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Don't dream it! Just be it! 뮤지컬 록키호러쇼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9.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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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Y;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고단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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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록키 호러 쇼 >의 두 주인공, 자넷 와이즈와 브래드 메이저스는 MC의 말마따나 고지식하고 약간은 촌스러운,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이 둘은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성역할에 얽매여 내숭과 허풍을 떨면서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제대로 마주할 줄 모른다. 그러나 B급 뮤지컬답게 폭우라는, 아주 흔해빠진 클리셰를 유쾌하게 차용하면서 자넷과 브래드는 프랑큰 퍼터의 성에 다다르게 된다. 양성애자에 복장 도착자인 외계인 프랑큰 퍼터가 다스리는 성은 욕망에 솔직하고 규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객석에 앉은 관객만큼이나 적당히 평범한 두 주인공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프랑큰의 성에 이끌려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괴상하고 민망한 차림의 외계인들은 먼저 두 사람의 옷을 모두 벗겨버리는데, 약혼한 사이인 두 주인공은 이때 처음으로 속옷만 입은 채 서로를 마주하고 마치 어린 아이인 양 가슴과 성기를 들여다본다. 그들이 프랑큰의 성에서 겪을, 욕망할 줄 아는 솔직한 나 자신이 되는 여정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그들을 억압하던 바깥 사회의 옷을 내던지고 온전한 태초의 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날 밤 각자 프랑큰과 성적 관계를 맺으며, 자넷과 브래드는 성적인 욕망에 눈뜨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배신한 것을 알게 된 후, 브래드는 노래를 부르며 슬퍼하고 자넷은 브래드와 프랑큰에 대한 복수심으로 프랑큰이 만든 인조인간이자 프랑큰의 애인인 록키와 성관계를 맺는다. 욕망을 추구하면서 두 사람이 깨뜨린 것은 비단 둘의 약혼 관계만이 아니다. 그동안 믿어왔던 나의 신념, ‘나’라고 믿어왔던 것들, 강요되어서 만들어진 거짓된 ‘나’와의 이별이 이 순간 이루어진다. 특히 자넷은 극 중 가장 많이 변화하는 인물인데, 자넷으로 대표되는 <여성>은 가부장제가 시작된 이래로 욕망을 거세당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혼자 브래드의 눈치를 보며 너무 근육질의 남자는 싫다고 내숭을 떨던 자넷은 탄탄한 근육질의 피조물 록키 호러와 뜨거운 밤을 보내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시하게 된다. 가장 욕망이 억제되어 있는 자넷이라는 여성이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굴레를 주체적으로 집어 던지고, 록키라는 남성이 그를 깨우치기 위한 매개로 존재한다는 점은 여성들이 무대 위에서 오직 남성의 도구로서만 존재하던 기존의 작품들을 묘하게 비틀어 조그만 통쾌함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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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ROR; 쾌락, 그 이면의 공포
 
프랑큰 퍼터 박사는 그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메리 셸리의 SF소설 < 프랑켄슈타인 >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모티프로 삼은 인물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훔친 시체 부분들을 접합해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프랑큰 박사 역시 인조인간을 만들 줄 안다는 설정의 외계인이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이 죽음을 정복하고 인류의 미래를 뒤바꾸겠다는 원대한 이상을 품은 것과는 달리, 프랑큰 퍼터는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피조물을 창조해낸다. 이처럼 프랑큰 퍼터는 극단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며, 그의 성은 바깥 세계, 인간세상의 엄격하고 촌스러운 예의범절이나 규율, 사회적 금기 따위는 사라진,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자넷과 브래드는 점차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그러나 모른 척 외면해왔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성적 욕망을 넘어서 내가 ‘나’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들은 프랑큰 성의 기묘한 분위기에 어색하고 거북해하면서도 억눌려 있던 그들의 모습, 센 척하지 않고 약한 척 내숭떨지 않는 진짜 ‘나’를 찾아나간다.

