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작가를 ; 읽다 - 김애란] 비행운(非幸運)을 바라보며 [도서]

김애란 소설집 < 비행운 > "물속 골리앗"
글 입력 2018.09.1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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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당신도 보았느냐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이름을 짓는다.
여러 개의 문장을 길게 이어서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기어코 다 부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알 수 없어
한 번 더 불러보게 만드는 그런 이름을.
나는 그게 소설의 구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_작가의 말


홍수6.jpg


지금도 뉴스에서 슈퍼태풍 '망쿳'이 필리핀을 강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불과 얼마전엔 미국에 허리케인이, 우리나라엔 태풍 '쁘라삐룬'이 상륙했던 것이 무색하게 태풍은 또 찾아왔다. 어떻게 보면 오래전 과학책에 밑줄 그어가며 외운 태풍 사례들이었다. 그 당시 난 누군가의 피해와 죽음을 아무 감정 없이 밑줄 그으며 달달 외웠다. 그리고 이번에 그 처참함을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겪었다. 그건 참사가 내 이야기가 아닌 것 마냥, 소설 속 한 비극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밑줄 그어대던 과거의 나에게 밥맛 떨어지는 일이었다.

어느 지역에선 누군가에겐 생존일 농작물이 망가졌고, 간판이 떨어졌고, 공사장 파이프가 인도로 날아들었다. 뉴스에 보도되는 피해사례들. 그러다 끝끝내 뉴스에 기록되는 死의 숫자들을 보게 된다. 부상, 실종, 사망.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어떠한 영역. 자연의 섭리. 신의 섭리. 알지만, 그렇지만 괜스레 절대자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소설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이 꼭 다른 세계 이야기 같고, 나에게만은 닥치지 않을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읽을수록 깨닫는다. 그 하나같이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우리의 현실을 똑 닮아 무서워지기까지 한다는 것을. 나에겐 그중에서도 “물속 골리앗”이 그랬다.


김애란_소설집_비행운.jpg
 

“물속 골리앗”은 재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이면에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하는 소시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담는다. 그 모습이 마치 홍수에 떠밀리는 것 같다.



#비극


수도와 전기가 끊긴 집에서 사는 가족이 있다. 소년과 엄마는 재개발로 사람들이 떠나가 폐허가 되고 있는 강산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떠나가도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터무니없이 작은 보상금 때문이다. 보상금은 터전을 새로 잡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내 집인데 내 집에서 살아가겠다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현실. 쫓겨나듯 나가야 하는 현실. 소년의 아버지는 이에 시위하다 죽었다. 40미터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실족했다.

그런 상황에 비가 내렸다. 그것도 엄청 많이. 마을은 물에 잠겼고, 소년의 집 또한 잠기기 직전이었다. 결국 소년은 탈출을 결심한다. 죽은 어머니를 데리고. 방문을 뜯어 뗏목처럼 만들고 폐허가 된 집을 나선다.
하지만 금방 잠기지 않은 곳과 사람들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집주변 또한 잠겨있었다.

모든 것이 떠내려가고 있는 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자리에 있는 건 높고, 긴 크레인뿐이었다. 나무처럼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크레인. 나무도 뽑혀 나가는 판국에 크레인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소년은 크레인에 몸을 의지한다.

크레인. 사실 그 크레인은 아버지를 죽인 크레인이지 않았나. 순번을 바꿔가며 크레인 위에서 쪽잠을 자던 아버지를 실족인지 사고인지 모를 죽음으로 이끈 크레인. 그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소년에게 유일한 버팀목이 돼주고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하게 만든다. 우리가 만들어낸, 자연을 부수고 깎고 쓰러뜨리는 것이 나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이상한 생사. 이상한 공존. 그것 또한 지금까지 일어난 비극과 마찬가지로 비극일 것이다.



##비극


크레인.jpg
 

우리가 만든 것은 때론 우리를 죽인다.

