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食일담] 한 입에 베어 무는 럭셔리, 에끌레어

네 번째 후식일담, 에끌레어
글 입력 2018.09.1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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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예쁜 이름이다. 에끌레어. 어딘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느껴진다. 그 이름만큼이나 모양도 맛도 우아한 디저트지만 생각보다 이 디저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직접 제과를 하지 않았더라면 굉장히 늦게 알았을, 어쩌면 지금까지도 낯설게 느껴지는 디저트였을 것이다. 그마저도 내가 직접 만들어본 건 아니고, 제과제빵 책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매혹적이라 기억에 남았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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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끌레어 혹은 에끌레르. 원어인 프랑스어로는 éclair라고 표기한다. 번개, 섬광이라는 뜻인데, 너무 맛있어서 번개처럼 빠르게 먹어버리게 되어 이름마저 번개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맛있는 디저트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슈(choux)*의 일종인데, 빵집에서 종종 보이는 동그란 모양의 베이비 슈와는 달리 손가락마냥 길쭉한 모양이다. 겉면은 초콜릿이나 설탕으로 덮어있고, 속은 갖가지 맛의 크림으로 채워진다. 홈런볼의 크기를 좀 더 키우고 길쭉하게 늘린 뒤 초콜릿으로 덮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상상해보라, 꽤나 괜찮은 조합 아닌가? 이러니 에끌레어는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디저트인 것이다.

*슈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빵 안에 크림까지 채운 걸 슈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본문에서는 크림을 채우지 않은 페이스트리(빵)만을 슈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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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단순한 디저트이다. 반죽을 만드는 게 조금 까다로울 수는 있지만, 일단 슈 반죽을 잘 구워내기만 하면 팔구십 프로는 성공한 셈이다. 속이 빈 슈에 원하는 맛의 크림을 채우고 내 맘대로 겉면을 장식하면 근사한 에끌레어 하나가 탄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에끌레어는 내면보다는 외관에 치중된 디저트라고도 할 수 있다. 재료의 깊은 맛이나 풍미보다는 얼마나 예쁘고 화려하게 꾸미는지가 중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함만을 믿고 재료의 질에 소홀했다가는 형편없는 에끌레어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예뻐도 맛이 없다면 입에 넣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한 법.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기본적인 재료에도 신경 써야 하고, 무엇보다도 갖가지 재료들이 잘 조화되는지가 에끌레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만드는 건 단순하지만 잘 만들려면 상당히 까다로워지는 디저트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잘 만든 에끌레어는 그만큼 무거운 몸값을 갖는다. 손가락보다 조금 큰 게 웬만한 조각케이크 값과 비슷하다. 같은 가격의 쁘띠케이크라면 뭐 그래, 디자인도 다양하고 들어가는 재료도 가지각색이니까 비싸도 이해하겠다. 그에 비해 에끌레어는 그냥 길쭉한 모양에다 안에는 크림 뿐, 그리고 약간의 데코가 전부인데 이렇게까지 비싸야하나 싶다. 그러나 한 입 먹으면 그 삐딱한 생각이 단숨에 뒤집힐 만큼 맛있는 에끌레어들이 있다. 그렇게 나를 납득시킨 에끌레어 전문점 세 곳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물론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이며, 더 맛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은 언제나 환영이다.



파티세리 바이 가루하루(Patisserie by Garu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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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곳 에끌레어가 가장 정통에 가깝지 않나 싶다. 에끌레어의 교과서 격이랄까. 군더더기나 변형 없이 깔끔하고 정형적이면서도 우아한 맛을 낸다. 마치 화이트 톤의 대리석 무늬로 꾸며진 매장 인테리어나, 매장 안쪽 커다란 스피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피아노 재즈의 선율을 닮기라도 한 듯이 고급스러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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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하루의 에끌레어는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한다. 바닐라 에끌레어에선 깊은 바닐라 향과 단 맛을 느낄 수 있고, 유자 에끌레어의 상큼함에는 기분까지 산뜻해지는 한편, 로즈 에끌레어에서는 장미꽃의 우아한 향이 라즈베리 크림의 새콤달콤한 맛과 한껏 어우러진다. 각 재료만의 풍미와 특징이 고스란히 입 안으로 전해지는 좋은 디저트라 생각한다. 슈는 부드럽고 촉촉해, 크림이나 아이싱* 등 다른 재료들과 부담 없이 어울린다. 기타 데코레이션은 대체로 과하지 않은 편인데, 단정한 모습에 오히려 그 기품이 살아난다.

*아이싱(icing) : 디저트 겉면에 마무리로 바르는 크림이나 설탕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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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메뉴들도 괜찮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구겔호프나 쁘띠 케이크도 매력적이지만 그 옆에 놓인 구움과자도 나쁘지 않다. 내가 먹어본 헤이즐 휘낭세는 쫀득한 식감에 약간의 버터 풍미와 고소한 헤이즐 향이 가득한 맛이었다. 시간과 예산의 제약이 아니었다면 다른 것도 모두 한 입씩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맛이다. 아 그리고, 커피는 딱 내 취향이었다. 꽤나 산미가 도는데, 에끌레어와 같은 디저트에 잘 어울릴 법한 맛이다. 테이크아웃은 비교적 저렴하니 에끌레어 포장해 갈 때 한 잔 마셔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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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은 ‘에끌레어 바이 가루하루’라는 이름의 에끌레어 전문점으로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었다고 한다. 쁘띠 케이크나 구움과자 등 다른 디저트로도 메뉴를 확장하면서 ‘파티세리 바이 가루하루’로 이름을 바꾸고 역삼동으로 이사 온 게 작년 말쯤이다. 가게는 매우 작고, 감각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좁아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가 딱 세 세트만 놓여있다. 그 자리들이 비어있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인지라 앉아서 먹고 가고 싶다면 시간대를 잘 고려해서 방문해야 한다. 디저트 클래스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주소 서울 강남구 논현로94길 25-5



