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스페인,맑음] 준비하다 #2. 찾아가는 것과 떠나오는 것

떠나오는 것에서 찾아가는 것으로
글 입력 2018.10.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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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7.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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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여러 빛깔의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오늘 하늘처럼 우중충한 회색빛이 되었다. 그 덕에 오랜만에 펜을 들고 진짜 일기장에 글을 써본다.


내일이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환 생활이 시작하는 날, 출국하는 날이다.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감정들을 느끼고 있어 혼란스럽다. 먼 곳에서 바라보았던 교환학생으로서의 삶은 설레고 기대되며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왔던 날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겁이 난다. 아직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데 영어권 국가로 갈 걸 괜히 스페인으로 간다고 했나. 스페인이 은근 인종 차별이 심하다던데 괜찮으려나. 가서 문화에 적응도 못 하고 친구도 못 사귀고 돌아오면 어떡하지.


그러나 이런 두려움도 놀랍지만 정말 낯선 감정은 미련 비슷한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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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교환 생활은 무엇인가를 향해 찾아가는 것이었지 떠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질 것들, 앞으로 내가 겪을 일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며 교환 학생을 신청했지 내가 한국에 있었기에 겪은 일들과 한국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또한, 한국을 떠나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으나 내가 떠난 ‘한국’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근데 출국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고 나서야 나만 소중한 사람들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나와 이별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집에 없으면 우리 엄마 홈쇼핑 결제는 누가 도와주나. 퇴근 후 아빠 어깨는 누가 안마해주고 언니 쇼핑할 때 옷은 누가 봐주지. 내가 학교에 없으면 멘탈 약한 내 친구들, 팀플 욕은 누구한테 하고 술 친구는 누가 해주나.
 
떠나는 날엔 후련한 마음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뭘까. 우중충하다. 마음 한 쪽, 몸 한구석 떼어놓고 가는 것 마냥 신경이 쓰이는데 이게 미련이라는 감정인가. 뭔가 비슷한 듯 다른 것 같은데 표현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실 한국을 떠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이런 마음을 느끼는 나 자신이 조금 웃기다. 아주아주 어렸을 적에도 꽤 긴 기간 홀로 한국을 떠났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땐 비행기를 타는 것이,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기는 했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생각해보았지 그들이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늦긴 했지만 비행기 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았으니 겉으로만 나이를 먹은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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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리숙하고 부족한 나는 떠나는 날이 임박해서야 내 주변의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차렸다. 너무나 오랫동안 내 옆에 있었기에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것들. 떠날 때가 되니 잊고 있었던 소중함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덕분에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그렇다고 돌아보지는 말아야지. 한국을 떠나려고 하니 그 소중함을 깨달았듯, 말라가를 떠날 때에도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소중할 테니.

삶의 여유. 새로운 경험. 스페인어. 그곳에서만 보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싶다. 한국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지만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건 정말 힘들 테니 지금보다 더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기며 살다가 와야겠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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