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고 돌아 다시 이야기가 흘러간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글 입력 2018.09.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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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돌고 돌아 다시 이야기가 흘러간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원형의 무대를 다 돌고,
또 돌고 나면 이야기가 풀릴까?"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지 하면서
못 읽어본 채로, 극장을 찾았고,
오랜만에 마주한 원형 극장에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들의 파편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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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원형 무대 위에서 마주한 시공간의 파편들.

본 연극은 친절하지 않다. 여러 시간의 파편 조각들을 원형의 무대 위에 떨어뜨려 놓았다. 시간만 쪼개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 역시 분할적이다. 또, 두 개의 크기가 다른 원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의 규칙성을 찾기 어려웠다. 사건들의 순서, 공간이 현실인지, 소설인지 혼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는 연극과 원작 소설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관객들이 뿌려진 시간의 조각들을 합치고, 공간들의 규칙성을 배열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우주알'이라는 생소한 물질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그 시공간의 분열을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관객들에게 '우주알'이라는 생소한 물질에 대한 설명은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2시간 동안, 시공간의 분열, 흩어진 규칙, 극에 등장하는 것처럼 패턴을 알아내기는 어려웠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다.

왜, '우주알'이라는 존재, 모든 시간대에 있으면서, 또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그 존재가 주인공 남자에게 들어와야만 했을까. 
왜, 무대 위 시공간이 깨져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연극 말미에 알 수 있었다.

주인공 남자는 동급생 학생을 죽인 살인자, 가해자다. 또, 그런 주인공 남자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아들이 죽어야만 한 이유를 찾던 피해자의 엄마다. 주인공 남자가 동급생 학생을 죽인 이유는 그 학생이 흔히 말하는 일진으로, 주인공 남자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주인공 남자는 그래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엄마는 절대 자신의 아들이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신념으로 주인공 남자를 쫓아다니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자신의 아들이 진짜 일진이었으며, 괴롭힘의 주동자였다는 말을 듣고서는 피해자의 엄마는 주인공 남자를 죽인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주알'의 목소리다.
 
'아주 마음에 드는 패턴이군. 내가 들어가도 될까?'
 
'살인', 영혼을 쪼개는 행동이라고 흔히 표현된다. 소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볼드모트의 '호크룩스'가 그렇다. 볼드모트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영혼들을 쪼개 나눠 놓는다. 영혼을 쪼개는 방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만큼 '살인'은 모든 것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한다. 연극 속 주인공 남자가 우주알을 받아들인 시기는 정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주알은 그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처럼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영혼의 갈라짐이 연극 속에 녹여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던 그 순간들이 반복되며, 과정은 수없이 바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소설 속까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의 엄마란 존재다.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불편해하고 자신이 잊고 있는,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 주인공 남자는 자체가 우주알이 된 것이다. 스스로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사건들의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다. 그 모든 원인은 '살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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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본 연극 속에서보면 주인공 남자는 소설가이며, 전과자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전과자라는 이력이 꼬리표로 붙는다. 이는 그의 삶을 평범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삶 자체가 속죄일까. 그가 쓴 소설은 또 어떤 의미일까. 또 머릿속에서 이 극 속에서 등장하는 속죄의 키워드가 정확히 어느 장면일까. 이런 것들을 고민했다. 사건의 순서가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그 속죄하는 장면을 정확히 캐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또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 <어톤먼트>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어톤먼트>, Atonement는 말그대로 속죄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작은 소녀의 질투어린 거짓말이 어떻게 한 연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지 보여준다. 부유한 집안의 딸 세실리아와 그 집의 후원을 받고 의대를 졸업한 로비는 신분 차이로 서로의 마음을 부정하다 어느 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세실리아의 동생 브라이오니는 그 순간들을 오해, 또 질투어린 시선으로 본다. 그날 밤, 세실리아의 조카가 강간당할 뻔한 일이 생기고, 브라이오니는 그 사람이 로비라고 이야기한다. 그 거짓말은 세실리아와 로비의 영원한 이별, 또 아픔의 시작이 된다.

로비는 감옥에 가서 복역 중일 때,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군인으로 일하게 되며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세실리아는 간호사로, 그들은 전쟁이라는 큰 어려움 속에서도 세실리아와 로비는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한다. 한편, 자신의 거짓말로 그러한 아픔을 겪게 됐다는 것을 안 브라이오니는 그 둘을 찾아가 사과를 하고, 자신이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영화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가는 듯하지만 결말부 반전이 숨겨져 있다. 이 모든 일, 로비가 감옥에 끌려갔다 군인이 되고, 세실리아가 간호사로 가게 된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작가를 꿈꾸던 브라이오니의 소설 속 이야기였던 셈이다. 실제로는 세실리아도, 로비도 전쟁 속에서 서로를 다시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터뷰를 하던 브라이오니는 이렇게 소설 속에서라도 속죄를 한다고 말한다. 소설 속 속죄, 그 속죄가 조금은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글을 쓰는 시간 동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괴로움, 죄책감이, 그것 자체가 속죄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그러한 방식의 속죄는 아닐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이유를 떠나 살인은 강력범죄다. 그렇게 살인은 그에게 속죄해야 할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가, 살인을 하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자꾸 바뀌던, 또 자신의 과거 연인이던 주인공 여자 역시 중간에 배우가 바뀌는 걸 통해 소설과 현재를 구분한 것은 아닐까 싶다. 피해자의 엄마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 남자는 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쓴 소설 '우주알 이야기'는 그의 속죄 방식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며, 현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소설 속에는 변화시질 수 있으니까.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 남자는 살인사건의 방식을 바꿨다가, 또 만나던 사람들이 변화했다가, 피해자의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가 변하고. 그렇다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건의 순서를 알기 어렵다는 것의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연극인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과거 실수가 만들어내는 세상의 분열, 그에 대한 작은 속죄. 이정도가 아닐까.





참 어려운 극이었다. 추상적인 대사들과 순서의 나열이 혼란스러웠다. 이해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내가 이 연극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싶다. 그저 내가 이 극을 보고서 떠올린 생각들을 파편으로 나열한 기분이다. 좀 더 친절했다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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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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