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 걷기, 구반포에서 흑석까지 [여행]

두 발로 걸어서 느끼는 서울의 두 가지 모습
글 입력 2018.09.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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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제가 있어 구반포역을 들렀다. 9호선을 자주 이용하기에, 흑석 - 동작 - 구반포 - 신반포 - 고속터미널의 노선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막상 구반포역에 내려본 적은 없었다. 그날따라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아 흑석부터 구반포역까지 걸어갔다 다시 걸어돌아왔다. 지하철의 간격을 보면, 흑석과 동작 사이의 거리는 동작역과 구반포역 사이 거리의 몇 배는 되는 듯 하다. 실제로, 흑석에서 동작역까지 가는 길이 멀었지, 동작역이 보이고 나니 구반포역은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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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구반포역의 풍경은 예상 외로 한산했다. 강남의 이미지는 고층 건물들과 반짝거리는 LED 등으로 빛이 나고 정신 없는 이미지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기껏해야 2층 높이인 상가들로 늘어서있는 구반포역 주변의 모습이 조금 놀라웠다. 구반포와 신반포의 차이는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의 차이인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굉장히 낙후된 듯한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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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으로 쭉 이어진 상가들이 있는 길도 있었다. 미용실과 부동산 사무소, 식당, 카페 등으로 이루어진 아주 평범한 사람 사는 동네였다. 서울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가로수가 건물보다 높은 거리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상가들이 쭉 이어진 가운데 광주식당 간판 아래로 흥미로운 통로가 보여서 횡단보도를 건너 들어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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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로 들어가 왼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위에 임시 가설 지붕으로 비오는 날을 대비해서 막아두고, 상인들의 통로로 사용되는 모양인 거리가 나왔다. 도로에 면하는 1층 높이의 상가들과, 사이 간격을 조금 두고 그 옆으로 또 1층 높이의 상가가 쭉 이어져있는데, 그 사이를 통로나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어쩐지 내 고향에서 시장을 갈 때 많이 봐왔던 모습이라 몰래 침입했다는 생각보다는,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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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완전히 지나면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있다. 5-6층 정도의 높이 정도 되는 흰색의 아무 장식 없는 아파트다. 연립주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다. 딱히 아무런 단지계획없이 지어졌는지 그저 가로로 길게 늘어서서 지어져있고, 1층 부분이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구시가지 아파트의 모습이다. 내 고향의 아파트도 구반포역의 아파트들처럼 낮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낮게 지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이 아파트가 지어졌을 당시의 건폐율과 용적률이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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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반포역의 주변에서 유일하게 가장 높은 건물이다. 은행과 마트, 그리고 옆에 건물은 웨딩 시설로 이루어졌다. 사실 설계 주제가 오른쪽에 웨딩 건물을 새로운 건물로 다시 짓는 거라 구반포역에 들른 건데 생각지못하게 고향을 잠시 엿본 것 같았다. 2층 상가들과 1층 상가들로 둘러싸인 거리에는 과연 어떤 형태의 건물이 어울릴까, 내일이 과제의 마감날인데도 나는 아직 적절한 형태를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밤을 새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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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교차로에서 웨딩건물을 바라본 모습이다. 일작역에서 구반포역으로 가는 길인데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없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일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수평성이 굉장히 강조된 곳이라는 것이다. 