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형이 하는 인형 놀이, 인형의 집 [도서]

끝나지 않을 인형 놀이
글 입력 2018.10.0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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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남편 헬메르, 그리고 세 아이들의 집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배신의 이야기를 다룬 인형의 집. 극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철 없고, 돈 낭비하는 것을 잘하는 주인공 노라, 그리고 가부장적이며, 아내는 당연히 남편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헬메르, 그리고 헬메르의 친구이자, 노라를 오랫동안 사랑해온 랑크 박사. 노라가 옛날에 남편을 살리기 위해 돈을 빌린 크로그스타트, 마지막으로 노라의 옛 친구이자 한때 크로그스타트와 연인관계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를 떠났던 린데 부인, 이렇게 주요 인물은 5명이 등장한다.

유명한 소설답게, 페미니즘의 시초라고 불리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알 이야기다.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최대의 행복이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마카롱 과자를 먹는 거라던가 세 아이들과 숨박꼭질을 하며 노는 것이었던 노라가 헬메르에게, 평등을 외치며 사랑하지 않는 이의 집에서 떠나는 줄거리. 이 소설이 공표되고 나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라 : 만일 당신의 귀여운 다람쥐가 당신에게 아주 아주 귀엽게 어떤 일을 부탁한다면-?
헬메르 : 또 뭔데?
노라 : 당신이 들어 주시겠어요?
헬메르 : 그것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소, 우선 말이오.
노라 : 만일 당신의 다람쥐가 원하는 바를 고맙게도 들어 주신다면 당신의 다람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모든 재주를 부릴텐데요.
헬메르 : 분명하게 말해 봐요.
노라 : 당신의 종다리는 이 방 저 방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를 거에요. 노랫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말이에요 - 
헬메르 : 글쎄, 어쨌든 나의 종다리는 늘 그렇게 하고 있잖아.


헬메르 : 자, 자, 그렇게 들떠서 흥분하지 말아요. 평소와 같이 나의 귀여운 종다리가 돼요.



심심찮게 등장하는 노라의 애칭 '종다리'라거나 '다람쥐'라는 단어는 계속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람쥐처럼 모든 재주를 부린다느니, 종다리처럼 노래를 부른다느니 하는 말로 노라 자신이 남편 헬메르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양 자기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는 말들이라 몹시 거부감이 들었다.


노라 : 네 여보 그럴게요. 그런데 이제 들어가요, 그리고 랑크 선생님도요, 크리스티네, 내 머리 손질하는 것 좀 도와 주어야만 하겠어.
랑크 : 아무것도 아니겠지 어떤일일 일어날 것이라고 부인이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헬메르 : 전혀 그런 것은 아니야. 여보게, 내가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단순히 어린애 같은 흥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야.


일대일로 대화를 하는 상황에서의 '종다리'라거나 '다람쥐'는 어쩌면 애정 행위의 하나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이 바뀐 상황이더라도 여성이 남성에게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장면은 지금도 충분히 목격할 수 있을법한 상황이기 때문이고,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다 아름답고 귀여워 보이는 법이니까. 그런데, 타인에게 자신의 아내를 깎아내리며 말하는 것은 좀 다르다. 헬메르는 분명히 아내를 어린애 취급하고 있었고, 어떤 의도를 품고있을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동등한 성인인데도 자기가 키워주고있다는 것 마냥 말한다.

어떤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친한 십년지기 친구 둘이 있다고 할 때 두 사람은 아주 친하지만 둘만 있을때는 엄청 싸우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그 친구를 소개할 때는, 내 옛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놈은 진국이다"라고 할 게 분명하다.


헬메르 : 얼마나 무서운 깨달음인가! 이 8년 내내 나의 즐거움이자 자랑이었던 여자가, 위선자이고 거짓말쟁이라니-  더 나쁘게, 더 나쁘게- 죄인이라니! 그 속에 감추어진 말할 수 없는 추악함! 아아 보기 싫어! 꼴도 보기 싫단 말이오! (~~~) 이제 당신은 나의 행복을 파괴했어. 나의 모든 미래를 망쳐 버렸어. 생각만 해도 무서워!



