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오십대를 겨냥한 뮤지컬, 창문너머 어렴풋이 [공연]

감성복구 뮤지컬, 추억의 개그와 음악
글 입력 2018.09.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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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너머 어렴풋이. 김창완의 곡들을 담은 감성복구 뮤지컬이다. 극 속에서는 데뷔 직전 교통 사고로 손을 더이상 쓰지 못하게 되어 음악에 좌절하게 된 '창식'과 그에게 자기들의 선생이 되어달라고 떼쓰는 '개구쟁이 밴드'가 나온다.

창식은 천재 뮤지션으로 곽광을 받는데, 여자친구 정화와 데뷔 직전 여행을 떠난다. 둘은 사랑을 맹세하고 행복한 여행을 보내지만, 돌아오는 날 6중 추돌사고를 당한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었던 창식은 더이상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여자친구 정화도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1년동안의 재활 치료를 했지만 아무런 가망이 없어 창식은 음악을 거의 포기하게 된다. 그러고 5년 뒤, 창식이 BJ로 활동하는 음악다방에 3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은 밴드를 형성해서 경연대회에 나갈 거라며 창식의 악기를 막 만지는 바람에 창식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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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스승이 되어달라고 떼쓰는 '개구쟁이' 밴드와 기타를 연주하지 못해 화내고 도망가는 '창식'. 뮤지컬의 중간중간 김창완의 노래를 '창식'이 쓴 것처럼, 또는 개구쟁이 밴드가 작곡한 것처럼 음악이 나오고 노래를 부른다. 이 뮤지컬의 특이한 점으로, 음악을 전혀 배우지 않은 배우들이 이번에 트레이닝을 받아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다. 원래 다른 뮤지컬들은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뮤지션이나 전문 밴드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참 특이한 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마이크 설정의 문제로 배우들이 립싱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주기도 했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대목에서 에코가 울리지 않아 잘 들리지 않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악기 전원 또는 볼륨 조정의 실패로, 기타 소리가 안 나오기도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보였다. 배우들이 그때그떄 능청스럽게 서로의 탓을 하며 넘어가서 임기응변이 매우 능숙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뮤지컬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나는 음악과는 별로 관련없는 사람이지만, 내 남자친구가 밴드부의 보컬과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고, 동생도 밴드부에서 음악을 연습하고 있어 밴드 음악을 들을 기회가 조금씩 있었다. 남자친구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홍대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드럼을 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다른 설렘이었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미친듯이 피가 터지도록 드럼을 치는 것을 보고, 드럼이라는 것에 자기희생과 어떤 광적인 의지가 있는 행위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드럼을 치는 모습은 또 달랐다. 음악의 밑에서 음악 전체를 깔아주며 무언가 이끌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에게 한번 더 반했던 것 같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과 밴드 음악은 다르다. 이미 반주가 완성되어있는 곡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정말 달랐다. 이미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것과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해가는 것의 차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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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생들의 이야기라, 중년층에게서 호응이 매우 좋았다. 개그코드가 거의 중년대라 나는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도 많았다. 자기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얼굴은 정면으로 향하고 몸은 측면을 향해서 통통 뛰어오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라던가, 남녀의 애정 표현을 설레게 표현한 장면 등에서 아주머니들의 호응도가 매우 좋았다. 이때까지 연극을 보며 그렇게 큰 소리로 웃어제끼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어떤 한 분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재밌게 웃으셔서 배우들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BJ시간에는 '창식'과 관객들간의 소통 시간이었는데 앉아있는 관객분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사연을 읽어주었다. 맨 앞에 앉아있던 분께서 '사장'역할을 하셨는데 중간에 창식과 전화를 할 때, "시꺼"라는 재치있는 말로 관객들을 전부 웃음에 터지게 했다. 그 분은 이감주를 선물로 받았다. 부러웠다.

또, 사연을 읽어주며 한번더 공연을 보러 오신 분이 있다고, 그 분의 성함을 물어보는데 '임진*'으로 되는 이름이라 "네? 임진왜란이라구요?" 이렇게 재치있게 받아주기도 하셨다. 약간 이런 유머 코드도 중년층 관객에게 인기를 받을만한 것이라 사람들의 호응이 아주 좋았다. 이름을 끝까지 다 못 들어도 여유롭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넘어가는 점도 능숙한 배우라는 인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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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결국 창식이 개구쟁이 밴드의 선생님 역할을 하고, 여자친구 정화가 매니저 역할로 운전을 하며 밴드를 이끌어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왜 정화가 창식을 그토록 참아주었는지 큰 의문이 든다.

