는 로봇과 같다는 인상을 주며, 때로는 객석에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독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뫼르소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 자체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되,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거세된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비인간적인 모습을 극 중 인물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에 대한 혐오는 눈덩이처럼 불어 결국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하기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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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비논리와 비상식은 애매한 윤리와 도덕으로 포장돼 우리를 지배한다. 어쩌면 그래서 뫼르소는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인물로 그려진 것이 아닐까?

극 중 대사에도 나오듯 우린 모두 죽음이라는 정해진 운명을 향해 달려가는, 일종의 사형수인 셈이다. 죽음 앞의 인간은 덧없는 존재이고, 삶이나 삶을 살아가며 일어나는 감정이나 욕구는 어떤 우연한 사건에 불과한 것일지도, 거기에 매달리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뫼르소는 삶에 달관한 것처럼 보임에도 사실은 가장 삶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를 제외한 여타의 인물들이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망에 몸을 맡기며 삶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뫼르소는 그 어떤 감정이나 욕구나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 관망하며 '뫼르소의' 삶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살면서 누구보다도 충실히 죽음을 향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극적인 변화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의 단조로운 삶은 그가 아랍인을 살해하면서 급류에 휩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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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빛 속에서 그는 몽롱함을 느끼며, 그러나 분명히 깨어있는 정신으로 아랍인을 향해 5발의 총탄을 날린다. 그는 아랍인을 죽일 정도로 미워한 것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그건 어쩌다 우연히 벌어진 사건 같은 것이다. 아랍인의 생명을 빼앗을 분명한 의지가 있지도 않은 채로, 그는 한 발, 그리고 쓰러져있는 그의 시체로 네 발을 더 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그가 처음으로 주체적인 행동을 한 장면인데, 그는 왜 그랬냐는 심문에 태양 때문이라고 답한다. 인간 세계는 부서지기 쉬운 욕망과 감정으로 쌓아올린 장난감 성과 같은 공간이다. 뫼르소는 이전까지 이 장난감 성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으나, 태양의 힘에 이끌려 이곳에 제 발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태양이 떠 있을 때 사람들은 살아있고, 태양이 질 때 사람들은 죽음같은 잠에 빠져든다. 태양은 모든 생명의 시작을 관장하는 존재로, 생명력의 정수로 여겨져왔다. 견딜 수 없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뫼르소는 처음으로 살아있는 인간처럼 의지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참수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 속에서 그는 바야흐로 막연하게만 느껴왔던 죽음의 공포, 의지를 행사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끝이 다가옴을 살갗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울고 소리지르며 벌벌 떠는, 인간다운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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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등장하는 세 개의 죽음 중 마지막, 뫼르소 그 자신의 사형을 통해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며 의미를 찾게 된다. 왜 어머니가 삶의 끝자락에서 약혼자를 두었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곧 다가올 자신의 사형 집행을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남아있는 찰나의 시간 속의 의미를 발견한다. 가장 삶과는 멀어보이는 인물을 통해, 연극 < 이방인 >은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찬가를 들려준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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