그러나 자유는 질서를 파괴하고 혼돈을 가져오기도 한다. 프랑큰의 극단적 쾌락주의와 이기심은 인간 세상의 고루하고 억압적인 질서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 도덕과 윤리마저도 파괴한다. 극 중 프랑큰은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이며, 때로는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가벼운 인물처럼 비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상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전에 관계를 맺었던 배달부 에디를 도끼로 찍어 죽이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수하의 외계인들을 함부로 대하고, 조카 에디를 찾으러 온 스캇 박사에게 에디의 인육으로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등, 심기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거나 방해가 된다고 느끼면 가차 없이 응징하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위압적인 태도는 점차 그와 수하의 외계인들이 맺고 있던 충실한 주종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에디를 짝사랑하던 외계인 콜롬비아는 그를 살해한 주인 프랑큰에 반발하며, 그가 사람들의 애정을 바닥날 때까지 빨아먹고 말라죽게 만드는 스펀지 같다고 비난한다. 만들어진 도덕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고 그저 사랑받을 줄만 아는 프랑큰 박사는 결국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가장 본능적인, 통제 불가능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자넷과 브래드,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평범한 우리들은 프랑큰과 함께 가식의 베일을 걷고 솔직해지지만 동시에, 그가 보여주는 쾌락의 이면은 프랑큰이 어느 정도 수용되더라도 결국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욕망을 다룬 여타의 작품들에서 욕망을 받아들였던 주인공 자신이 그 이면을 발견하고 다시 무분별한 욕망을 극복하는 결말과는 달리, 극 중 프랑큰은 자넷과 브래드가 아닌, 수하의 외계인 집사 리프라프와 그의 여동생 마젠타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그의 성은 잔해만 남은 폐허가 된다. 프랑큰과 그가 다스리는 성이 욕망에 충실하고 자유분방했을지 모르나, 그는 그곳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며 수하의 외계인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 인물이기도 하다. 리프라프와 마젠타가 그들이 이루고 있던 수직적 권력 관계를 뒤집고 자유를 쟁취해낸 결말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프랑큰의 성이 가지는, 그리고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장 근접한 결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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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였음에도(심지어 스캇 박사의 경우 자신의 조카 에디를 살해하고 인육 요리까지 만들었음에도), 리프라프와 마젠타를 제외한 남은 인물들은 프랑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온전히 외면하고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 사회에서 프랑큰은 통제가 필요한 대상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게 해준 은인이기도 하니까. 하룻밤 새에 자넷과 브래드의 기묘하고 무서운 여행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고, 두 사람을 비롯한 객석의 관객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자넷과 브래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아마 극 초반에서처럼 스스로를 외면하고 부인하는 삶은 아니지 않을까?


 
SHOW;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는 쇼 뮤지컬이라는 개념에 충실하기 때문에, 어떤 복잡한 서사라든가 반전,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보여주기보다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신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는 공연이다. 쇼 뮤지컬답게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화려한 볼거리들과 특별한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중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01 Call back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를 처음 보러 간 관객이라면 단연 가장 생소할 만한 이벤트일 것이다. 콜백은 무대 위의 배우에게 호응해 관객이 하는 일종의 정해진 제스쳐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콜백이 처음으로 등장한 뮤지컬이 바로 < 록키 호러 쇼 >라고 한다.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이하 록호쇼)에서는 이 콜백에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이 있는데, 이는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MD부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 극의 구석구석에 콜백을 하는 타이밍이 숨어있지만 처음 오는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공연 시작 전에 공지를 해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록호쇼의 콜백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자넷과 브래드가 프랑큰의 성 근처에서 폭우로 조난당했을 때 관객이 손전등을 켜 프랑큰의 성으로 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거나, 프랑큰의 대사에 맞춰 고무장갑을 튕겨주거나, 마젠타와 리프라프가 프랑큰에게 광선총을 쏠 때 같이 장난감 총을 겨누어 쏘는 등, 이 밖에도 극 전반에 골고루 숨어있어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다.

