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rror : 알고리즘으로는 해결 안 됩니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9.2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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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 갔다 왔다.


사실 비엔날레의 존재를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SNS에서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후기를 흥미롭게 읽었지만 까먹고 있다가 몇 주 전에 여행 계획을 세우며 광주에도, (광주비엔날레 : 상상된 경계들) 목포에도 (전남수묵비엔날레) 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전시회의 일종인 것 같은데 찾아보니 ‘비엔날레’는 이탈리아어로 ‘2년 마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을 일컫는다고 한다. 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동향을 소개하는 장이며 비엔날레가 열리는 국가, 도시마다 각자의 특색에 맞추어 조금씩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2018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는 ‘좋은 삶’을 주제로 한다. 11월 18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면 열여섯 국가의 예순여덟 참가자들이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들을 볼 수 있다.


왜 주제를 ‘좋은 삶’으로 정했는지에 대한 답은 안내책자에 나와 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좋은 삶’이라는 나침반은 절실하게 소중합니다. 21시게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선 이후 우리의 세상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이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 방식을 밑동부터 바꾸어 나가고 있으며 아이와 청년과 중년과 노년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새로운 상황에 부닥치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기후 변화와 생물들의 멸종 등으로 지구 전체의 생명 영역 자체에 파국이 임박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수많은 것들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인간 자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나가는 진화의 과정을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후좌우와 위아래조차 구별할 수 없는 총체적인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길을 되찾기 위해 매달릴 질문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디오가이드나 도슨트의 설명 없이 관람해서 그런지 나는 이 비엔날레가 꽤 불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전시관 이곳저곳에 작품이 놓여있어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느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으며 작품 옆에는 작가와 제목, 그리고 예를 들어 ‘비디오, 사운드, 디지털 콤포지션, 2분, 작가 제공’과 같이 정말 표면적인 설명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에 기분이 나빴다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좋았다. 장황한 설명이 없는 대신 작품들은 직접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몇몇 작품은 온몸으로 물음표를 뿜어내며 마치 살아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과 고민의 결말은 당연히 좋은 삶은 무엇인지에 이르게 된다. 안내책자에는 또한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저희는 ‘좋은 삶’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 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단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 이미 우리의 상상과 직감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한 미래의 ‘좋은 삶’의 옷자락을 잡아 그 파편을 펼쳐놓을 뿐입니다. 그 파편 조각들을 모아서 여러분 스스로의 ‘좋은 삶’의 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희들은 그 파편들 그리고 그 파편들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작업장을 여러분께 드리고자 합니다.



1층 전시장엔 ‘아고라’라는 공간이 있다. 원래 아고라라고 부르는지, 이번만 아고라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토론의 장인 아고라는 이번 전시와 너무 잘 어울린다. 이 곳에선 사는 법(강연), 행하는 법(공연), 노는 법(연계프로그램)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청년 독립의 재구성: 자치적 독립과 그를 위한 조건들’을 주제로 한 강연 및 토론회,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마침, 좋은 삶’ 퍼포먼스는 그 중 일부이며 많은 강연, 토론회, 퍼포먼스, 워크숍 그리고 관객참여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전시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미리 감상부터 말하고 싶다. ‘좋은 삶’이라는 커다란 주제가 다룰 수 있는 분야들은 생각보다 광활했다. 인공지능, 환경, 인권, 국가, 청년, 소비 등 같은 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적이 다른 여러 작가들의 독창적인 생각, 문제의식, 그리고 표현방식은 충격적이면서 놀라웠다. 내가 무덤덤하게 감상할 수 있는 현대미술이 과연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가지 색깔의 작품 스타일을 보다보니 충격이 배가 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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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없이> 김상돈