고가도로가 몇차례나 얽히어 이어져서 그 무게감에 압도당한다. 저 고가도로는 어디로 이어지는 걸까 생각도 했는데 다음날 고향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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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귀향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가던 중에 이수교차로를 찍은 사진이다. 신기하게 전날 걸었던 거리와 같은 곳을 지나가다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고가도로 위를 가게 되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의 다른 시각으로 본 같은 거리의 모습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볼 때는 그 시각적인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릴 때 자동차 게임을 했을 때처럼 모든 게 게임의 일부인 것 같은 가벼움이 느껴졌다. 현실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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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가면 늘 그렇다. 같은 거리를 걸어갈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내 발로 걸어간 길과 버스를 타고 빠른 시간 안에 지나간 길은 다르다. 아주 느린 시간동안, 235mm라는 내 작은 발의 사이즈로, 내 인체 스케일만한 사이즈로 지날 때는 모든 게 선명하고 느리다. 같은 풍경을 오래오래 볼 수 있다. 버스로 지나가는 풍경은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가끔 아름다운 풍경에, 또는 평소에 보지 못한 각도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감탄을 내뱉기도 하지만, 그 감탄은 어쩐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 속에 깊이 담아둘, 그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걸어온 거리를 차를 타고 지날 때 드는 느낌도 새롭다. 마치 내가 걸어온 거리가 내 것이라도 되는 양 애착을 갖게 된다. 모든 걸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한번 걸어온 길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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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구반포역의 답사를 마치고, 동작역을 향해 돌아가던 길 '허밍웨이'라는 산책로를 발견했다. 허밍웨이(Humming Way)는 반포천 제방길의 새로운 이름으로, 콧노래가 나오는 쾌적한 길이라는 뜻이다. 구반포역과 동작역을 잇는 길로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을 위한 길. 흑석에서 구반포로 올 때는 차가 달리는 길로만 걸어가다, 돌아오는 길은 이렇게 나무들이 울창한 길로 걸어오니 똑같은 풍경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하지만, 출퇴근길에 사용되라고 만든 길인데 왜 구반포역과 동작역을 이어주는지는 의문이다.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걸어서 집까지 오라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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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천 제방길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였다. 역시 수평성이 강조된 곳이다. 동서 방향으로 쭉 이어진 천과 막아놓은 제방. 그리고 그 위로 수직으로 서 있는 기둥의 배열이, 이 곳이 서울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허밍웨이를 쭉 따라서 걷다보면 동작역이 나타난다. 화장실이 무척 급했는데 이상하게 동작역은 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7호선은 타고 이동할 때 화장실이 카드 찍는 곳 바깥에 있어서 도중에 급해지면 요금을 한번 더 내야 하면서, 다른 호선은 또 다른 방식으로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다. 나는 7호선과 9호선을 주로 이용하고, 지하철만 타면 어쩐지 으슬으슬 추워져서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한번씩 더 낸 요금도 어마어마할 것 같다. 만약에 화장실을 그렇게 배치할 거면 전 지하철의 배치를 동일하게 하던가, 아니면 카드찍고 들어간 곳이나 밖에서나 모두 화장실을 배치해서 사람들이 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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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으로 들어와 흑석역을 향해 가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 위에도 무수히 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을테고, 내 아래층에는 지하철이 달리고 사람들이 그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층위(Layer) 위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낀다.