노라가 8년 전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크로그스타트에게 빚을 졌고, 그 돈으로 헬메르를 살려냈다. 그리고 노라는 8년이라는 기간동안 글을 쓰고 가정을 꾸리며 빚을 갚아가던 중, 결국 자신의 죄를 헬메르에게 들킨 것이다. 헬메르는 그 일을 알게 되자 노라에 대한 태도가 돌변해서 노라에게 온갖 욕을 퍼붓다가, 헬메르는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고 은행장으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노라를 용서하는데, 노라는 그의 용서를 거절한다.


헬메르 : 진실된 남자의 마음이 무엇과 같은지 당신은 몰라, 노라. 남자가 자기의 부인을 용서해 주었다고 깨달을 때는 아주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는 법이지 - 탁 터놓고,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를 용서해 준다면 말이오. 말하자면, 그러는 것은 마치 그녀를 이중으로 그의 소유로 만드는 것과 같아. 그는 그녀에게 새 삶을 부여해 주게 돼. 말하자면 그녀는 보기에 따라서는 부인도 되고 귀여운 아이도 된다는 말이야. 당신도 이제부터는 나에게 그렇게 될 거야. 나의 귀엽고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아. 조금도 걱정할 게 없어요, 노라.


헬메르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화룡점정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대목이다. 용서를 통해서 이중으로 소유한다는 말은, 정말로 굉장한 발상이라 감탄까지 나올 정도다. 노라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간에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죄도 결국은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금 전에 그토록 불같이 화를 낸 것이 결국은 노라가 무슨 행동을 했던 자신의 지위에 영향을 준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꼴도 보기 싫은 추악한 영혼을 가진 여자가 되는 것이다. 즉, 여자는 남자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신념이 반영되어 있다.

*

만약, 당신에게 헌신적인 누군가가 어떤 범법적인 행위, 비윤리적인 행위를 통해서 당신을 살려내었다. 그리고 약 1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거짓말로 당신을 속이고, 다른 것에는 헌신을 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옆에 둘만한 사람인가? 물론 노라는 매사에 정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남편과 마카롱을 먹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만 한두개를 먹고도 남편에게는 먹지 않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큰 일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작은 일을 속이는 것은 아주 식은 죽 먹기다. 어쩌면 그래서, 잘못은 단 한번 저질렀다고 할 지라도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것은 함께한 세월을 통틀어 다른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생겨나면서부터 불신이 쌓이게 된다. 아무리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더라도,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거짓을 말한다면 과연 그것은 노라의 말대로 '공동생활이 결혼생활'이 될 수 있을까?

시작은 순수하게 타인을 위한 거였겠지만, 아 물론 타인을 위한다는 것에는 자신을 위한다는 말도 포함이 된다. 타인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도와주었다는 보람감이나 도와주면서 얻는 모든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이득은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가정한다. 타인을 위한 도움의 행위를 해서 하얀 거짓말로 속이기 시작하지만, 그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로 삶은 가득 차버린다. 시작이 거짓되었다면 결국 그 삶은 거짓된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헌신을 하는 그 모습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 역시도 자신이 잘 살기 위해 상대에게 헌신을 하는 '거짓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노라 : 아버지는 저를 자기의 인형 아이라고 부르셨어요. 그리고 제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과 똑같이 아버지는 저를 가지고 놀았어요. 그리고 제가 당신과 함께 살기 위해서 왔을 때 -
헬메르 : 우리 둘의 결혼에 관해서 무슨 그런 표현을 쓰는 거요?
노라 : 제가 단순히 아버지의 손에서 당신의 손으로 옮겨졌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는 당신과 똑같은 취향을 갖게 되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그러는 체만 했는지, 그것은 정말 자신할 수가 없어요. 때로는 전자라고 그록 때로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회고해볼 때 마치 저는 불쌍한 여자같이 이 곳에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 날 벌어 그 날 먹는 여자처럼 말이에요. 저는 단지 당신을 위해서 재주를 부리기 위해서 살아왔어요.