 
02 록호쇼의 숨은 주역들, 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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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프랑큰 퍼터와 팬텀들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는 앙상블의 활약이 눈에 띄는 뮤지컬 중 하나이다. 외계인이라는 설정 상 기괴한 분장과 옷차림을 한 앙상블들은 팬텀이라고 불리는데, 이 팬텀들은 무대 위에서 군무와 합창으로 주·조연 배우들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유연한 춤과 리듬체조를 선보이며 눈을 즐겁게 하고, 무대 아래에서는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데 일조한다. 가령, 자넷과 브래드가 폭우를 만났을 때 이 팬텀들 역시 무대 아래에서 커다란 분무기를 들고 관객들에게 비를 뿌리는데 이때 관객들은 사전에 어셔가 나누어준 록호쇼의 신문을 머리에 쓰고 피할 수 있다. 이밖에도 눈에 띄는 것은 팬텀들을 공연 시작 전에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 남자 팬텀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로비를 누비며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과 사진을 찍거나 장난을 치고 돌아다니고, 여자 팬텀들은 공연장 내부에서 미리 착석한 관객들에게 극 중 콜백의 일부인 안무를 선보이며 가르쳐 주는데, 이들이 외계인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연기를 하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공연장의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프랑큰 성의 기묘한 분위기에 설레게 된다.

 
03 무대 연출

록호쇼의 무대가 사실 크게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무대를 꽤 영리하게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는 부분들은 과감히 생략해 조명으로 연출하고, 다소 심심하거나 비어보이는 부분은 객석의 콜백 이벤트로 관객의 주의를 돌리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자넷과 브래드의 침실을 묘사한 부분인데, 두 인물이 서로 몰래 프랑큰과 관계를 맺는 은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무대 양쪽의 대부분을 가벽으로 가리고, 중앙의 무대만 일부 남겨 침실로 활용한 점은 프랑큰과 자넷, 브래드의 침실을 몰래 엿보는 듯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품 역시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무대 위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자동차라는 소품을 앙상블인 팬텀을 활용해 연출한 점, 프로젝터와 의자 하나만으로 영화관을 표현한 장면 등은 재치가 넘친다.
 
*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는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럽고 유쾌한 극이었으나, 아쉬운 점 역시 존재했다. 뮤지컬은 음악과 극을 결합한 장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사 외에도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독백을 ‘넘버’라고 불리는 음악으로 표현한다. 가사 역시 대사의 일부이다 보니 넘버를 들을 때 가창력을 넘어 부르는 이의 (극 중 인물로서의) 감정이나 가사 전달력이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몇 개의 넘버로 극 자체의 이해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의 넘버는 굉장히 아쉽다. 멜로디 자체는 아름답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가사의 절반 정도가 원어를 그대로 가져와 쓰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유희가 들어간 경우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극 자체의 흐름에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극 중 주인공 브래드Brad가 슬퍼할 때 빵Bread을 던지는 콜백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는 그 정도가 지나쳐, 극장에 들어서기 전 줄거리를 숙지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극에 대한 이해나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모두가 영어에 능숙한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다음은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의 넘버의 가사 일부이다.
 

