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이야기] 무지개 끝에서

책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리뷰
글 입력 2018.09.1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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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

:책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리뷰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어나 표현에 있어 불편한 부분 또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올해 처음으로 열린 인천 퀴어 축제는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혐오세력은 이른 새벽부터 축제가 열리는 장소를 미리 점거했다. 그들은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몇몇 목격담에 따르면 그들은 '사랑해서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기사를 통해 본 내용인데도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았던 까닭은 사건이 있기 며칠 전 서점 신간 코너를 서성이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라는 제목의 퀴어 단편집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랑을 외치며 폭력을 행사한 이들과, 사랑을 이야기하려 했던 축제 참가자들, 그리고 사랑을 멈추지 말라는 책 제목. 어떤 책은 우연히, 그러나 운명인 것처럼 다가온다. 왠지 이 책을 봐야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의 이야기' 두번째 신간 리뷰는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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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에는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 총 여섯 명의 작가가 쓴 여섯 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각 단편은 몇몇 고전에 나오는 장면 또는 인물로부터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 예를 들어 박상영은 '도리안 그레이'를 읽으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렸고, 그 질문에서 '강원도 형'이 시작되었다. 각 소설을 읽기 전 그 소설이 어떤 고전에서 온 단편인지 짤막한 설명이 나와 있다. 해당 고전을 이미 읽은 적이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읽지 않았다 해도 상관 없다. 고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뿐 각 작품은 해당 고전과는 엄연히 분리된 별개의 작품이므로.


그러니까 곱슬거리는 유나의 머리카락 안에 손을 넣으면 거기는 분명 다른 곳과는 다르게 따뜻했고 한 손에 다 들어오는 가슴이나 걱정스러울 만큼 좀 차가운 듯한 배-배앓이를 하면 어저지!-그리고 유나가 내 쪽으로 몸을 완전히 밀착해서 꼭 껴안았을 때 나는 텐트의 벽 쪽으로 밀리지 않게 그 체중을 감당했는데 그 뒤로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애썼다.

60쪽 '레이디' 중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라는, 슬로건 같은 제목과 더불어 '퀴어 단편 모음집'임을 처음부터 표지에 내세웠기 때문에 어렴풋이 내용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흔히 그려지는 서사가 있지 않은가. 사회의 편견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켜내는 둘만의 사랑이라든가,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성 지향성 또는 성 정체성을 깨닫고 고뇌에 빠지는 인물 같이. 따로 퀴어문학을 찾아 읽은 게 아니더라도 역경에 처한 '전형적인' 성소수자의 모습을 우리는 몇몇 작품 속에서 봐 왔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성소수자는 쉽게 '전시'되곤 한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성 지향성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누구를 사랑하느냐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이종산의 '별과 그림자'에서는 사랑을 막 시작하는 소녀의 풋풋함이 잘 드러난다. 김금희의 '레이디'는 애뜻하던 첫사랑이 사소한 일로 돌이킬 수 없게 스러지는 과정을 담는다. 박상영의 '강원도 형'에서는 SNS에 올릴 자신의 사진을 몇 시간씩 보정하는 주인공이 타인에게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며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임솔아의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는 두 여성의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대조하며 주인공의 묘한 심리 변화를 그린다. 떠나간 연인의 흔적을 좇는 강화길의 '카밀라'는 미스테리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인다.