1층 로비에는 <바다도 없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쇼핑카트에 매달린 색색깔의 (아마) 노끈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뺏기고 나면 신밧드의 배가 연상되는 돛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돛은 작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데 중요한 글씨는 두껍게, 빨갛게, 검정과 빨강을 섞어서, 또 네모까지 쳐서 쓰여 있다. 강렬하고 혁명적인 느낌이 마치 대자보 같기도 하다. ‘현세에서 예술가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둘’, ‘실체라는 환각’, ‘극소수’ 등의 문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사실 작은 글자가 빽빽이 들어갔는데 내용도 꽤 난해해서 몇 줄 읽다가 포기했다. 설명서에 따르면 김상돈 작가님은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적인 시간대에 놓인 모두가 현실 속에서 과거와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작품을 만드셨다고 한다. 또 이 작품은 파편적인 인간 삶이 아닌 인간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함께 논의하는 지표 역할을 한다고도 하는데, 일부만 언뜻 보이는 파편 같은 글자들로 이루어진 삶은 겉만 화려한 빈 카트처럼 공허하며 삶의 본질과는 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지 마음대로 추측을 해본다. ‘좋은 삶’에 대한 이해를 담은 배 모양의 설치물은 비엔날레 항해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듯이, ‘좋은 삶’이란 주제 아래 다양한 소주제들이 존재한다. 난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써보려 한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사물이 지능화되는 제 4차 산업혁명은 예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라뜰리에 전시회에서는 고흐가 그린 초상화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눈앞에서 미니어처 고흐가 걸어다니며 에밀 졸라 역의 진행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짧은 연극까지 볼 수 있다. 이렇게 예술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결합해 한 단계 확장한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진 것이다. ‘좋은 삶’ 비엔날레에서는 인공지능의 섬뜩함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주며 기술과 예술 간의 관계를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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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인공지능> 민세희



작품 설명 中 :


<모두의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의 생활적 편리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한다. 인공지능(A.I)의 인공(Artificial) 지능이 아닌 증강된(Augmented) 지능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과연 누구의 지능이 증강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특정한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 말하는 ‘모두’의 범위에 나는 속하는가. 나의 지능은 인공지능과 함께 증강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누구인가. 이 전시에 초대된 사람들은 그 ‘모두’에 속하는 사람들인가. ‘모두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지점이며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완전한 조건이다. 인공지능은 과연 ‘모두의’가 될 수 있는가.





2016년 3월, 알파고 대 이세돌 혹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라고 불리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의 대결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대결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었고, 몇몇에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최초로 시민권을 받았으며 어느 정도의 표정 짓기와 인간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앤드류 솔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우리 모두 당신을 믿고 싶지만 로봇에 대한 안 좋은 미래는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소피아는 ‘당신은 일론 머스크의 글을 너무 많이 읽었고,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보는군요. 걱정 마세요. 당신이 나에게 친절하다면, 나도 당신에게 친절할 겁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소피아의 대답을 듣고 걱정이 안 되긴 커녕 그녀(그것?)의 언변에 소름이 끼쳤다. 인공지능 기술은 많은 모순점을 갖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직업을 뺐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민세희 작가님이 제시한 것처럼 정말 인간을 위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조차 확실한 대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태다. 소피아는 인터뷰에서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도 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인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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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 초상화> 마이크 타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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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고 그들> 마이크 타이카



작품 설명 中:


<비현실 초상화>는 신경 네트워크를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인간 얼굴에 내재하는 공간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초상을 상상하고 묘사한다. 이를 위해 플리커에서 수천 점의 얼굴 사진을 수집하여 생성적 적대 신경망이라고 하는 일종의 기계-학습 프로그램에 입력시켰다.


