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대한 생명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예술]

신과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9.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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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처음 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강렬한 첫 장면부터 괴물과 창조주의 비극적인 최후까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내가 그동안 본 작품 중 가장 완벽한 비극이었고, 그래서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이 주는 여운에서 오래도록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삼연도 끝을 맞이했다. 재연과 달라진 점이 있기는 했지만, 관객을 빨려들게 하는 강렬한 서사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짙은 여운은 여전하다. ‘불행하기에 악하고, 악하기에 복수를 원했던’ 괴물 같은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생명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철저한 비극으로, 빅터와 앙리, 괴물, 까뜨린느, 줄리아, 룽게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고통받다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의 시작에 있는 것이 빅터의 생명 창조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탄생한 괴물은 고통스러운 삶을 선물한 창조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빅터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앗아간다. 생명의 주체가 된다는 ‘단 하나의 미래’를 위해 시작된 이 연구는, 앙리와 함께 꿈꾸던 위대한 이상에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한 채로 괴물에 복수에 의해 철저히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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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비극을 스스로 초래한 빅터의 과거는 ‘미신’으로 정의된다. 어린 빅터는 흑사병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엄마를 살리기 위해 시체를 옮겨 온 것이 마녀의 소행으로 의심받아 아버지마저 잃는다. 빅터는 어머니의 죽음이 당시 의학 치료 대신 행해졌던 주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미신을 뛰어넘는 과학에 더욱 집착하게 되지만 이를 불길한 마녀의 짓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에 의해 결국 혼자 남겨진다. 미신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미신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지게 된 빅터가 미신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위님은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아니, 신을 믿어. 지독하게.


빅터는 미신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서도 누구보다 지독하게 미신을 믿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생명을 단지 ‘화학적 유전자 돌연변이’라고 이야기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행을 ‘저주’와 ‘운명’이라고 표현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미신에 대한 공포는 빅터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이다. 따라서 생명 창조 연구에는 앙리와 함께 꿈꾸었던 위대한 이상과, 삶 전체를 좀먹는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빅터의 간절한 바람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괴물에게 잔인한 삶을 선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부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빅터가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신이 계신다면 들으소서
나약했던 한 인간의
외로운 싸움을
고독한 진실을
발버둥 치려 했던 나의 운명을


모든 것을 잃은 빅터가 그간의 결심을 후회하며 부르는 이 노래처럼, 빅터는 신에 맞서 싸우려 했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절하게 운명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던 빅터의 ‘후회’를 듣고 있자니, 불행하기에 악하고, 악하기에 복수를 원했던 괴물과 빅터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괴물이 있었네, 그저 상처 속에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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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의 창조물인 괴물은 평생을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태어날 때부터 피 냄새를 맡아야 했던 지독히 운 없는 존재’이다. 빅터가 평생을 실체 없는 공포 속에 살았던 것과는 반대로 괴물은 탄생과 동시에 시작된 싸움과 살인, 고문과 같은 강도 높은 고통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괴물이라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다.


피는 누군가의 피
살은 누군가의 살
나는 누군가의 피와 살로 태어났네


‘괴물’은 이름도 없이 모두에게 ‘괴물’이라고 불리고, 괴물이라는 이유로 잔인한 살인 격투에 이용되며 고문당한다. 하지만 괴물을 가장 괴롭게 만들었던 것은 고문도 살인도 아닌 ‘혼자가 된다는 슬픔’이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따스한 품을 느끼고 꿈을 꾸게 해 주었던 까뜨린느마저 자신을 ‘끔찍한 괴물’이라며 손가락질했을 때, 괴물은 각성한다.

괴물에게는 삶 자체가 혼자가 된다는 슬픔이자, 상처 그 자체이다. 괴물의 복수가 창조주를 향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책임한 욕심 때문에, 자신에게 이 끔찍한 상처를 선물한 것에 대한 분노. 괴물에게 창조주는 모든 절망과 고통의 근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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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까뜨린느와 함께 꿈꾸었던 북극은 결국 잔인한 복수의 장소가 된다. 창조주에게 복수를 마치고 싸늘하게 식은 괴물의 머리 위로, 까뜨린느와 함께 꿈꾸었던 북극의 아름다운 오로라가 펼쳐지는 장면은 언제 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빅터와 앙리, 그리고 괴물은 서로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앙리는 빅터의 잘못을 뒤집어쓰며 사형을 선고받았고, 괴물은 빅터에 의해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선물 받았으며, 빅터는 괴물에 의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중 누구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불행하기에 악하고, 악하기에 복수를 원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마음을 아리게 만들 뿐이다. 얽히고 얽힌 불행 속, 상처는 있지만 악인은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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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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