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올해도 9월이 지난다, < 9월 > [공연]

열기에 바람이 지나듯, 올해도 9월이 지난다.
글 입력 2018.09.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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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의 근호와 리아.
기차역을 찾은 선희와 해리.
기차역을 떠나려는 영주.
그리고 역무원

9월의 기차역에 그들은 왜 머물러 있나.



선희라는 아줌마가 가방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가방 안에 무언가 중요한 게 들어있냐고 묻는 누군가의 말에 아줌마는 꼭 중요해야 하냐고 되묻는다. 앞을 멍하니, 마치 누군가를 쳐다보는 듯한 눈으로, 그렇지만 아주 맹해서 아무것도 담겨있을 것 같지 않은 눈으로 아줌마는 외쳤다. 꼭 중요한 게 있어야 하냐고.

사람들은 물건을 잃어버리곤 한다. 갖고 싶어서, 또는 누군가가 선물로 사주었기에 소지품으로 들고 다니는 물건. 누군가는 물건에 큰 애착을 갖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물건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세상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나는 물건을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데, 며칠 전에도 체크카드를 잃어버렸지만 어디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몇시간동안 분실신고도 하지 않고 한 차례 외출을 더 하고 오기도 했다. 가족의 잔소리에 결국 새벽에 분실 신고를 해야 했었지만 나는 물건을 잃어버린다고, 누군가 그걸 주워서 사용할 것 같지도 않고, 만약에 누가 사용한다고 해도 신고하면 되니 별 걱정을 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을 신뢰하는 걸까, 나라의 시스템을 신뢰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아무래도 좋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내 남자친구는 물건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운동화, 옷을 새로 사지 않고 오래 입는 편이고 핸드폰도 오래 사용하는 편이다. 종이가방도 오래 써서 내가 운동용 가방을 하나 새로 사주기도 했다. 그래도 며칠간 그 오래된 종이가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틴 파우더를 넣어다니는 쉐이크통을 얼마 전엔 헬스장에 놓고 왔는데 주말 지나고 헬스장 가보니 관리자가 버렸다고 헤서 엄청나게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솔직하게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상실감을 추측해볼 수밖에 없었다. 사진 한 장도 소중히 여기는 섬세한 그에겐 물건이란 게 사람과 추억과 비슷한 것 같다. 또 일주일 전쯤엔 담배를 잃어버려 속상해하기에 학교가는 길에 내가 주워주기도 했다.

물건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관계없이 그걸 잃어버리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해도 그 물건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또한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며 사실은 아무 의미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건의 중요도는 잃어버리는가보다는, 물건을 찾으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사실 '물건'에 관해 말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건데, 늘 교수님들은 내게 쓸데없는 한가지에 꽂혀서 그것만 판다고 말한다. 주제와는 점점 멀어지고,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어쩌면 연극 <9월>의 리뷰를 하는 자리에서 '물건을 잃어버렸다'라는 한 마디에 집중해서 연극에 대한 평가는 시작도 하지 않고 뭐 누가 물건을 잃어버리고, 누가 찾고 그런 게 중요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들의 삶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내 삶에서는 더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뻔히 다 아는 연극의 줄거리를 세세하게 나열하는 것보다는 나에게 일어나는 이 순간의 문제를 쓰는 것이 나의 글쓰기인 것이다.

