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 아웃라이어 [도서]

글 입력 2018.10.0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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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은 많은 자기 계발서적과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쓸모 있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의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다. 본래 연구의 목적과 결과는 매우 신선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었으나, 한국사회에 들어와서는 그 의미가 상당히 변질되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남 탓, 사회 탓 하지 말고 1만 시간의 ‘노오력’을 하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성공 자체는 물론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개인의 성공은 절대 사회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재들에 대한 신화 탈피하기



1부에서 글래드웰은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이 시대와 공간이 제공한 기회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극적인 예로써 변호사 조셉 플롬을 들고 있었다. 플롬이 변호사로서 일자리를 구할 당시, 최고의 변호사로 구성되었고 결국 플롬은 들어가지 못했던 로펌인 ‘하얀 신발(white shoe)’은 마치 오랫동안 고인 물과 같았다. 기업 간의 적대적 합병과 같이 얼굴을 붉힐만한 업무는 전혀 거들떠보지 않고, 고상한 업무만 처리할 뿐이었다. 이때 플롬은 하얀 로펌에게 뒷전이었던 적대적 인수합병의 핵심이 되는 위임장 쟁탈전 업무를 닥치는 대로 처리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 연방정부의 규제완화로 변호사 업계의 상황이 뒤집혔다. 기업의 인수합병 분야에 운용되는 금액이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주류 변호사들이 남긴 일만을 처리하던 플롬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글래드웰이 인용한 말처럼, 플롬이 천재적인 변호사였기보다는 “그들이 수년간 일해 오던 중 갑자기 세상이 변했고” 플롬의 “기술 가치가 대단히 높아진” 것이다.


또한 4장에서는 선천적인 능력인 IQ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실용 지능(practical intelligence)을 제시한다. 이 지능은 ‘뭔가를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말해야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등을 아는 것’이다. 또한 일반 지능과 달리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한다. 어머니께서는 내 자신을 표현하고 남에게 궁금한 것을 묻거나 어려운 부탁을 할 때, 대화의 내용만큼이나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결코 중산층은 아니지만, 어머니께서는 글래드웰이 책에서 중산층 부모의 양육방식이라고 묘사한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주셨다. 깐깐한 대화에 있어서도 기죽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도와주셨다.




밥상에 숟가락



1부를 읽고 나니 떠오른 표현이 있었다. 영화배우 황정민이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 했던 수상소감이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저만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해요. (중략) 도연아, 너와 같이 연기한 건 나한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이른바 ‘밥상에 숟가락’은 한때 코미디 소재로 이용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가 이제는 케케묵은 유행어에 불과하지만, 글래드웰이 말하는 바에 꼭 맞았다. 황정민의 수상소감을 자신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힘써준 사람들에게 고개 숙일 줄 아는 겸손함의 미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배우 황정민이 글래드웰이 말하는 성공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높은 IQ나 연기에 대한 황정민의 재능은 물론 있으면 좋다. 하지만 1부의 3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빌 조이, 비틀스, 빌 게이츠가 투자한 1만 시간의 노력과 황정민의 연기연습과 꾸준한 작품 활동. 하지만 그들의 성공스토리를 순전히 그들의 열정과 노력 덕분이었다고 설명하기엔 많은 공백들이 있다. 즉 그들은 행운과도 같은 기회들을 조우하여 아웃라이어로 성장했다. 빌 조이는 그가 다녔던 대학이 당시 거의 유일하게 시대를 앞서 나간 선진적인 컴퓨터 센터를 24시간 개방한 덕에 밤낮으로 프로그래밍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비틀스는 우연한 기회로 독일의 함부르크 록 밴드 무대에서 여덟 시간씩 공연하게 되었고, 이는 그들이 이미 잘하는 곡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곡과 새로운 연주방법에 투자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빌 게이츠 또한 기회와 행운의 연속으로 8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반까지 ‘비틀스의 함부르크 시절’로 보낼 수 있었다. 빌 게이츠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그 시기의 누구보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해 좋은 경험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행운의 연속이었지요.”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에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이 14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시대가 개인에게 준 혜택이 명백하게 존재함을 의미한다. 1835년 전후로 태어난 이들은, 단지 그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국 경제가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1860년대와 1870년대 사이에 청년기를 보내며 경제적 성공의 잠재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개인컴퓨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1975년에 그 혁명의 역사를 거머쥐기에는 1954년, 혹은 1955년생이 매우 적합했다. 앞서 언급한 빌 조이와 빌 게이츠뿐만 아니라, 애플의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까지 출생과 성장 시기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출생 시기와 자신이 성장한 시대와 공간의 분위기는 지극히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 선택할 수도 예측할 수 없다. 물론 다가올 기회에 늘 대비하는 열정과, 뜻밖의 행운을 맞이할 노력이 없었다면 이들은 성공의 기회를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황정민의 표현과 같이 ‘기적’처럼 다가오는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재능을 개발할 수 있었던 연습 기회와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시대적 상황은 우연하게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황정민은 스태프와 다른 배우들이 힘써 마련한 촬영장의 조건이 그의 역량을 발휘하기에 아주 유리하게 맞아떨어졌음을 인정한다. 어린 시절에는 ‘밥상에 숟가락’이라는 수상 소감을 듣고 그의 진심을 소박하게 내보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되짚어보니 배우 황정민은 자신의 작품과 작품의 흥행에 대해 분명 깊은 성찰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찰의 내용이 그 해 최고의 남자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상을 받았을 때, (과하지도 너무 볼품없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묻어나온 것이다.






