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공허하지만 에로틱한 소녀들, 전투 미소녀의 정신분석

글 입력 2018.10.0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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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공허하지만 에로틱한 소녀들
전투 미소녀의 정신분석



사랑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사실 이 문장은 피상적인 행동을 표현한 것이다. 정확히는 사랑하기 때문에 일치하지 않는다.  필자는 심리학이라는 인간의 광활한 영역을 떠돌길 바라는 지망생이지만, '모든' 심리학 분야의 책을 쉽게 읽지는 않는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고압적이라고 해야할까, 필자가 느끼기로는, 사람들과 '심리학'의 관계는 다른 분야보다 더 큰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필자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우리의 삶이 천 피쓰짜리 무색 퍼즐이고, 우리가 의지할 것은 더듬더듬 찾아 맞춘 다른 퍼즐과의 얄팍한 관계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는 평생 오지 않는다. 하지만 퍼즐이 조금씩 맞춰져 언젠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인지하고 넓혀질 뿐이다. 퍼즐이 조금씩 맞춰질 때, 우리는 평화는 몰라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부분에서 심리학이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처럼 심리학은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꽤 괜찮은 표지판을 제시한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은 그보다 복잡한 것이어서, 똑같이 방황했던 한 사람들이 세워둔 표지판이 그에게도 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점이 심리상담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필자를 가장 괴롭힌 점 중 하나였다.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도, 땅에 온통 고통스러운 가시만 돋아있다면, 그 길을 끝까지 다 걸어가지도 못하고 그자리에 꼬꾸러진 사람도 생기게 된다. 고통스러운 직면이 모두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늘 좀 더 상냥한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필자는 종종 실존주의 심리학에 관한 책의 이름을 마음의 태그로 달아둔다. 심리학자뿐만 아니라 어설프게 맞춰진 퍼즐에 의지하는 모든 존재들도 그러길 바란다. '우리는 사랑의 처벌자가 되서는 안된다'. 필자는 프로이트를 그 어떤 심리학자들보다 사랑하지만, 그의 치료가 레즈비언 여성의 사례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 광활한 대륙에서 완벽한 방향키를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서로 의지해 거대한 세계의 퍼즐을 맞춰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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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어졌다. 이처럼 필자는 심리학이 사람들에게 가진 영향력이 두렵다. 필자가 대중이나 문화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긴장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신분석학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필자는 정신분석이 뻗어나온 이파리의 뒷면까지 탐구하듯이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리뷰에 앞서 미리 정의해둬야 하는 점은, 필자가 말하는 '정신분석'은 어디까지나 철학이라기보다 치료체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철처히 '개인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정신분석이 서브컬쳐에 관한 사회학적 비평으로 자리잡은 것 자체에 대한 불안이 이 글에 녹아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결코 이 책이 "도덕적이지 않다"라거나, "과장해서 해석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옛날에 재밌게 읽은 '예술가들은 어떤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을까?'시리즈 정도로 이 책을 들었는데, 책을 덮었을 때는 따로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 전세계의 미디어는 결코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책은 단순히 오타쿠들이 '여성에 대한 공포'나 '이상성애'로서 마법소녀들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미디어 생태계의 환상성과 히스테리가 결합해 어떤 혼동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심리적 외상을 가지지 않았지만, 전투적 태도를 가진 이 소녀들은 일본 미디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공허한 존재들이다.  책은 결코 일차적으로 오타쿠들을 환상에 빠진 사회 부적응자로 평가하지 않는다. 다양한 맥락이 만들어낸 현상이므로 '마법소녀를 욕망하는 오타쿠'들은 언제든 보편화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운동성을 가진 오늘날의 미디어가 상상계의 원리만으로도 우리의 심리가 작동하게 될 수 있다는 분석도 흥미로웠다. 그 말대로 이런 현실에서 오타쿠들은 그 누구보다 '현실'을 알고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와 적응하라는 말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필자가 감명적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긴 서문을 써내려간 이유는, 이것이 하나의 '평가'로 자리잡아 무차별적으로 남용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책은 페니스를 가지거나 동화된 어머니와 소녀들, 펠릭걸과 펠릭 마더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페니스가 달린 소녀들을 그려낸 핸리 다거라는 아티스트도 설명한다. 이런 다양한 사례-특히 다거의 경우-는 그의 논리전개를 더욱 탄탄히 만든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잘못 전달되어 '오타쿠들은 페니스에 고착된 집단이다'라고만 결정될 것이 걱정된다. 저자는 오타쿠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성적인 존재임을 이야기하겠지만, 정신분석학적인 전제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그들은 단순히 '변태'들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공허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을 모르는 집단도 아니거니와, 그 나름대로의 하나의 적응을 위한 전략이었을 뿐이다. 비난할일이 아니기에 그 다음 단계는 오타쿠들 스스로가 선택해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수많은 미디어들이 공허한 소녀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오타쿠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이 가진 가장 멋진 점은 이들을 단순히 사회부적응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이론과 사회변혁을 엮어 성실히 써내려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단순히 '페미니즘'이나 '변태들의 특성 나열' 정도로 이 소녀들을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는 분명 페미니즘이 개입했겠지만, 단순히 권력싸움이 개입되었다면 '싸우는 소녀'들을 설명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이고, 대상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저자의 모든 분석이 오늘날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다양한 사례와 새로운 분석이 흥미로운 책이었다. 서브컬쳐와 정신분석을 엮은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여성 오타쿠의 '야오이' 사례도 궁금하다. 솔직히, 이 책, 대상이 너무나 '남성 오타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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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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