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속 살아가는 이유 [사람]

글 입력 2018.09.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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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신.


나를 살게 한 당신에게 어떻게 말을 전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신을 따를 수 없고, 혁명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념에 매달리지도  못합니다. 태어난 이유를 여전히 찾고 있는 제가 삶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당신 때문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난 당신은 나를 어여삐 보살펴주었지요. 나는 맹목적으로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했어요. 당신은 세상의 규칙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것에 복종했습니다. 계속 그랬더라면 아무 일 없었겠지만, 삶의 틈새를 일찍 만나버렸네요. 걱정 말라는 말 뒤의 한숨과 자꾸 감추는 멍을 보면서 나는 내가 나를, 그리고 당신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롭게 만난 당신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어요. 내가 배운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고 그때그때 새롭게 적응해야 했습니다. 점수를 잘 받았을 때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반응, 지루해도 흥미진진한 것처럼 보이는 표정,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몇 번 진짜 ‘나’를 보여주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으니까요. 이런 면에서 꽤 성실하게 학습했던 기억이 나요. 내 진짜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로요.


기대하고 배신당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당신에 대한 믿음을 버렸어요. 세상은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렇게 오랜 시간 믿고자 했습니다.


완벽한 나를 만드는 것에 몰두하는 도중,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사는 것일까?”


생존에 쫓기고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고민이 떠오를 때마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흐릿해져갔습니다.


살아있기에 살아가며, 계속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비겁하고, 음험하고, 편협하고, 또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충실했어요. 내 모든 순간에 당신들이 있었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 안에 흔적을 남기며 나를 바꾸었습니다.


굳건한 의미를 찾던 제가 그 과정으로 눈을 돌리며 본 것은, 중압감 대신 여유였고 허세 대신 겸손이었으며 가면 대신 진심이었습니다. 여러 날들 중에 특히 따뜻한 오후의 침묵과 늦은 새벽의 대화가 기억에 남네요.


내가 재단했던 모든 것이 사실 그보다 훨씬 크고 복잡했고, 멈추어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경이로움을 느꼈는지 아십니까?


타인이라는 우주는 나를 확장시켰고 세상을 더 알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믿게 했어요.


그 어떤 깨달음도 즉각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하듯,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삶을 벅차게 생각하고 자주 괴로워합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저, 당신이라는 존재를 새삼스레 다시 돌아볼 뿐이에요.


이제 나는 새로운 당신을 만날 때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품고 다시 당신을 알아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일부를 남길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넘어 또 다른 우리에게 퍼져나갈 것이니까요.






이 편지를 제가 만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당신들에게 바칩니다.



[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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