첫째, 창식은 자꾸만 자기가 힘들 때 도망가려고 했다. 정화는 창식을 걱정하며 커피에 설탕을 타지 말라고도 하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로 공장에서 번 돈을 마련해 병원비를 주기도 했다. 창식은 그런 그녀의 노력이 자기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거라며 '병신 애인을 둔 병신'이라고 자기들을 깎아내린다. 정화가 비록 교통사고를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참 강한 사람이다. 만약 나였으면 그게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순간, 창식처럼 도망갔을 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창식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정화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짜 사랑한다는 말로 그게 정당화가 된다는 듯이, 아픈데도 그걸 이겨내고 행동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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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개구쟁이 밴드의 기타리스트 종필(사진 오른쪽 인물)과 정화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정화가 창식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창식이 몰래 듣고 화를 내며, '병신이랑만 있다가 멀쩡하고 어린 새끼랑 있으니까 좋아서 미치겠냐'는 말을 해버린다. 화를 내고 창식은 나가버리고, 충격받은 정화를 달래주지 못하고 종필은 그 자리를 떠나준다. 그 때 정화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조금 울었다.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일지. 진짜 그만하고,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하는 애인에게 그녀는 왜 그렇게 애인 역할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창식은 왜 그 장면에 질투를 하는 걸까. 자기 대신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종필에게 질투를 하고, 정화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질투를 한 걸까.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없으니 애인에게도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셋째로, 창식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장면에서 "진짜 사랑한다면 보낼 줄도 알아야되는 게 사랑이다"고 하는 것. 만약 자신의 집착이나 스토킹 등으로 사랑하는 이가 괴로워한다면 보내야 하는 게 사랑이겠지만, 정화는 창식에게서 괴로움을 느낀다기보다는 둘이 함께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기에 창식의 그런 생각은 이기적인 도피 행위에 불과했다. 사실은 자기가 그 사랑의 무게를 책임지기 힘들어서 피하려고 하는거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자존감이 너무 없어지고, 장애인까지 되어버린 상황이라면 삶에 자신감이 더 이상 없겠지만 그는 비겁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현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진짜 감정도 알지 못했다.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뻔했다. 정화는 미안해하고, 창식은 도망가려하고 그러면서도 도망가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까지고 그 전의 일만을 떠올리며 미화하고 앞일을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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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엇보다 인상깊게 본 건 개구쟁이 밴드의 베이스 춘섭과 음악다방에서 일하던, 건반을 치는 소녀 호순이의 사랑이다. 춘섭이 다방을 들어오자마자 호순에게 첫 눈에 반해서 계속 대쉬를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둘은 점점 밀당을 하다가 기타를 가르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너의 의미'를 함께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춘섭의 '이쁘다'는 말을 끝으로 뽀뽀도 하고 데이트도 하는 사이가 된다.

이 러브라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은 춘섭의 능글맞은 충청도 사투리도 있었지만 호순 씨를 연기한 분의 어려보이는 예쁘장한 얼굴과, 술 취한 연기에서 미친듯이 귀여움이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원래 드라마에서 술에 취하면 비틀거리면서 눈물때문에 화장은 또 입술까지 흘러내려있고, 진상을 부리는 여자주인공의 연기가 많아 거부감을 갖는 편인데, 호순 씨는 귀엽게 혀가 짧아진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고, 토하려는 연기를 해서 진짜 귀여웠다. 중간에 서비스 장면으로 '창식'과 함께 왁킹 비슷한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귀여움이 완전 폭발하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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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날은 종필 역할로 '우지원' 배우분, 창식으로 '엄태형'분, 정화로 '김빛나'분, 춘섭으로 '이민준'분, 호순이로 '박수야'분, 필구로 '이기웅'분이 나온 것 같은데 필구는 안경을 쓰고 나와서 잘 모르겠다. 정말 다들 연기도 너무 잘하셔서 마이크, 음향 문제 등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재밌게 잘 봤다. 커튼콜도 10분이나 해주시고 사람들을 서서 박수치며 노래부르게 유도한 점들, 그리고 배우분들이 오히려 신나서 클럽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나처럼 젊은 사람들보다는 40대 이상의 분들께서 더 재밌게 보실 것 같은 뮤지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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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너머 어렴풋이
- 감성복구 뮤지컬 -


일자 : 2018.09.22(토) ~ 2018.11.04(일)

시간
화, 목, 금 8시
수 3시 8시
토 3시 7시
일, 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없음)

장소 :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제작/기획
극단 써미튠즈

관람연령
만 7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문의
극단 써미튠즈
070-4101-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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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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