빠따슈(Pâte à Choux)


화려한 신사동 가로수길 사이, 비교적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매장에 찾기 쉽지 않은 위치이지만 멀리서도 굳이 찾아올 정도로 알려진 에끌레어 전문점이다. 처음에는 지인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조금 독특한 에끌레어를 팔아서 기억에 계속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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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귀여운 에끌레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름부터 쁘띠 에끌레어인데, 보통의 에끌레어에 비하면 절반 길이에 보다 통통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 한 입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인데, 그럼에도 이 에끌레어들을 한 입에 먹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화려한 치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형형색색에 화려한 데코로 치장한 에끌레어를 마주하면 먼저 눈으로 한 번 먹고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 디자인이 촌스럽거나 경박하지 않아서 더욱 좋다. 에끌레어 하나하나마다 파티셰의 정성과 창의성이 엿보이는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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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 주문을 하면, 맛보다도 우선 디스플레이의 독특함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고풍스런 액자와도 같은 쟁반에 기하학적인 그릇이 놓이는데, 그 강렬한 원색의 조합이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식욕을 돋구는 색채가 있다면 아마 이 색조합은 뒤에서 1, 2등을 다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지만, 그럼에도 일단 에끌레어를 잘라서 한 입 넣으면 식기의 색채조화쯤이야 전혀 신경 쓰이지 않게 된다.

이 집 에끌레어의 강점은 놀랍게도 슈에 있다. 보통의 경우 에끌레어를 먹으면서 슈의 맛을 의식하기가 힘든데, 대부분 크림이나 아이싱 등 화려한 데코에 시선을 뺏겨 정작 기초적인 슈의 맛은 놓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에끌레어에선 슈 페이스트리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적당히 바삭한 식감에 고소한 풍미가 도는 슈의 맛이 다른 재료들 사이에서도 전혀 눌리지 않는다. 크림은 전반적으로 달지 않고 부드러운 커스터드에 가까운데, 잘 구워진 슈 안을 가득 채워 충만한 식감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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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에끌레어만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바로 아이싱이다. 보통의 아이싱이 에끌레어를 감싸듯이 덮는 반면, 이곳의 아이싱은 에끌레어 위에 얹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설탕을 굳혀 만든 것 같은데, 비교적 달지 않은 크림과 슈 사이에서 치고 나오는 단맛을 담당한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디저트에서 단맛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맛별로 아이싱 디자인이 다르고, 화려한 펄과 장식으로 눈이 즐거운 아이싱도 있어 마치 커다란 보석을 먹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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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함의 향연이다. 뭐 하나 평범한 게 없는 집이다. 조금 어두운 조명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형들이 배치된 인테리어 역시 에끌레어 못지않게 개성 있다. 자리가 많지 않은 작은 매장이지만, 오히려 쁘띠 에끌레어 하나 먹고 가기에는 딱 적당하게 느껴지는 크기이다. 에끌레어 옆에 있던 마카롱과 파운드케이크까지 못 먹고 온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랄까.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0길 37



오뗄두스(Hôtel Do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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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50년 쯤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 깊은 곳이다. 진한 청록색 벽지와 갈색의 가구가 조합된 인테리어가 마치 고풍스런 옛날 호텔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어로 ‘달콤한 호텔’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오뗄두스는 동네 주민들에게는 물론이고 에끌레어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에끌레어&디저트 전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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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모양은 제일 투박하다. 울퉁불퉁 일정치 못한 모양이 정겨울 정도다. 하지만 맛은 절대 투박하지 않다. 이곳의 에끌레어는 강하고 진한 맛이 강점이다. 예컨대 시트론 헤이즐넛 에끌레어에서는 강하게 찌르는 시트론의 신 맛과 헤이즐넛의 깊은 고소함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또 피스타치오 에끌레어 역시 강한 단맛과 고소함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이 집의 에끌레어가 맛있는 이유는 맛의 강렬함뿐만 아니라 식감의 강렬함에도 있다. 찐득한 아이싱과 점도 높은 크림을 사용해서, 먹으면 입 안 가득 쫀쫀하게 달라붙는 식감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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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뗄두스의 또 다른 시그니처는 바로 크로캉 에끌레어다. 크로캉(croquant)은 바삭바삭하다는 뜻의 형용사인데, 주로 바삭하고 가벼운 쿠키나 비스켓에 붙는 수식어다. 크로캉 에끌레어 역시 바삭바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모양으로 추측하건대 에끌레어 슈에 비스켓을 붙여 한 번 더 구운 것 같다. 주문을 하면 빈 슈에 크림을 채워주기 때문에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바삭한 슈 크로캉과 부드러운 크림의 조합이 나쁘지 않아, 디저트로도 좋고 가벼운 간식으로도 좋은 메뉴이다.

주소 서울 서초구 서래로10길 9



고급스러운 자태에 먹기 아까워지지만, 한 입 두 입 잘라 먹다보면 어느 새 다 먹게 되는 디저트 에끌레어. 에끌레어가 놓인 접시에는 탁월한 맛과 함께 럭셔리가 깃든다. 그래서 에끌레어를 먹는 것은 단지 미각만의 영역이 아니다. 집집마다 에끌레어의 특징이 다 다른 것처럼 매장 인테리어나 분위기 역시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의자, 센스 있게 꾸며놓은 소품들, 독특한 커틀러리와 접시 디자인, 혹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 새 눈과 귀와 코가 모두 자극되는 풍부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눈으로 한 번, 입으로 두 번, 그리고 오감 모두를 통해 먹는 다채로운 디저트, 에끌레어다.


사진&일러스트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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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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