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너, 나 그리고 그 개

창작극 프리뷰
글 입력 2018.09.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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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물속, 아이와 개 한 마리. 한없이 평화롭고 조용해 보이는 포스터에 끌렸다. 먼 길을 떠나야 해서 망설이고 있던 찰나, 단 두 음절뿐인 제목도 빠른 결정에 한몫을 했다. 때로는 많은 말보다 짧고 굵은 글자 몇 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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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야."


창작극 <그 개>의 주인공은 열여섯 살 중학생 해일, 그리고 유기견 무스탕이다.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프면서도 적절한 비유인지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이 합작해 만든 <그 개>는 소외받고 상처받은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소시민의 삶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길을 잃고, 어딘가를 떠도는 삶은 비단 무대 위의 등장인물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무대 위 등장인물들의 삶 중 어떤 것도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세종] 서울시극단_그개_장면시연 1_하해일(이지혜) 외.jpg


 
'중학생, 제약회사 회장, 운전기사, 에세이 작가, 화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아, 제약회사 회장은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 평범한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수식어가 붙으면 어떨까.

중학생인 해일은 틱장애를 가지고 있고, 왕따로 외롭게 지낸다. 엄마는 말도 없이 떠나버렸고, 아이는 홀로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큰 저택에 살고 있는 제약회사 회장인 장강. 모든 갑질을 일삼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외면받는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별거 중인 아내, 미국으로 떠난 딸 가족으로 인해 외로워하며 반려견 보쓰와 함께 지낸다.

해일과 둘이 살고 있는 아빠 상근은 바로 그 제약회사 회장인 장강을 은인으로 여기며 그의 운전기사로 일한다.

해일이 살고 있는 빌라에 새로 이사 온 화가인 선영과 그 남편 영수는 아들 별이를 키우며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꿈을 꾸지만, 오르는 건강보험료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그 개>는 처참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대 위에 그대로 녹여낸다. 심지어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되는 제약 회사 회장에게도 아픈 사정이 있다. 그렇다고 이 극의 내용이 뜬구름 잡는 저 먼 상상 속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심각하고, 어둡고, 외면하고 싶은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기에 무대 아래의 관객에게 삶에 대해 많은 고민거리들을 던진다. 이런 사연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이상, 이미 무대와 관객들 사이의 거리는 지워진지 오래일 것이다.


[세종] 서울시극단_그개_장면시연 4_김영수(김훈만) 이선영(신정원).jpg


 
Synopsis



저택의 운전기사인 아빠와 둘이 살아가던 중학생 해일은 우연히 유기견 무스탕을 만나 우정을 키우게 된다. 친구가 없던 해일은 분홍 돌고래 핀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며 자신의 비밀스런 속내를 도화지 위에 그려낸다. 그 무렵 위층에 이사 온 선영 가족을 만나게 되고, 난데없이 욕을 뱉는 틱 증상에도 애정과 위로를 보여주는 선영의 믿음에 해일은 웹툰 작가의 꿈을 점점 키우게 된다.

그러다 해일이 아빠를 대신해 장강의 반려견 보쓰를 산책시키러 저택에 드나들던 중, 장강과 아빠가 없는 빈 저택의 정원에 영수와 별이, 해일과 무스탕이 드론을 날리러 갔을 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해일의 무스탕과 장강의 반려견 보쓰 역시 연극의 특성상 극적으로 표현된다. '무스탕과 보쓰의 모습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사진만 보아서는 쉽게 짐작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하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어떤 대사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려본다. ‘그 개’의 사고로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인 이들에게 시련이 닥치게 된다. 결국 이 극은 매일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쉽게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는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가장 어려운 숙제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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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작가는 ‘세상의 변화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아주 작은 것에 있다’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성북동)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사람 가까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어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부새롬 연출은 주인공 해일의 틱장애에 대해 ‘세상의 아픔과 고통은 제일 약한 존재인 해일과 무스탕에게 영향을 미친다.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세상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고통의 은유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며,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생각을 나누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와 연출의 이야기를 듣고 공연을 보면 그 이야기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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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열심히 살지만, 진정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외부에서 오는 작은 충격에도 크게 힘들어하고, 저마다의 상처와 걱정을 끌어안고 산다. 작은 일에도 기분이 좋아졌다가, 별것 아닌 일로 화를 내기도 한다. <그 개>가 보여주는 것은 복잡한 세상의 지극히 작은 단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무대를 보며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행복과 불행에 대해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10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그 개가 관객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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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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