<우리, 그리고 그들>은 초기작 <비현실 초상화>를 신경망 텍스트 생성 및 키네틱 조각과 결합한 다중 모드 인스톨레이션이다. 이 작업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봇(bot: 챗봇, 트윗봇 같은)으로 판명된 계정에 최근에 올라온 20만 개의 트윗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 트위터 계정들은 <비현실 초상화>에서 보여진 상상 속 인물들의 계정이며, AI에 의해서 생성되는 정치적 트윗을 기계-학습으로 작동되는 20개의 프린터를 통해 끊임없이 분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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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인공지능을 통해 만들어낸 것도 신기한데, 이 비현실의 사람들은 각자 계정도 갖고 있다. 사진, 그 옆에 이름, 이름 밑에 뭐라고뭐라고 적힌 트윗을 보면 실제 사람의 계정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나중에는 댓글 알바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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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페이셜 포트레이트> 신승백, 김용훈



작품 설명 中:


화가들을 초대하여 한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화가들은 다음의 조건을 따라야 했다. “인공지능은 완성된 초상화에서 얼굴을 찾을 수 없어야 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카메라는 그림을 지켜보고 모니터에 얼굴 검출 여부를 표시한다. 화가는 이를 참고로 인공지능에 의해 얼굴인식이 되지 않는 초상화를 그려나간다. 이는 쉽지 않다. 인물과 가깝게 그리면 쉽게 얼굴인식이 될 것이고, 얼굴인식이 되지 않게 할수록 그림은 대상에서 멀어져 초상화라고 하기 어려워질 테니까. 인공지능은 얼굴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그 대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인간만의 시각적 영역을 찾아야한다.


*


미션! 얼굴인식이 안 되는 초상화를 그려라! 정말 기발한 시도다. 단순히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목표를 위해 기술을 이용한 셈이다. 예술과 기술의 관계가 이렇게도 맺어질 줄은 생각도 못 해봤다. 또 인간만의 시각적 영역을 찾아야한다는 이 작품의 목표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인공지능한테 도전장을 던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스프링> 오스카 샤프 & 로스 구드윈



작품 설명 中:


<선스프링>은 ‘벤자민’이라는 인공지능이 쓴 대본으로 만든 9분짜리 단편 영화이다. 벤자민은 장단기 기억 순화신경망이란 알고리듬을 기반으로 대본을 쓰는데, 이 알고리듬은 딥러닝 기술의 한 부분이다. 벤자민에게 여러 SF드라마, SF애니메이션 등의 작품 대본을 학습시켰고, 딥러닝 학습의 결과 <선스프링>의 대본을 만들어냈다. 벤자민이 쓴 대본은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이 많았는데, 감독이 오스카 샤프는 이를 어두운 미래 세계에서 일어날 살인과 로맨스로 이해하며 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세 명은 대본을 읽고 감정과 몸짓을 떠올려 연기했다.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 내용이 뭔지 파악이 안 돼서 영어라서 잘 못 알아듣는 건가 싶었는데, 댓글을 보니 대사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어떻게 저런 개연성 하나도 없는 대사를 뱉으며 감정을 끌고 갈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하다. 일단 대본을 인공지능이 썼다는 것에서 일차적인 충격을 받고, 그런데 완벽하지 않은 대본이라 안도하고, 그런데 그 난해한 대사가 어두운 미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감독의 생각이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고,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못 알아들어도 어떤 내용인지 대충 상상이 가능한 게 신기하고, 음악도 좋은 것 같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해도 굉장히 흥미롭게 감상한 기적의 9분이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해 완벽한 대본을 쓰는 기계가 생겨 인간이 창작의 고통과 희열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 어쩌면 벤자민은 시대를 앞서가 미래의 언어로 대본을 쓴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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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표지판> 스캇 켈리 & 벤 폴킹호른



작품 설명 中:


“이 물건을 구입한 사람은 (이러이러한) 다른 물건도 함께 구입했다”는 제안을 하는 추천 알고리듬은 온라인 세계 곳곳에 산재하며 우리가 보고, 구입하고, 좋아하는 것들까지 규정한다. 작가들은 이러한 알고리듬이 우리를 위한 우리의 결정을 본질적으로 만든다는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해보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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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에 나와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유투브의 맞춤동영상, 왓차플레이의 영화추천 기능과 유사하다. 유투브를 예로 들면, 유투버에선 내가 지금까지 시청하고 좋아요를 누른 동영상들의 통계를 참고해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동영상을 추천해주는 ‘맞춤동영상’ 기능이 있다. 이 기능들은 꽤나 잘 들어맞고 또 실용적이라고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찰나의 표지판> 작품을 보기 전까진 이에 대해 한 번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 기능들이 인간의 무궁무진한 취향을 기계적인 데이터 분석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서비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니 일단 나는 작가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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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쿠키> 최성일, 리케 글라저