내가 늘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던 곳에 새로운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난 그곳을 지나다니며 뼈대가 세워지고 살이 붙는 것을 지켜봤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엄마와. 그러다 그곳의 이름이 다산동으로 붙여졌다 들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알까. 5월에 그곳에 사고가 났었다.


지난 5월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지금동 다산신도시내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높이 50m 규모의 18t급 타워크레인의 중간 부위가 갑자기 엿가락처럼 휘면서 윗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이 남양주 타워크레인 사고로 당시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누군가 그곳에서 죽어 나갔다는 사실이 무성하게 다시 공사는 시작될 것이고, 건물은 올려질 것이고 입주자들이 들어설 것이다. 아니 이미 완성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그곳에 누군가의 생과 사가 공존한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살았고, 또 누군가는 살아가겠지. 그걸 생각하면 난 이 이상한 공존이 솔직히 끔찍하다.


아파트.jpg
 

그런데도 모두가 짓기 바쁘다.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더 높이 더 높이 지어 올리기 바쁘다.

그걸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들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까. 우리가 이뤄온 것들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건 아닐까. 우리는 계속 만들고 쌓고, 자연재해와 산업재해는 우리가 이뤄온 것들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것들은 보란 듯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슬픈 건 그걸 이미 보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우리가 만든 것들이라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는. 그렇다면 자연에라도 원망하고 싶지만,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 속에 살아가고자 하는 작은 존재들일 뿐이라 감히 어디다 소리칠 수도 없는 운명이 아닌가하고. 하늘에 대고 신에게 원망할 수도 없는.

무너지고. 떨어지고. 휩쓸고 가고.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고들. 그리고 고작 뉴스 자막에 새겨지는 숫자들. 많은 사람이 알기 전에 급급하게 덮이는 사고들. 우리는 그 앞에 작은 존재라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닫는다. 무엇보다 그 잃음을 우리 세계가 끝없이 반복하며 자초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런 씁쓸함을 느낀다.



비행운(非幸運)을 바라보며



이따금 기둥에서 손을 떼
그대로 가라앉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지느니
죽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손에서 힘을 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철굴을 꽉 쥐고 있었다.

p.117


다시 돌아가,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크레인에 올라 기다린다. 그럼에도 살고 싶어서. 누군가 자신을 찾아내 주기를. 누군가 구조해주기를. 그 강물 위에서 희망하며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김애란의 단편들을 읽으며 아마 “물속 골리앗”이 가장 끝없는 비극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사실 난 이 책을 읽고 지금 우리 현실의 비극에 대해 생각하며 끝없는 비극에 빠졌었다. 솔직히 이곳에 희망이 있나 싶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소년처럼 희망을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포기되어 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비극 속을 비집고 잘라 내주길, 들어와 주길. 그리고 맨 처음 이 책이 우리의 현실과 똑 닮았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현실에도 바란다.

반복되는 비극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럼에도 모두의 희망과 행복을 바라고 싶다. 되지도 않는 위로라 할지라도 건네고 싶다. 함께하자고. 지치지 말고 견디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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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단편소설 비행운은 읽고 난 뒤에 독자들에게 찝찝함을 안겨준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 같아 다른 세계 이야기 같지만, 그 찝찝함은 멀지 않은 현실이란 것을 알려준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이 책이 찝찝한 또 하나의 이유는 단편마다 저마다의 비극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어떠한 마침표 없이 열린 채 끝이 난다. 그 이후에 이들이 어찌 됐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곳에 다다를지 아무런 마침표를 주지 않고.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모든 인물은 끝끝내 행복과 희망을 바란다. 그럼에도 달라지고 싶다는, 그럼에도 구출되고 싶다는,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그래서 나 또한 그것을 바라며 책장을 덮는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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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에 「노크하지 않는 집」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2005년 대산창작기금과 같은 해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일상을 꿰뚫는 민첩성, 기발한 상상력, 탄력있는 문체로 “익살스럽고 따뜻하고 돌발적이면서도 친근”(문학평론가 김윤식)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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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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