노라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도 내 생각과 별다를 게 없는 듯하다. 자신조차 속인 기만으로, 아버지와 남편, 남자들의 인형놀이 속 수동적인 인형이 되어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와 동일한 취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은 정말 공감이 간다. 흔히 관심있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와 어떻게든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간의 공통점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서서히 시작된 관계는 서로의 다름도 인정하며 서로가 다른 개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유를 존중해주면서 유지된다. 그러나 노라와 아버지, 그리고 헬메르 사이에서는 전혀 관계의 성장이 없었다. 초반과 똑같이 그녀가 그에게 속해있는, 교집합이 되어야 할 두 인생이 아니라 하나의 인생 속에 다른 인생이 포함된 종속 관계인 것만 같다.


노라 : 그런데 우리집은 유희실에 불과했어요. 저는 당신의 인형같은 아내였어요. 꼭 친정에서 제가 아버지의 어린 인형이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이 곳에서 저 아이들은 나의 인형이었지요. 당신이 저와 함께 놀아줄 때는 저는 대단히 재미있었어요. 꼭 제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때 아이들이 대단히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노라라는 인물도 참 이상하다. 8년 전 빚을 져서 자신의 힘으로 갚았간다며 당당하게 말을 하지만 정작 인형놀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 빚을 내게 된 이유도 헬메르라는 남자 때문이며, 갚아가는 이유 역시 그들의 가정을 위해서다. 헬메르를 선택한 것이 자신의 삶을 가장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끈다는 생각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었겠지만 결국은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남자에게서 벗어나지는 못했었다. 지금의 나로선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어쩌면 그 시대에는 그게 당연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엔 헬메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을 나가는 장면, 그리고 아이들을 더이상 보지 않겠다며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장면. 마치 중학교 때 인상깊게 읽은 온다 리쿠의 소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의 주인공 미즈노 리세가 과거의 일은 과거로 남기며 물방울 코사지를 하늘로 날려버리던 장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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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인형 놀이를 많이 했다. 그 때의 나는 바깥에서 노는 것보다 앉아서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고, 손가락 길이만한 크기로 그려놓은 인형을 잘라서 연습장에 배경을 그려 동생과 함께 가지고 놀았다. 일단 기본 남자 캐릭터가 몇 명 있다. 남자 캐릭터는 정말 다양하다. 둥글게 생긴 애도 있고, 네모낳게 생긴 애도 있고, 키가 작은 애도 있고, 잘생긴 애도 있었다. 못생긴 애들은 목소리도 웃기게 냈고, 살짝 모자란 것처럼 말했다. 잘생긴 애들은 목소리도 좋고 매너도 좋은 것처럼 흉내냈다. 남자애들은 2명 정도로 고정해서 내가 한 명, 동생이 한 명 이렇게 맨날 나오는 주인공이었다. 여자애들은 예쁜 애들만 그렸다.

그때 봤던 '베리베리 뮤우뮤우'같은 만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인어가 나오기도 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것으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캐릭캐릭체인지' 만화처럼 마음의 알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하나같이 찬란한 머리카락에 예쁜 목소리를 내고 아기자기하고 몸도 여리여리했다. 남자 주인공들과 러브라인을 만들어주다가, 새로운 여자 캐릭터를 그려서 잘라내면 예전의 여자캐릭터는 이제 바보 역할을 담당해서 이상하게 말을 하고, 바보같이 행동했다. 새로운 캐릭터는 또 예쁜 목소리로 우아하고 조심스럽게 새침하게 행동했다. 그 애들로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만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예쁜 애가 더 '예쁘게' 행동하게 했던 그 시절의 인형 놀이.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라는 걸 고려해도 머릿속엔 얼마나 종속 관계, 그리고 '여자라면 예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는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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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놀이를 했던 나, 그리고 어쩌면 내 인형 놀이 속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를 노라. 그리고 또 어쩌면 인형 놀이 속의 주인공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나.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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