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2

글 입력 2018.09.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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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2


선정 및 정보 제공 - 출판저널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는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를 통해 책 기획 의도와 제작 후일담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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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
켈리키친



갈증



인간에게 내재한 피폐한 어둠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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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갈증이 난다. 정말이지 유난스러운 여름이다. 햇빛에 몸을 내주고 있자면 금세 등허리에 땀이 흐르고 시야는 이내 뿌옇게 흐려진다. 《갈증》을 처음 읽을 당시는 겨울이었다. 그럼에도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뿐인데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갈증》은 2014년 국내에 처음 번역되었다. 동명의 영화 개봉과 맞물려 출간되었으나 모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재출간한 이유가 있다. 현대 미스터리 소설 중 인간에게 내재한 피폐한 어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그려 낸 작품 중 뛰어난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기존 책을 번역한 양억관 역자님에게 퇴고를 요청했고, 몇 번의 교정을 거치며 문장과 문단을 새로 정리했다. 크게 손 본 곳은 없지만 자잘한 몇 군데 오자를 수정하고, 그 사이 바뀐 표기법을 적용하여 몇몇 부분을 바로잡았다. 한편 기존 책과 차별화를 두기 위하여 특별히 디자인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 표지 일러스트를 작업해줄 가장 적합한 작가를 구하고 여주인공 가나코를 그 모델로 몇 가지 시안을 냈다.

책의 결말을 암시하는 장면을 단편적으로 담고 싶었다. 재킷을 벗기면 소설의 원제가 적힌 붉은색 속표지가 나온다. 원문을 그대로 살려 원서의 느낌을 내려고 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이상의 감성 도구로서 여기는 최근 독자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소설은 후지시마 외에도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중 어느 누구 하나도 우리가 외면한 세상 한편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부모, 선생님, 학우, 경찰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각자 다른, 주체할 수 없는 삶의 갈증을 느낄 것이고, 혼돈의 상태를 숨긴 채 살아가기도 하고 끝없는 증오로 분출하기도 한다.

후지시마는 이 '갈증'을 실종된 딸 가나코를 찾는 과정을 통해, 삶의 고독과 증오에 휩싸인 인간의 절망을 집요하고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그래서 시종일관 읽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저자의 철저한 의도이고 분명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청춘은 어두웠다. 《갈증》은 그런 과거를 짜증스럽게 되뇌며 썼다. 이는 고독과 증오를 견디지 못하고 질주하는 인간들의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하략)" - 후카마치 아키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파헤칠수록 파렴치하고 지저분한 인간 본성을 드러낸다. 한 개인을 넘어 현대 사회에 만연해진 광기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소설을 어떻게 읽느냐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단순히 미스터리 소설로 읽어도 좋고, 추악함이 들끓는 사회 이면 그 어두운 '갈증'의 근원지에 어떻게 하면 밝은 햇빛을 비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종류 '갈증'이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글/ 이정헌 도서출판 잔 편집장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



지금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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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내가 다산북스에 입사하여 처음 진행을 맡은 책이다.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을 만들면서 어린이 책, 과학서, 인문서, 에세이, 여행서, 실용서 등등 많은 분야의 원고를 다듬고 책을 만들었지만 유일하게 접하지 못한 분야가 바로 '소설'이었으니, 아마도 꽤 큰 부담감과 호기심을 안고 임했던 듯싶다.

김대현 작가님을 처음 뵈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크고 둥근 눈으로, 이 소설을 언제 왜 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이 소설을 왜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하시던 그때, 정말이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리고 경쟁과 채찍질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지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고 그 해묵은 갈증과 염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 또한 열성적으로 했던 것 같다.