물론 학점이 중요한 과목에서는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나에게 좋은 학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3년 6개월동안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나는 여전히 똥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제는 교수님들이 내 말을 흥미롭게 들으면서, 동시에 내가 어떤 애라고 판단을 내리고 있을지도 다 보인다. 하지만 변태스럽게도, 나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지리적인 요건과 물리적인 요건이 충족되어 그렇게 멋지고 복합적인 건물이 나왔다고 발표하고 싶지는 않다. 건축에도 그렇고,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런 기계적인 분석은 햇빛과 바람을 어느 정도 받으며 쾌적하게 살기 위해 최소한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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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시작하기엔 너무 무대가 작았다. 그리고 그렇게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에 무대 뒤에 있던 커튼이 양옆으로 열리고 거대한 역사가 나타난다. 역에는 2개씩 붙어있는 의자가 4쌍이 관객을 향해 약간 틀어진 방향으로 놓여있고, 여자 한 명과 역무원, 그리고 남자 한 명이 멍하니 움직이지 않은 채 앉아있다. 의자와 의자 사이에 앞을 향해 쭉 뻗은 방향으로 철길로 보이는 길이 있고 역무원은 그 길의 종점 부분의 의자에 앉아 있다. 그 길을 따라서 선희가 달린다. 아주 느리게. 갑자기 어떤 어린 여자가 킥보드를 타고 와서 무대 주변을 빙빙 돈다. 갑자기 밝아지고 넓어진 화면에서,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세 사람, 그리고 선희가 느리게 움직이고, 킥보드를 타는 여자는 빠르게 회전한다. 엄청난 연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선희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간다. 아니, 고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때 그녀가 남편과 살았던 곳. 그 곳에서 리아와 리아의 아버지 근호를 만난다. 리아와 아버지는 늘 싸운다. 통일이 되면 이 변두리 지역이 개발될 거라고 말하며 그 곳을 지키는 근호와, 서울로 가서 좋은 빌딩을 사서 편하게 살자는 리아. 그 변두리 지역에서 24시간동안 슈퍼를 열어서 돈이라도 벌어보자고 말하는 리아와 그게 무슨 소용이겠냐 하는 아버지 근호. 리아가 선희를 민박손님으로 데려오는 바람에, 근호네 집은 뜻밖에 민박집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리아를 윽박지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 모습을 하는 근호의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근호네 집에 간 선희와 근호는 서로를 알아봤다. 과거에 죄를 지은 자와 형사 관계였던 것이다. 리아는 선희의 전남편이 바람을 폈던 여자가 근호와 새롭게 결혼해 낳은 아이였고. 그 자리에 근호의 전처인, 자기 엄마가 집을 나갔다며, 리아의 언니 해리가 찾아온다. 그렇게 점점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의 과거가 하나하나 밝혀진다. 흥미진진한 3류 싸움의 소재로 적절한 치정살인, 그리고 딸의 아버지를 잘 모르는 꼬이고 꼬여버린 족보, 그런 드라마에 쓰일 법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들이라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 몇가지가 있다.

첫째, 왜 근호는 전처가 집을 나간 것이 해리 잘못이라고 했을까? 또 무슨 짓을 했냐고, 니가 잘못한 게 아니면 집을 나갈리가 없다고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그 이야기 뒤에, 혼란스럽게 리아와 해리가 말을 주고받으면서 어린 시절에 사진관 아저씨가 해리에게 했던 짓을 말한다. 리아가 '사진관 아저씨가'를 반복하고, 해리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식으로 구성된 그 긴장어린 전개에 숨을 쉴 틈도 없었다. 사진관 아저씨가 젖은 해리의 몸을 수건으로 닦고 알몸이 된 그녀를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나온 이야기와 맞추어보면, 그 사진관 아저씨가 칼을 들고와 형사일을 하던 근호를 찔러 근호는 더이상 형사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리아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 근호와 아내는 헤어졌다. 그리고 근호와 리아는 그 시골에 남고, 엄마와 해리는 서울로 가서 사진관을 차리게 되었다. 해리는 사진관이라는 게 그때 상처의 치유 행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말한다. 사실은 해리의 엄마도 같은 심정이었기에 사진관을 버리고 탈출해버린걸까? 차마 딸에게는 그런 말을 못하고?

해리의 엄마는 사진을 찍으면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나온 모습을 보고 그걸 보기 싫어한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사진을 찍으면서 막상 자기는 듣고 싶지 않아한다고. 그러면서 자기는 또 사진을 찍지 않는다. 너무 못생겼다고 하면서. 리아는 그런 엄마에게 '못생긴 게 아니라 이야기가 너무 많은 거랬잖아'라고 말한다.

사실 나의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나는 중고등학생 때 거울보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거울을 어릴 때부터 잘 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 거울을 봤더니 너무 못생기고 퉁퉁 불어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였다. 충격을 받아서 거울을 늘 최소한으로만 보고 눈곱이 붙어있어도 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누가 딱히 못생겼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친구들은 장난치느라 거울을 내 눈앞에 들이밀고는 했다. 모두가 다 알듯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얼굴은 살이 몰려서 제일 끔찍하게 생겼다. 나는 늘 친구들의 그런 장난에 기겁을 했고 거울을 너무 무서워했었다. 물론 대학교에 와서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고 꾸미면서 외모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이제는 오히려 맨 얼굴인 내 모습도 예쁘다고 생각한다.

