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연이 상황을, 상황을 인연이 [문화 전반]

우울 주의
글 입력 2018.09.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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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한 눈과 얼굴로 돌아다니는 시기가 찾아왔다. 애써 숨기려 하지만 이내 미어터져 나온다. 이제껏 여러 사람 피해주며 ‘사랑과 전쟁’을 찍어왔으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예고편 중인가보다. 거절 당하고 부정 당하는 거는 익숙해진 듯 금새 새로워지며, 누군가를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떠나 보내는 것은 여전히 처음 그 당시 같다. 아니, 이젠 시작하는 것도 섣불리 못하겠으니 더 악화되었다고 봐야겠지. 분기마다 찾아오는 몸살감기의 자매품 마냥 잊을만하면 크나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글지글 은혜로운 고기님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이 아이의 방문을 체념한지는 오래이고, 그래 그래서 이번엔 무엇 때문이니.

이유가 있었다면 내 성격에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지. 그냥 단지 한동안 빛을 너무 많이 받고 살았어서, 너무 웃고 살았어서 기가 다한 거라 여긴다. 모든 게 시끄러워서 어두운 곳으로, 백색소음만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 간다. 백색소음이 나를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그 때쯤에는 다시 나오고 싶어지겠지.

혼자라고만 믿어왔고,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었고, 혼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그 믿음에 조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항상 외로웠고 그걸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무뎌져서 진짜를 못 보고 있는 거였고, 한번도 손을 놓아본 적 없던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금방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상황 뒤에 숨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고, 그렇게 다 생각을 하고도 정작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제일 웃긴 건 머리로는 받아들였는데 아직 이 모든 걸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

단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대처 방법을 알아가는 건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 방법을 많이 아는 사람들을 어른이라 부르고 나이 값이라고 하더라. 언제나 혼자이고 끝도 혼자라지만 혼자 끙끙대기엔 너무 지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그 관계에서 또 매 순간 새로운 걸로 끙끙인다. 시작이라도 했으니 후회하지 않지 않겠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금방 괜찮아 질 거야, 라는 소리들은 이미 잊어 버린 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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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혀왔던 관계와 상황들이 터져 근 한 달 동안 일상 생활을 하지 못했을 때, 가만히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하루에 4시간씩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그러니 몸이 못 견뎌서 정신을 잠들게 하더라. 그런데도 미쳐 날뛰던 정신은 꿈에서까지 쉬지 않고 잊고 있던 기억들까지 들춰내고, 미안하다고 울부짖게 하면서 몸을 깨우고 내 의지로 이럴 기력도 없을 때엔 눈과 손을 쉴새 없이 떨리게 했다. 밥은 더 이상 식사가 아니라 사료가 되었고, 그 사료도 누구 하나 챙겨 주는 사람이 없어 며칠 동안 거르기 일수였다. 그런데도 멍청한 나는, 지금 이것도 괜찮은 거고 다 혼자 감내해야 하는 거라고, 이렇게 혼자인 걸 바란 거 아니었냐며 묵묵히 버텼다. 역시 유지은 미련한 거는 참,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호갱이 되는 기분이란.

그러다 숨구멍이 트였는데,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하며 막혀있던 게 한 순간에 싹 내려가더라 정말 허무하게도. 그런 뒤로는 괜찮아진 듯 지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며 준비해왔던 상황에 속해있었고 주변 관계들도 정리가 되어 온전히 나를 위해 앞만 바라보며 달리면 되었다. 문제는 나와의 관계, 내 머릿속과 상황과의 관계. 정말 괜찮아진 줄 알고 설(레발)치다가 스스로에게 한 방 쎄게 먹었다. 그 뒤로 또 언제나 그랬듯 혼자 끙끙대고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6년 친구에게 전화해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누군가 보거나 듣고 있는 앞에서 그렇게 울어본 기억은 희미하지만 유치원 이후로 처음이다. 내 침대의 코순이만 알았지 부모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던 내 모습을 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그 때서야 유일하게 가감 없이 보여줬다. 처음으로 ‘내 사람’이 되어 마음 깊숙이 받아들였다.

이젠 괜찮아졌다 세뇌시키지 않기로 했다. 애써 괜찮아지려 하지도 않았고 괜찮아졌는지 들춰내 확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전히 밝은 듯 지냈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는데, 하고 싶었는데 턱 막혀버렸다. 무엇 하나 나를 멈춰 세우는 것은 없었는데 스스로가 스스로의 등을 필사적으로 뒤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다시 할 수 있겠냐고. 그렇게 힘들었던 게 또 반복될 텐데 괜찮겠냐고. 그렇게 놓쳐버렸다. 내 자존심에, 내 성격에,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엄두가 안 난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렸다니. 성질 급하고 일단 지르고 보던 건 다 어디 갔지.

내가 놓쳐버린 걸 다시 잡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더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상처 가득한 사람들끼리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나의 두 번 째 온전한 ‘내 사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 당시의 쓴 메모를 볼 때마다 그만 울 수 있을까. 그렇게 이 아이도 내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상황이 만들어낸 상황 속의 위태로운 관계로 이뤄진 상황을 박차고 '내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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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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