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기획된 가족' [도서]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
글 입력 2018.10.0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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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획된 가족>은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의 일상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철저히 기획되고 관리되어지고 있는 현대 가족의 의미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위치하고 있는 중산층 여성들의 일상에서 나는 가족제도 내의 젠더적 평등의식과 함께 가사・보살핌 노동의 남성화를 조금이나마 기대했지만, 그것은 나의 아주 큰 오산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그녀들의 현실을 통해 기획된 가족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맞벌이 여성들은 일상에서 복합적 정체성인 어머니, 아내, 개인의 욕망과 충돌하며 갈등하는 상황들과 매일 마주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저자가 말하는 ‘압축적 시간 경험’ 을 통해 시간의 동시성과 시간의 밀도 강화, 시간의 최적화를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시간을 ‘바쁨’으로 특정하며,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남편을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바쁜 남편을 두둔하기도 했다. 결국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더 높은 수입으로 가사와 육아의 노동을 다른 여성에게 외주화하지만, 어머니이면서 노동자인 ‘워킹맘’ 으로서 가사에 대한 모든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삶은 오히려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있는 듯 했다. 이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병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비장애인엄마라 불리는 전업주부보다 더 강도 높은 성역할과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가정중심성으로 인해 ‘바빠야만’ 자신의 욕구 불만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후기 근대의 새로운 주체로서의 삶을 기꺼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맞벌이 부부는 공통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닌 공동의 생계 부양자로서 불안한 사회에 맞서기 위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젠더 격차를 발생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2,30대 여성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불안한 미래를 전망하도록 한다. 나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중산층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며, ‘출산기피현상’과 ‘저출산’ 의 원인과 문제가 도구적 가족주의에 기반한 사회의 현실에서 나타난 것임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도구적 가족주의가 이미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맞벌이 여성들은 도구적 가족주의의 가족 전략의 수행자 역할을 지속하는 동시에 가장 철저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가족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최대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간주되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 출산율 증가를 유도하기 위한 출산 장려의 지원과 노력은 국가의 확고한 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아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잔존해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문화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압축 성장 의 사회 속에서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구성에 대한 문제는 ‘가족계획사업’ 이라는 정부의 출산정책으로부터 이어져 온 정부의 가족 제도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계획사업이 실시되는 동안 여성의 출산력은 경제발전의 장애물로 치부되었고, 출산은 개인 혹은 부부의 선택권이라기보다는 국가와 가족 전체의 행복을 위해 계획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 구도는 저출산의 사회문제화와 정책영역화 과정에서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발전주의와 성장주의라는 국가주의 담론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분석이 여전히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 사회에서 출산 억제가 아닌 출산 장려에 대한 정책은 단지 방향만 바뀌었을 뿐, 출산력에 대한 인식은 계속해서 공공재의 의미만을 강조해 온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출산 대응 정책은 단지 출산자가 여성이라는 사실로 인해 출산정책과 보육정책이 그 자체만으로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오인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출산과 양육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된 담론들이 과연 여성들의 행위성과 그 맥락을 고려하여 나타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제도에 대한 정책이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순진한 발상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저출산 대책의 물질주의적 접근과 가부장적 성격에 대한 비판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저출산의 문제를 경력단절로 인한 고용불안정과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부담 등의 성불평등 요인이 맞물린 현실을 간과하고, 오직 금전적인 보상과 같은 경제적 차원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기획된 가족>에서 저자 조주은은 끝으로 ‘기획 공간으로서의 가족’ 내 문화적 지체 현상을 지적하며, 가사・보살핌 노동의 남성화를 뒷받침할 세심한 국가적 캠페인・사업과 제도가 보완되길 바라였다. 즉, 저출산의 원인과 문제를 온전히 여성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되며, 여성의 선택권과 행위성에서 대한 담론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모성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대해 더욱 깊이있는 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저출산의 원인과 문제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정부차원에서 여성에게는 여가친화적 정책이, 남성에게는 가족친화적 정책이 필요한 때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



[차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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