거울엔 자신이 담겨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인터넷에, 모두가 보는 공간에 자기가 제일 귀엽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떡하니 올릴까? 몸매가 다 보이는 옷차림을 한 전신 사진을 어떻게 카톡 프로필에 담을까? 지금은 거기에 보정이 조금씩은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자존감. 그 자존감을 타인에게 보여주느냐 혼자만 갖고있느냐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나처럼 거울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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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역무원의 존재가 참 이상했다. 공연만 봤을 때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끔은 서있다가 가끔은 앉아있다가 돌아다니는 그 역할이 무엇인지 몰랐다. 리아나 해리가 해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대답도 하기는 하는데 도대체 극 속에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을 굳이 그 극 안에 넣어야만 했을까? 모든 사람이 동적으로 움직이면 극이 분산되니까 중심이 되는 선에 그 사람을 둔 걸까?

세번째로는 극 중간에 근호, 영주, 리아, 해리가 여행을 떠날 때의 나레이션이 들리고 무대가 깜깜하게 손전등만 비치던 장면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나레이션 속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앞의 차 둘이 부딪히고 한 명이 죽은 거로 나오는데, 역무원 역할을 맡은 사람이 어둠 속에서 리아를 비춰준다. 그게 죽은 사람을 보여주는 건가? 싶었는데 자고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나레이션이 끝날 때까지 다 비추는 거였다. 사실 그 장면이 정말 필요했던 건가? 그렇다면 그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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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역을 맡은 분이 영혼을 담아서 연기를 했다. 영주나, 선희, 해리, 근호 등 모두가 연기를 잘 해주셔서 집중해서 연극을 보기도 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영주와 선희의 눈물에 감흥해서 따라 울기도 했다. 해리도 고함지르는 연기를 잘 하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리아가 가장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연기를 했다. 아직 어리고, 엄마와 언니와 서울에서 살고싶지만 현실에 체념하고,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한 막내의 꿋꿋함이 보였다. 답답한 언니에게 팔짝팔짝 뛰며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목소리와 음역대가 자유롭게 넘나들어 고함을 지르는데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슬픔이 전달되도록 들려왔다.

해리를 연기하시는 분은 슬픔을 목소리에 다 담아내지 못하셨다. 그렇기에 과거의 내가 또 생각이 났다. 나는 늘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뒀다 한꺼번에 터뜨렸기 때문에 울면서 고함을 지르면 하나의 묵직한 톤으로 쏟아져나왔다. 감정이 더 이상 절제가 되지 않고 그냥 비명처럼 내던지는 말. 제발 알아달라고, 이렇게 참아온 내 마음까지 다 알아달라고 하는 그런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마 리아를 연기하시는 분은 평소에도 분노를 어느 정도 잘 표출하고 털어내시는 분은 아닐까. 그래서 그토록 다양한 감정을 담을 수 있고, 그 감정을 그렇게 자유롭게 전달하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실은 이 연극의 마지막 부분이 너무나 속상하게 끝이 나버렸다. 사실 집을 나가버린 영주를 찾거나, 왜 떠났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나올 거라고 해피엔딩을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 없는 열린 결말로 주인공들이 다같이 옷을 벗어던지고 유행가를 따라부르고 춤을 추며 끝이 나버렸다. 30분은 더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극이 끝나버리니까 너무 속상했다. 시간제한으로 끝을 내버린 걸까? 아니면 정말 열린 결말인건가? 아니면 내가 놓친 부분이 있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말 그 유행가가 울려퍼지기 직전까지 굉장히 흥미롭게 보다가, 실망해서 나오게 된 공연이었다.


열기에 바람이 지나듯,
올해도 9월이 지난다.
풍경도 계절도 거짓말처럼 모두 다.



기획노트에 나온 이 문장을 보면 그렇게 감정적이고 싸우던 순간들도 다 지나간다. 결론은 결국은 낼 수 없다는 그런 의미로 봐야 할까. 그렇다면 너무 허무하지만, 그렇게 결론없이 끝이 나고, 끝이 나지 않은 채 또 다른 사건이 시작되고, 그러면서 또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가장 <9월>이라는 것을 잘 표현했을지도 모르는 엔딩이다. 그리고 이렇게 리뷰를 마치며, 나의 바쁘고 고통스러웠으며 행복했기도 한, 그런 9월 중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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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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