작은 성공의 추억



글래드웰은 성공과 아웃라이어를 지면 상 한정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성공이라고 해서 반드시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의 부나 명예를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공의 의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성공은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황정민의 훌륭한 연기가 상을 받음으로써 입증된 것도 분명 성공이고, 나 또한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나의 짧은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공은 우리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이 또한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한국이라는 사회와 시대가 만든 작은 성공의 유형 중 하나일 따름이다. 지방의 일반계 여고에서 사교육 한 번 받지 못한 내가, 조회 창에서 합격했다는 문구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던 건 나 자신이 기특해서였다. 수시에 모두 떨어지고 정시로 어렵게 붙었기 때문인지, 내 열정과 노력이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것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분명 알고 있었다. 글래드웰 식으로 말해보자면, 작은 도시의 작은 학교였지만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선생님들이 계셨고, 학교는 공부하기에 매우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2부 9장에서 그가 말했던 것에 주목해보자. 그는 미국의 긴 여름방학이 빈곤층, 중산층, 상류층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방학 기간 동안 집중 양육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방학이 끝난 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아이는 부모가 바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아서 방학이 끝난 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고등학생 최희선으로 돌아와서, 우리 학교의 심화 과정반은 빈곤층에 가까운 나에게 효과적인 교육시스템으로 작용했다. 혼자의 노력으로 배치고사에서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심화반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심화반은 방과 후 심화학습과 주말과 방학에도 개방되는 쾌적한 자습실을 제공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친구들이 받았던 고액 과외나 학원 강습과 같은 사교육을 전혀 받을 수 없었던 당시의 나는 여기서 추가적인 양질의 자습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성적표에 적힌 숫자와 관계없이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가족과 옆에서 같이 울고 웃어주는 따뜻한 친구들이 있었다. 이렇게 주어진 모든 기회가 내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왔다. 행운과 우연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에게 주어졌던 모든 기회에 감사하고, 성공은 다양한 기회의 조합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였다.



 

한국사회의 단면 ①, 꼰대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 지나고, 한국사회에 대한 깨달음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사회 청년들의 불안을 바라보는 ‘꼰대’의 시선에 대해 생각하였다. 보통 ‘우리 때는 말이야’로 입을 떼곤 하는 한국사회의 ‘꼰대’들은 지금 한국사회의 어려움을 ‘젊은 것들이 노력을 안 한’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출생연도와 두 자릿수 경제성장이 가능하던 시기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것을, 즉 그들에게 유리했던 특별한 기회를 인정하지 못한다. 물론 기성세대가 의기투합하여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고자 했던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 빠른 시간에 일구어낸 경제성장의 지표 상승이 이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성장기와 지금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 또한 이미 입증되었다. 따라서 시대를 살아가는 윤리적, 사회적 문법 또한 변화해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만 믿고 학자금 대출, 고시원 생활, 열정페이와 비정규직 노동을 참고 견디다가는 더 아픈 것은 물론,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꼰대는 기본적으로 문화 지체 현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제아무리 신화적인 인물이라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자신이 성장했던 시대와 공간의 문법만으로 점철된 자기 계발서적을 내놓는다면, 청년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시대가 주었던 기회를 감사히 여겨야 하고, 시간이 흐르면 시대에 합당했던 규범 또한 변화함을 인정해야 한다. 미래의 나 또한 지금의 나와 같은 청년들 앞에서 내 시대의 방식을 자신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꼰대보다는 믿을만한 어른이 되고 싶다.



 

문화의 힘 바로 알기



2부에서 글래드웰은 ‘유산(Legacy)’이라는 주제 아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관습, 즉 문화적 유산이 개인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미국 켄터키 주의 할란(Harlen), 한국 항공사의 조종석, 벼농사 중심의 아시아 문화권, 뉴욕의 키프(KIPP) 아카데미를 통해 개인을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문화의 강력한 힘을 분석한다. 글래드웰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으로 보이는 행동까지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역설한다. 작년 1학기에 사회학 전공인 ‘사회심리학’에서 미시적인 심리학 이론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개인의 행동을 공부하였던 나로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2부 유산의 7장에서는 꼰대에 이어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을 또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19세기 미국 켄터키 주의 작은 마을인 할란(Harlan)에서 발생했던 폭력, 살해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원인이 ‘명예 문화’에 있던 것처럼, 1997년 대한항공 801편 비행기가 추락한 것은 한국의 높은 권력 간격 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에 있었다. 즉 위계질서와 권위에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복종하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추락의 원인 중 하나였다. ‘사회심리학’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공부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한국의 학교 수업시간은 대개 선생님이 내내 떠들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누군가 수업 중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면, 다른 학생들은, 심지어 선생님까지도 유별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교수님께서는 이를 권위에의 복종이 강한 한국의 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추석에 할머니 댁을 다녀오며 여전히 이러한 문화가 유효하다고 느꼈다. 특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불합리하게 설계된 방식이나 부당한 요구에 대응을 하면 돌아오는 답은 ‘어린 애가 말대꾸를 한다.’는 식이었다. 이와 같이 연소자이면서 하급자인 상황이라면 대화는 더욱 어렵다.