한번, 예전 수업시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의 기원은 르 꼬르뷔지에라는 건축가의 '300만  를 위한 도시'에서부터이다. 그 전까지는 단독주택 위주의 개인의 삶 중심의 주거 건물을 지었다면 르 꼬르뷔제는 기능성과 합리성을 굉장히 강조해서 동일한 유닛(unit;단위)의 공간들이 집합된 집합주거지역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한데 모아 매우 효율적인 도시를 주장했다. 즉, 수평적으로 퍼져서 자기만의 정원을 갖고 살던 사람들을 매우 좁은 땅덩어리에 고층 건물을 세워 그 안에 다 밀어넣는 것이다. 우리나라말로, 아파트라고 한다. 유럽같은 곳에서는 그 아이디어가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곽광을 받게 되어 아파트가 대규모로 건설된다.

아파트는 동일한 유닛이 수직으로 끝없이 중첩된 구조다. 내가 쇼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 밑에 집의 사람도 동일한 행위를 하고 있을 수 있고 위의 집 사람도 그렇게 똑같이 행동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집의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반경과 행위의 종류가 제한되는 것이다. 똑같은 문을 열고,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똑같은 자리에 놓인 침대에 누워서 똑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먹는 것에 환장하는 나라.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해주신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유독 남의 눈치를 보면서 똑같은 행동을 하려는 것을 비판하셨다. 어쩌면 집이 똑같기때문에 우리는 남들과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반대로 생각해서 남들과 동일하게 살고 싶어서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살다보면 남들과 동일하게 살게 된다. 자기 혼자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에, 자존감과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현상. 그러나 국민 전체가 그런 경향을 띄고 있다면 그건 개인의 정체성 부재의 문제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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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을 나오니 오른편으로 보이는 다리들, 그리고 그 위를 지나가는 차의 모습들. 지하철 속 지하로 내려가는 레이어들과는 반대로, 이 모습은 위로 쌓인 레이어들. 어쩌면 몇십년 후에는 저 하늘 위까지 몇십개의 레이어가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레이어를 이용하는 계층이 다 다를지도 모른다. 이미 지하철 아래는 개인의 차를 잘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차가 없는 직장인들, 학생들, 노인들이 이용하며 다리 위는 자차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얼마나 높은 레이어를 자유롭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또다른 빈부격차가 나타날지도.

나는 어쩐지 저렇게 거대한 다리에 나타나는 그림자가 좋다. 아주 묵직한 무게감이 햇빛을 다 막아버린 것처럼,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그림자가 생긴다. 그토록 거대한 물질이 눈 앞에 있을 때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느낀다. 내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무게감과 현실감. 그런 감각에 압도당해 스스로를 잊어버릴만큼 빠져버리는 순간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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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동작역에서 흑석역으로 오는 길에 있던 엄청난 경사의 골목길. 그리고 구반포역에서 본 것 같은 약간은 낙후된 듯한 모습의 주택들도 있다. 아마 저 경사의 길을 올라가서 택배아저씨가 물건을 배달하려면 매우 힘들 것 같다. 평평하게 잘 발라놓은 도로 옆으로도 저렇게 전혀 개발되지 않은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개발할 거면 모든 것을 개발하지, 왜 구역을 정해놓고 일부만 개발해서 옆의 지역을 낙후되어 보이게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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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사진 주택의 반대편으로 보이는 엄청난 고층의 헬스 시설과 그 뒤로 보이는 아파트의 모습. 분명 같은 거리이며, 사람이 180도만 회전하면 볼 수 있는 광경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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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역 근처까지 가다 보면 나타나는 모습.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흑석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앞으로 그냥 걷다보면 흑석역이 나타나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모습이 보인다. 요즘 흑석은 재개발이 유행이라, 중앙대 근처에 이런 저런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고 있다. 흑석역 근처에 세워진 저 아파트뿐만 아니라, 중앙대 동쪽에 위치한 초등학교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생기기도 했다. 교수님들은 자기방에서 원래 한강이 보였는데 이젠 아파트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은 참 신기하다. 같은 시야에 저렇게 다른 풍경의 건물들이 들어온다. 정말 '서울 같은' 건물들이 있는가 하면, 내 고향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곳도 잔뜩 있다. 일관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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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흑석시장을 통해서 중앙대병원을 거쳐 집으로 올라가는 길. 흑석도 경사가 상당히 심각하다. 이 길을 올라가다보면 땀이 나고 숨이 차고 제대로 유산소 운동을 하는 느낌이다. 상도동에는 가까운 마트가 딱히 없어서 중앙대병원 쪽에 있는 마트를 이용하는데, 이 길을 내려갈 때는 상쾌하고 괜찮지만, 물건을 잔뜩 가방 속에 메고 올라올 때는 하체 운동이 제대로 된다. 하지만 그 어디보다 내 발걸음이 많이 닿은 익숙한 나의 길이다.

아침부터 많이 움직여서 2만 5천보 정도를 걸었다. 커피를 투샷으로 마셨는데도 갔다와서 씻고 바로 낮잠이 들 정도였다. 정말 피곤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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