*위의 사진과는 별개



작품 설명 中:


데이터를 통한 예측 분석은 미래의 불확실한 이벤트를 예측하는 고급분석의 한 갈래이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이 점쟁이(fortune telling)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이라는 조금은 두루뭉술한 예측이 네트워크가 우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의 성향을 넘어 미래에 할 것 같은 선택을 예측한다는 점과 유사하여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점을 보는 것의 기초적인 장난과 같은 포츈 쿠키(fortune cookie)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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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찰나의 표지판>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전시를 보다보니 옆에 “하나씩 가져가세요.”가 적혀있는 종이가 붙은, 거울로 이루어진 육각형 상자가 나왔다. 손을 넣어 꺼낸 것은 데이터 쿠키. 실제 포춘쿠키와 같은 모양과 맛이지만 점괘 대신 특이한 것이 적혀 있었다. 내 데이터 쿠키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왔다: 어려운 법률용어로 가득 차 있는 지나치게 긴 약관은 사용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동의”를 하게 만들어졌다. #사용자중심 #동의 #datacookie


내 메시지로 미루어보아 다른 쿠키에도 인터넷과 인공지능에 대한 약간 불편한 얘기들이 적혀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직접 쿠키를 꺼내고 무슨 말이 적혀 있을지 기대하며 뜯어보는 사소한 일이라도 전시회 중에 내가 직접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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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 아트 뮤지엄> 제레미 베일리



작품 설명 中:


<네일 아트 뮤지엄>에서 ‘유명 뉴미디어 아티스트’인 제레미 베일리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손톱에 부착된 미술관 좌대(미술관에서 가장 파워풀한 오브제) 위에 가상의 전시를 기획, 개최한다. 비디오 영상에서 베일리는 익명의 인물로 등장하여, 디지털 사생활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다. 이 작업은 명성과 사생활, 개인적 표현과 차용의 문제와 같이 인터넷 시대에 흔한 갈등의 문제를 유쾌하게 탐구하면서, 미술관이 이러한 변증법적 문제에 쥐고 있는 권력을 강조하고 있다.


*


이번 비엔날레에는 영상작품이 많아 티비가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은 6분짜리 영상인데 집에서 편하게 찍은 것 같은 느낌에 약간의 유머러스함이 더해져 재밌게 봤던 영상이다. 제레미 베일러 작가님은 끝까지 얼굴이 나오지 않은 채 자신의 밋밋한 손이 어떻게 미술관이 됐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손톱에 유명 미술품은 물론이고 나이키 같은 브랜드나 재생되는 영상까지 올려놓을 수 있다. 원하는 건 거의 다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순서도 쉽게 바꿀 수 있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전시를 개최할 수 있게 된다. 나중에 또 기술이 발전하여 네일 아트 뮤지엄은 물론 상용화되고 더 나아가 위치에 상관없이 눈앞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생생히 볼 수 있게 된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은 절대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예술품들을 독창적으로 배열하고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예술행위 혹은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요소 때문에 아름답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저 작품은 저러해서 마음에 안 든다. 같은 추상적인 생각 대신 작가들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느라 치열하게 고민했던 비엔날레였다. 물론 제일 좋았던 작품도 마음속에 정해놨고, 나한테는 별로 와 닿지 않았던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생각할 거리를 최소한 한 줄씩은 던져 주었던 것 같다. 힐링했다는 기분에 배워간다는 느낌이 더해진 전시회는 오랜만이라 행복하다.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환경이나 인권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영원히 해결 못 할 것 같았던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한 세 걸음 정도 가까워진 것 같다.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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