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리뷰
글 입력 2018.09.2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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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바닥에 늘러붙는 몸을 이끌고 대학로로 향했다. '힐링 뮤지컬'을 보면 마음도 몸도 좀 상쾌해지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면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다분합니다. 공연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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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20분 전에 로비가 열려 공연을 보기 전 같은 건물 다른 층에서 하는 뮤지컬 인터뷰 MD 부스에 잠시 들렀다. 프로그램북을 사고 즐거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끼리 온 사람들,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유독 더 많았던 것 같다. 극장 자체가 작고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놀랐다. 자리는 좋았는데, 단차가 낮아 앞사람이 키가 크면 무대가 가릴 것도 같았다. 벽 쪽에는 통로가 없어서 가운데로만 출입이 가능한 구조라 살짝 불편했으나, 공연장 크기를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기 전 스포일러가 될 만한 후기들을 아예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공연이 참여형인지, 한 배우가 여러 역을 소화하는 극인지조차 모르는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공연을 보았다. 한 번쯤은 그렇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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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하자 닥터 리와 꽃님이가 나와 공연 주의 사항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유쾌해서 꽤 재미있는 공연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인터미션 없이 2시간 동안 나름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던 공연이었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모든 공연들이 그렇듯 호불호 포인트가 있는데,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같은 경우 좋은 부분은 참 좋은 반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이 왕왕 있어 간단하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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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어느 병원, 모두가 잠든 사이 사라져버린 반신 불수 환자 최병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병원장 베드로 신부님의 활약상을 그려낸다. 이 병원에는 치매에 걸린 환자 이길례, 알코올 중독환자 정숙자, 사라진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 이들을 매일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닥터 리, 마찬가지로 매일 환자들을 돕느라 정신이 없는 봉사자 김정연과 최민희가 있다. 큰 줄거리는 '사라진 최병호 찾기'지만 그 과정에서 봉사자들과 환자들 한 명 한 명의 사연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풀어낸다.

7명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2시간이라는 공연시간이 자칫하면 짧을 수 있을 텐데 큰 줄거리를 진행시키면서도 어느 한 명 하나 놓치는 사람 없이 가진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연출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길례나 정숙자의 경우 초반 웃음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데, 막상 그들이 가진 사연을 보고 듣고 나니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고,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점을 분명하게 짚어준 연출이 아닌가 싶다. (얼핏 보면 악역인 것 같은 베드로 신부님만 보아도 사실 방송국 전화 한 통에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불쌍한 병원 관리자였다.)

이 극이 1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관객과 호흡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간중간 닥터 리 역할을 맡은 배우가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나 편지를 전달해주거나,  배우들이 사이사이 애드리브를 하거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극의 흐름이나 전체 서사와 결말은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편으로는 뻔하고, 한편으로는 쉽게 예측 가능한 줄거리를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었다.



대중성과 뻔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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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연에서 연출이 차지하는 부분은 꽤 크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넘버 소화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출이 그 바탕을 마련해주지 못하면 만족스러운 공연이 만들어지기 힘들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연출은 분명 훌륭했으나,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 중 한 명인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이 공연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고,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낮춰 말하면 '뻔하다'는 이야기다. 줄거리를 예측하면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리고 적중률이 상당히 낮은데도 이 공연의 결말이 어디로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저 유부남은 결국 정숙자를 버리고 아내에게 가겠지.' 라거나, '아... 딸이 결국 최병호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가 같이 살겠군.'이라는 그간 많은 매체에서 봤던 현실적인 예측들이 중간중간 머리를 스쳤고,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넣었고 또 그 결과물을 대중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겠으나, 공연의 재미와 긴장감은 반감되었다. 그 부분을 관객과 호흡하면서, 배우들의 연기로, 편안하고 쉽게 꽂히는 넘버들로 어느 정도 보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완벽하지는 않아 보였다.



은은한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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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8년 전 제작된 드라마를 보았다. 수작이라고 소문난 드라마였는데, 나에게는 그 드라마의 대사 하나하나가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아,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제야 좀 여자같네.' 라는 대사 하나에 펄쩍 뛰었고, 결국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관뒀다.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의 시각과 가치관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대사 하나, 연출 하나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달라지듯 공연의 연출이나 대사, 의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연우무대가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꾸준히 올리고 싶다면, 그리고 13년이 아니라 20년, 30년 후에도 사랑받을 수 있는 극으로 남기고 싶다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공연을 조금씩 보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분명히 병원에 봉사를 하러 와서 온갖 궂은일, 험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핑크색 원피스와 핑크색 구두를 신고 있다. 나중에서야 TV에 나와 자신을 버린 약혼자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의도로 병원에 왔다는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이런 의상을 택했어야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 이 의상이 아니더라도 배우는 충분히 예뻤다. 정숙자가 사랑에 빠진 남자와 도피를 했던 호텔을 소개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대극장 무대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서 배우들을 볼 수 있는 극장에서, 굉장히 짧은 복식의 옷을 입고 침대에 눕는 등의 퍼포먼스를 꼭 포함시켰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등장인물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했어도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같은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좀 더 참신하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여성 등장인물에게 '네 탓이야'라고 말하는 대본에는 좀 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의상이야 짧은 시간 동안 캐릭터를 잘 표현해야 해서 혹은 빠르게 장면을 전환해야 해서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전쟁 트라우마로 자살한 남편을 보고 절규하는 아내에게 '남편 잡아먹은 년' '네가 남편을 죽인 거야'라는 말을 하고, 왜 바람은 남자와 여자 둘이 피웠는데 모든 비난은 여자에게만 가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데 왜 정숙자만 비난하는가? 무대 위에서는 아무도 전쟁에서 돌아와 술을 찾으며 아내의 머리채를 잡는 남편을 비난하지 않았다. 아무도 비겁하게 자기 혼자 도망가 버리는 유부남을 비난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와 아빠를 잃고 혼자 사는 민희에게 집적거리는 동네 아저씨들은 입에 담기도 싫은 말들을 넘버로까지 부른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민희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되려 여자아이를 비난하며 집에서 내쫓으려 한다. 왜 모든 것은 여자 탓인가?

인물 서사의 부족도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모든 여성 등장인물의 행동 저변에는 '사랑'이 깔려있다. 사랑이 인간 행동의 주요한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길례 할머니의 서사도 사랑, 정숙자의 서사도 사랑, 김정연 봉사자의 서사도 사랑, 그리고 어린 민희가 이 병원까지 와서 봉사를 하게 된 이유마저 사랑이라는 점이 너무 일관되고 단조로워 보였다. 이는 줄거리의 뻔함과도 맞물린다. 현실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면 오히려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아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좀 더 좋은 공연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보았다.



당신이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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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열연과 흥미로운 무대 미술,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넘버까지 이 뮤지컬은 분명 잘 만들어진 극이고, 스테디셀러가 될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다만 13년째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서사와 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담아내는 풍성한 극이 되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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