'퀴어 단편집'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묶였지만 작가의 개성이 살아있는 각 단편에는 모두 다른 특성의 인물이 등장해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이들이 경험하는 일은 그들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다. 새로운 관계에 설렘을 느끼고, 사랑이 끝나서 슬퍼하고, 인터넷으로만 알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 실망하는 일은 누구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겪을 법한 일들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성소수자는 전시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는 곧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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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 지점은 김봉곤의 '유월 열차'에서다. '유월 열차'는 책에 실린 모든 작품둘 중에서도 가장 밝게 시작한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듯한 연인은 마냥 즐겁고 설렌다. 날씨는 화창하고 마주치는 사람들도 친절하다. 그러나 한순간 주인공은 열차 객실이 아닌 길바닥에 누워 있고, '펄스(PULSE)'라는 클럽 이름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무너진 벽 사이에서 연기가 나고 바닥에는 다친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그 가운데 요란하게 들려오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사실 이 소설의 현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럽, '펄스(PULSE)'가 지난 2016년 미국에서 총기난사사건이 있었던 게이클럽의 이름과 같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월 열차'는 그렇다고 '꿈 깨라'는 식의 비극적이거나 신파적인 결말을 내놓지는 않는다. 소설에서 행복이 가득한 열차와 무너진 클럽 바닥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고, 주인공의 의식은 두 장소를 오간다. 눈을 감든, 뜨든 곁에 있는 류와 사랑을 할 거라는 주인공의 말을 읽으면 어쩌면 클럽이 무너져 난장판이 된 쪽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이 연인과 함께 여행을 하는 중 열차에서 잠깐 꾸는 악몽 말이다.


열차는 다시금 출발해 너와 나를 스쳐 지나가는데, 지난밤과 낮 우리를 둘러싸던 그 노래.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제발 멈추지 말아요 하고 반복되던, 고작 사랑이지만 결국 사랑이라고 울려 퍼지던 그 노래를, 무너질 듯 무너지던 천장, 은하처럼 반짝이고 터지던 미러볼, 깊은 밤 나는 흥얼거리는 걸 멈추지 못하면서, 조금은 울면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우린 하나가 되진 못하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둘쯤은 될 거라고, 눈을 뜨면 사랑을 할 테고, 이대로 눈을 감아도 사랑을 하는 거라고, 사랑하는 류,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고.

198쪽 '유월 열차' 중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무너진 클럽? 화창한 유월의 공기 속을 달리는 열차? 성소수자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개인이 다양한 모습의 삶을 살고 있다.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행복하기만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우리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 또는 성 지향성을 드러내고 살아가기가 힘들다. 이성애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이상형이나 연인에 대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부부를 위한 법률은 당연하다는 듯 시스젠더(지정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 부부만을 대상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행복한 환상과 차가운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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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 속에서 '퀴어 문학'이라는 장르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알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 특히 성소수자의 특수성을 전시하지 않고 덤덤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를 인물에 이입하게끔 하는 이야기는 더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퀴어 문학이 늘어나고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인식될수록 퀴어문학은 소멸을 향해 간다. 성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 여자대학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따로 명칭까지 붙일 정도로 특수한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때, 퀴어문학이라는 장르는 사라질 것이다.

성소수자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될 때 퀴어문학이라는 장르가 사라질 거라는 예상은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의 표지가 새하얀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성소수자의 상징으로 흔히 쓰이는 무지개와 같은 화려한 모습의 표지가 아니라 하얀색 표지를 택한 것은 조금 뜻밖이다. 물론 퀴어 단편집이 대놓고 그 상징이 드러나는 느낌의 표지를 사용한다면 다소 뻔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소수자의 다양성이 결국 보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개빛이 원래 백색인 태양광을 프리즘을 통해 분화한 결과이듯 말이다.

성소수자는 크게 성 정체성에 따라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성 지향성에 따라 '헤테로섹슈얼', '호모섹슈얼', '바이섹슈얼', '에이섹슈얼'로 구분되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 외에도 더 다양한 분류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모든 분류의 밑바닥에 자리한 것은 자신이 누구이며 타인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고민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문제고, 그 결론이 제각각 다를 수도 있다. 무지개 끝에는 그 모든 빛을 포용하는 백색광이 있는 것이다. 단지 현재의 우리 사회가 너무나 협소한 형태의 결론만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이외의 것들에 모두 비정상 딱지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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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말 중


'모두 사랑합시다!' 와 같은 상투적인 말로 리뷰를 마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퉁치기에 성소수자의 형태와 삶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흔히 '퀴어', 즉 성소수자는 흔히 떠올리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뿐만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무성애자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어떤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느냐를 넘어서 한 개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여섯 편의 단편은 턱없이 부족하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첫 번째 퀴어 단편집이다. 두번째, 세번째 단편집도 계속 보고 싶다. '퀴어 문학'이라는 단어가 필요없어질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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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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