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그믐, 또는 당신이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

글 입력 2018.09.2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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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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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행동연극으로 주목받고 있는 '극단 동'의 기대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만나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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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범상치않은 이 작품은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장강명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연극인데요, 기대보다 더 난해고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무대에서 펼쳐낸 ‘기억, 시간’이라는 패턴속에서 과연 나는 어느 지점에 흐르고 있는 것인가를 되묻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이란 이별과 죽음이라는 결과를 언제나 예고해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남자가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서도 오직 여자와 함께하는 순간을 위해 다시 그녀를 찾아온 지점, 이별과 죽음을 알고서도 오로지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한 지점이 되서야 비로소 이해되지않던 긴 제목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뜻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있게 되었는데요, 시간의 물리적 순서나 결과를 초월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세계의 가치는 사랑이 아닐까요?

우리는 시간을 오로지 과거에서 현재의 한 방향으로만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 속 출판사에서 원고지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앞뒤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연극은 순서가 뒤바뀐 소설대로 연출되는데요, 첫사랑을 하던 시절의 모습, 친구를 죽이게 되는 상황의 반복, 죽은 동급생의 모친이 자신의 착한 아들은 동급생을 괴롭힐 리가 없다며 주인공을 압박하는 고통의 반복, 그럼에도 주인공은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급생의 모친에 의해 죽여지기를 선택한 속죄의 모습들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교차하는 시점변화 방식으로 우리 기억의 패턴에서 분해하고 있는듯 했습니다.

잠시 작품속으로 들어가보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을 뒤집어 교차시키는 이 연극 속 남자와 여자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사이였는데요,  동급생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간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에 보내고, 여자는 소설 내용이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재회하게 되고, 남자는 시간을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시작합니다. 주인공 남자는 그믐날 자신 속에 들어온 ‘우주 알’을 받아들여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되고, 시간을 한 방향으로만 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 고통을 어루만지게 됩니다. 모든 것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라면,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끝도 없이 계속될 것 같은 불행을 조금이라도 감당하게 할 수 있을까요?

주인공의 소설 ‘우주 알’에 부여된 미래를 바라보는 능력은 첫사랑의 여자가 남자의 전과자가 되었던 과거를 잘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자신이 살해될 것을 예견하면서도 그녀를 선택하는 무능력으로 보여지는데요, 죄와 속죄, 나와 타인의 이해가 과연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 되묻고 있습니다.

소극장이였지만 무대구성이 매우 독특하였는데요, 덩그라니 기울어진 큰 보름달과 아래붙은 작은 보름달이 조명에 따라 그믐까지의 시간을 품고 있었고 극의 서사와 남자의 회상의 내용과 순서가 뒤죽박죽 오가는 무대위를 주인공들은 자전하며 공전하듯 빙빙 돌며 대사를 합니다. 과거를 말할 때는 반시계 방향으로 현재와 미래를 말할 때는 시계 방향으로! 남자 주인공은 영훈이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았고 영훈이도 엄마의 기억처럼 순수하고 말 잘듣던 아이는 아니었으며 그 엄마도 용서의 가면으로 복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보람이가 가정으로부터 받았던, 또 영훈이가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폭력과 모멸감, 외로움,,, 우리 모두는 그런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인간의 기억과 시간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며 무엇을 버리고 가는 걸까요?

기억의 무게감과 함께 세계를 기억하는 나의 방식을 자문하게 되는 여운을 남기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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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인적으로 김신록 배우를 만나 인사를 나눈 날이었는데요, 동시간에 멋진 배우와 함께 의미있는 작품을 관람한 감흥을 오늘의 기억으로 새겨 봅니다!


[김은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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