1997년 김포에서 괌으로 향했던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크고 작은 기회의 조합들이 성공을 낳듯, 여기서는 잔 고장, 좋지 않은 날씨, 기장의 피로와 더욱 결정적인 요인의 조합이 추락을 야기했다. 비행기 추락의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한국 항공계의 경직된 선후배 문화와 복잡한 경어체계였고, 이는 높은 PDI 지수로 나타난다. 저자가 인용한 전직 대한항공 조종사 말에 의하면, 상당수 조종실의 분위기가 ‘기장이 책임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더욱 단적으로 말하자면, 부기장의 실수를 본 기장이 그의 등을 때리기도 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조종석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거스르는 것은 상당히 예민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고 당시 괌 공항의 글라이드 스코프 고장, 스톰 셀, 피로가 누적된 기장의 잘못된 판단이라는 악재가 겹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기장과 기관사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도 있었던 자신의 의견을 기장에게 강력하게 알리지 못하고, 가장 완곡한 표현인 ‘힌트 주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을 공경하고 그들의 지혜를 존중하고 조언을 귀담아듣는 것이 미덕이라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상급자가 기분이 상할까봐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서열주의 문화는 분명 문제가 있다.


사고 이후 대한항공은 델타 항공으로부터 데이비드 그린버그라는 인물을 비행 담당자로 영입했고 그는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한국인 조종사들이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항공 세계와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는 것을 도왔다. 그린버그의 개혁은 대한항공의 몇몇 기관사들이 서구 항공사 조종석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실효성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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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체에 불이 붙은 모습
 

 

 

한국 사회의 단면 ②, 서열주의



이러한 개혁은 비단 항공 세계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직장 문화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서열주의가 만연하다. 인턴과 대리, 대리와 과장이라는 권력 간의 거리는 아직도 한참 멀기만 하다. 상관의 실수에 대한 직언은 버릇없거나, 융통성 없다고 여겨진다. 위계와 관계없이 불합리한 것을 적절히 지적하고 실수를 비판하려면 대단한 용기와 각오가 요구된다. 퇴근 후에 오는 상관의 업무 관련 메신저나 부당한 업무 지시에도 싫은 내색 못하며 ‘넵’ ‘넵’ 대답하는 한국사회의 직장인들을 이른바 ‘넵 병’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네’는 너무 딱딱하고, ‘넹’은 너무 가벼워 보이므로 ‘넵’이라는 절충안을 만든 것이다. 이는 눈칫밥의 산물이며, 완곡어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병에 걸렸다고 표현하겠는가. 문화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문화에 기인한 현상 자체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느 분야, 어느 기업에서건, 이러한 문화를 부끄럽게 여기고 쉬쉬하면서 덮어버리려고만 한다면 무언가 잃게 마련이다. 우리는 방금 같은 조종석에 앉은 사람들 간의 끔찍하게 먼 거리가 무고한 목숨까지 앗아간 사건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 번, 우리 문화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서열주의 문화는 분명 건전한 조직을 일구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 문화의 경직된 위계질서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바꾸어야 한다. 한 사회의 기성세대와 직장의 선배가 축적한 가치와 전문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보다 어리거나 연차가 적다고 해서 후발주자들의 의견까지 무시당하거나 조롱받을 이유는 없고, 두려움에 떨 필요는 더더욱 없다. 1부 1장에서 생일이 빠른 하키 선수들이 누렸던 리그 선발 타이밍과 같은 ‘누적적 이득’이 결국 점점 더 큰 차이를 낳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이렇게 권력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회 또한 불균등하게 주어지고, 아웃라이어가 될 수도 있는 많은 후발주자의 가능성을 사장시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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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넵 병에 걸린 직장인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결국 앞서 말한 성공에 대한 통찰, 꼰대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맞닿아 있었다. 따라서 나는 책 내용을 크게 3개의 문장으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행운을 만났다. 아웃라이어가 된 사람들은 그들이 나고 자란 시대와 공간이 준 기회를 잘 잡았다. 둘째, 꼰대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와 공간은 변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성공한 방식으로 후배나 자식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셋째, 나이가 많고 연차가 높은 것이 매번 옳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테랑의 생각이라도 틀릴 수 있고, 후배가 상관을 지적할 수도 있다.


세 문장을 내 삶에도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나는 내가 경험한 크고 작은 성공들을 위한 발판이 되어준 기회들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또한 매일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동생들이 태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나는, 과거의 나에게도, 이들에게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부당한 것에 목소리를 낼 줄 알고, 타인이 내는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고 싶다. 끝으로 나는, 말콤 글래드웰의 통찰력에 반하였다. 이참에 <블링크>와 <사피엔스의 미래>라는 그의 다른 저서들도 읽어볼 계획이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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