< Science Fiction >
(생략)
Science Fiction Double Feature
Doctor X, 창조한 creature
금단의 행성 화성 침공
지구를 노리는 외계인의 습격
oh-oh-oh-oh
 
At the late night, Double feature, Picture show
I wanna go woo
추억 속의 동시 상영 심야 극장
by R.K.O oh-oh-oh-oh
To the late night, Double feature, Picture show
In the back row, To the late night
Double feature, Picture show

 

< Sweet Transvestite >
(생략)
Don’t get strung out 이런 내 모습에
인간을 겉모습으로 판단할 순 없지
내게 기대하지 마 밝은 태양 아래선
대신 끝내주는 hell of a lover
I’m just a sweet transvestite
From transsexual transylvania
So let me 어디 좀 볼까 maybe 당신들 모습
You look so handsome, sexy, whatever
원하면 특별한 뭔가를 보여줄 수 있어
그냥 그 이상의 무언가를
(생략)

 
연극이나 뮤지컬 역시 극본이라는 문학의 한 갈래에서 출발하는 장르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의 원작을 들여오는 라이센스 작품의 경우 작품 속 담긴 외국의 문화를 어떻게 매끄럽게 현지화 시킬 것인지가 주요 관건이다. 번역은 한 쪽의 언어를 다른 쪽의 언어로 단순히 치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화와 문화 사이의 경계에 선 전달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을 넘어 번역 자체가 덜 된 점은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가 크게 복잡하지 않은 서사를 갖춘 B급 쇼 뮤지컬임을 감안해도 큰 문제로 보인다.

 
한 단계 진보일까, 아니면 두 단계 퇴보일까.

극 중 마젠타와 리프라프의 조수로 등장하는 캐릭터 콜롬비아는 이전 시즌까지 내내 여성 배우의 배역이었다. 그러나 이번 2018년 버전의 콜롬비아는 젠더 프리를 내세워, 여성인 전예지 배우와 더불어 남성인 송유택 배우가 캐스팅 되면서 큰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현재 관객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젠더 프리일지는 다소 의문이다.
 
젠더 프리 캐스팅이 무엇인가? 기존에 강요되던 성역할의 고착을 피하고 사회적 성별, 즉 젠더에 구애받지 않는 다채로운 인간상을 그려내기 위한 시도이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좁게는 남녀배우의 배역의 성별을 반전시키는 데서 넓게는 양성 개념을 벗어난 제 3의 성을 그리거나 성별 구분의 개념 자체를 탈피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현재 젠더 프리 캐스팅은 어떤 맥락에서 요구되는가?

연극이나 뮤지컬을 즐겨 보는, 소위 ‘연뮤덕’들 사이에는 흔히 이런 말이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닌다. 남배우를 파면(팬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살인범도 됐다가, 정신병 환자가 됐다가, 정신의학박사가 됐다가, 왕이 되기도 하고 신이나 천사, 예술가가 되기도 하지만, 여배우를 파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누군가의 부인이 되고 누군가의 여동생이 되고 누나가 되고 누군가의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연인이 된다고. 이처럼 현재 한국의 연극·뮤지컬 판에서 여배우의 입지는 남배우를 위한 소모품 정도로 그친다. 분명 남성 배우의 배역 역시 성역할의 고착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 맞다. 그러나 입체적이고 ‘사람다운’, 아니 그보다 먼저 다양한 여성 배역이 절실한 가운데, 기존의 여성 배우의 배역까지 남성 배우에게 돌리는 시도가 과연 성차별 해소에 도움을 줄지, 아니면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추 하나의 무게를 더하는 결과를 낳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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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워프 댄스를 추는 배우들
 

록호쇼에는 타임워프 댄스라는 콜백이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이 “모두 일어나!” 라고 외치며 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객석의 관객들도 일어나서 춤을 따라 춰야 하는데, 극 초반에는 대부분 수줍어하며 소극적으로 추거나 아예 추지 않는 사람들도 보인다. 록호쇼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필자의 주변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앉아있었는데, 특히 앞자리의 남자가 유독 미동도 없이 서 있었더랬다. 하지만 쇼가 거의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추는 타임워프 댄스에서는 그 남자를 포함한 모두가 완전히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몸을 흔들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느낀 감상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 꽤 긴 글이 되었지만, 사실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 바로 그 장면이 아닌가 싶다. 뮤지컬 < 록키 호러 쇼 >를 통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 하룻밤의 일탈을 권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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