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답장이 무진장 느린 자의 항변 [기타]

23살인 나는 60대의 모바일 사용습관을 지녔다.
글 입력 2018.09.2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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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6월쯤이었을 거다. 용산 CGV에 갔다가 한강대교를 넘어오는 버스 안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으로서 앞문 바로 뒤에 낑겨 있던 나는 무심코 창밖을 봤다가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노을을 받아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한강 위로 아카시아인지 뭔지 모를 하얀 꽃잎이 흐드러지게 수놓아지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신비로움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봤다. 이 풍경을 대하는 반응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눈으로 담겠다며 사진조차 찍지 않은 나의 황소고집에 박수를.)

비슷한 경험을 월드디제이 페스티벌에서도 했다. 폭죽이 튀어나가 밤하늘을 수놓는 순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그 찰나를 가슴이 아닌 아이폰에, 갤럭시에 담았다. 아마 그 날 찍힌 영상의 대다수는 인스타그램에 올라갔을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나는 핸드폰을 잘 만지지 않는다. 깨톡 답장도 굉장히 느린 편이다. 이 때문에 몇몇 사람들의 볼멘소리도 많이 들었으며 싫은 소리까지도 종종 들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이유는, 나는 핸드폰 속의 세상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느린 답장을 답답해하며 재촉하던 이들은 결국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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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만나기로 하고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약속장소로 향하던 어느 날, 분명 깨톡으로는 ‘ㅋㅋㅋㅋㅋ’을 말하고 있는 친구가 무표정으로 자판을 치고 있는 것을 먼발치에서 목격했다. 돌아보니 나 역시 그러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마 그 날부터 핸드폰과 차츰 멀어지지 않았나 싶다. 굳이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난 핸드폰 속의 세상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한다. 미리보기, 혹은 비행기모드 보기로 이미 내용을 다 봤으면서도 안본 척 하는 것, SNS에 자신의 즐겁고 찬란한 일상만을 편집해 올리는 것, 웃지 않으면서 ‘ㅋㅋㅋ’을 보내는 것, 울지 않으면서 ‘ㅠㅠ’를 보내는 것 등등.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바일 속 세상에는 ‘진짜 감정’이 없는 것 같다.

하여 난 핸드폰을 가까이 두지 않는다. 뭔 이상한 신념, 철학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굳이 집어 들지 않게 된다. 남들 잘난 인생 구경하고, 내 인생 어디 가서 꿀릴까봐 예쁘게 포장하고, 웃기지도 않은데 웃긴 척, 슬프지도 않은데 슬픈 척, 반갑지도 않은데 반가운 척 하는 시간에 차라리 멍을 때리는 게 내 정신건강에 더욱 이롭다. 약 1년 반의 실험을 통해 체득한 사실이다.

물론 모바일 세상의 이점도 많다. 대표적으로,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 얼굴책에서 대외활동 어쩌구- 등등의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면 들어갈 때마다 다양한 대외활동이 내 눈앞에 촤르륵 펼쳐진다. 인스타는 아예 없고 페북은 아트인사이트 리뷰/프리뷰 기고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들어가게 되는 요즘은 이러한 정보들과 가까이 닿아있기 힘들다. 두 번째는, 음... 음... 정보의 파급력? 정보의 진입장벽이 허물어진다는 것? 하지만 모바일 상에서 공유되는 정보들을 100% 믿으면 안 된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 테니 이건 패스. 그 다음은, 음... 친구의 근황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가끔 생각해보면 나를 태그한 친구의 타임라인을 통해 정작 나는 말하지도 않은 나의 근황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이 섬뜩하기도 하다. 감시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친한 친구라면 굳이 SNS가 아니더라도 이미 근황을 알고 있을 터이다. 내가 왜 굳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근황까지 알아야 하나. 나 살기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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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는, 나는 모바일 세상에 아무리 해도 정이 잘 안 간다. 웹드라마니 유투브니 1인방송이니 어쩌구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뿌리 꺾인 꽃처럼 느껴진다. 나름 문화콘텐츠 다전공자로서 이러면 안 되는 거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가 않는다. (물론 내가 직접 해보지는 않고 멀리서 바라만 보는 관찰자 입장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낄 수도 있다.)





여하튼 여기까지는 오로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러분의 모바일 사용 실태에 대해서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특별한 주장 같은걸 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거 하나는 명백하다. 나만 본 그 날의 노을과 꽃잎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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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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