2014년 4월 꽃 같던 아이들이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던 그 슬픈 봄날, 소설가 김대현은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고 자격이 없는 국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내렸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국가 존재의 당위에 대한 의심을 가진 열한 명의 크고 작은 마음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국가에 소속되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막중하고 과도한 권리와 의무를 저버리고 스스로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임무를 하나하나 완수해나가고, 결국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나라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야 만다. 그 과정 마디마디 얽혀 있는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고 환상적으로 펼쳐지고, 국가 존재의 의의와 개인의 행복에 대한 묵직한 물음들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다. 위트 있는 문장들 탓에 가벼운 소설인 듯 보이지만, 현 세대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담고 있어 여운이 깊게 남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초기 제목은 '국가의 탄생'이었다. 책의 내용과 의미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내부 논의 끝에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으로 결정이 되었다. 둘 다 장점이 있으나, 책의 의미와 콘셉트 사이에서 각기 다른 결정을 해야 할 때 편집자로서 가장 난감하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담은 메시지와 시대적 의미는 여러 해를 두고도 상당히 유효할 듯하니, 많은 독자분들께서 두고두고 오래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일별하며, 우리가 그간 분노해온 사건들에 일침을 가하는 부분에서는 통쾌함과 탄식이 배어 나오고,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 소환 이야깃거리에는 콧잔등이 제법 시큰해지기도 한다. 처음 편집을 진행해본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이 소설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김대현 작가님의 눈빛과 원고에 대한 진정성이 넘치던 마음 하나하나가 자꾸 떠올라서, 그리고 마음을 흔들어대던 문장 하나하나와 여운들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자꾸 맴돌아서, 이 책을 오랫동안 곁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글/ 조혜영 다산북스 콘텐츠개발팀




켈리키친



사려 깊고 발랄하고 싶은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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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섹스를 한다. 제길." 주인공은 소설의 배경인 '켈리키친' 집 두 딸 중 차녀다. 빈한한 섬마을에 태어나 일급 모델이 되었다가 어린 나이에 첫 아이를 낳고 은퇴해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엄마, 엄마를 닮은 수려한 외모에 머리도 좋은 언니, 아무리 노력해도 학업이 부진하고 용모 불량에 성장도 더딘 나, 늦된 첫사랑이 세 달 만에 종적 묘연해진 이래 한 식구로 살아온 이모…사춘기와 청년기와 중년기의 네 여성이 이루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하고 때론 파격적인 사건들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사려 깊고 화사하고 발랄한 성장소설. - 황인숙(시인)

이 소설은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다. 재미와 무게를 갖춘 흐름 속에서 두 세대의 자매인 네 여자의 삶이 생생하다. 한집에서 사는 개성적인 네 여자의 삶을 통해 흘러가는 사건들은 결론적으로 한 인간의 생에 대한 책임감과 자립 의지로 귀결된다. 약한 듯하나 강하고, 차가운 듯하나 뜨거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어떤 삶의 장애물과도 당당히 맞짱 뜰 수 있는 삶에 대한 건강한 욕구이다. - 조은(시인)

두 명의 여성 시인은 《켈리키친》을 여성소설이자 성장소설로 규정한다. 여성으로 완성되는 길이 생리와 출산이라고 믿는 철없는 이모, 폐경(완경)에 이른 몸을 비밀에 둔 채 한 달이라도 더 생리하고자 안간힘 쓰는 고달픈 엄마, 사랑에 책임지고자 출산을 결정한 강한 듯 여린 언니, 그리고 하루빨리 여자가 되고 싶어 몸살이 난 애어른 영후. 네 명의 여자가 한집에 산다. 두 명의 여자는 성이 같은 자매이고 두 명의 여자는 성이 다른 자매이다. 색다른 가족이 구성된 것은 두 번 결혼해 두 번 상처받은 엄마의 이력 덕분이다.

언니 젬마는 하필 이름이 영후인, 동생 영후를 영 후진 성적(학습과 신체발달)의 아이로 규정한다. 그 잘난 언니의 균열과 분노에 집권 당한 일상을 봉합하는 것은 뜻밖에도 영 후진 아이, 영후다. 가장의 무게에 짓눌리는 엄마의 일상을 위무하는 것도 영후고 실연한 이모가 다시 생의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영후다.

영후는 소설 곳곳에서 시대를 증언하기도 하는데, 생동감 넘치게 세계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증언되는 일상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기록(진술)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세월호'를 화두로 교실에서 행동을 결정짓거나 학원을 빼먹는 조건으로 '촛불 시민'이 되어 이모와 광화문에 앉아있거나 무차별하게 복제되어 배포되는 친구의 섹스'동영상'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일상을 체험하고 소화하는 방식으로 증언하는 사건은 해석을 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알고 지낸 인물들을 하나의 허구 속에 퀼트 함으로써 가장 소설적인 소설은 현실이 개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사려 깊고 화사하고 발랄한 성장소설의 귀중한 덕목이 소설 안에 있다.


글/ 한경혜 ⟪켈리키친⟫ 저자



[ARTINSIGHT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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