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지는 별] Intro. 나는 나를 모르기로 했다

글 입력 2018.10.0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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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는 밤중에도 셀 수 없는 별이 온몸으로 빛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단 몇 개의 빛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그 외의 별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욱한 안개와 먼지 때문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를 비추는 빛의 그림자 때문인지, 혹은 빛의 크기가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인지 오늘도 밤하늘은 반짝임 없이 아득하다. 하지만 늘 그 자리에서 저만의 방법으로 빛나는 별들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빛나지 않는 게 아닌, 보이지 않을 뿐인 그 별들에 따뜻한 시선을 건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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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정의하고 싶어 한다. 심리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며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려 하고, 혈액형이나 탄생일 별자리 등 자신을 유형 안에 넣고 유형별로 규정되는 성격을 실제 성격과 대조하며 적중률을 재는 일은 재미있다. 확실성과 완결성을 추구하는 본능과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타인이 나에 관해 물을 때엔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것이다. 올해 부쩍 ‘너는 뭐할 거니’라며 나를 묻는 말들이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애석했다. 나를 규정하고 싶었다. 이것이 아트인사이트에 문을 두드린 궁극적인 이유였다. 사랑하고 닮고 싶은 예술가들처럼 나만의 필적을 만들어보리라. 누군가 나에 관해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내 안에 예술이 있음을 멋지게 보여주리라. 다부진 다짐이었다.

하지만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안 된 지금, 여전히 나는 나를 모른다.



꽃이 된 이름에 비추는 햇살


에디터 활동을 하며 수많은 문화예술을 향유했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시선의 사각지대에서 빛을 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과 그들을 소통의 장으로 끌어오는 과정, 나 자신이 소통의 주체로 서는 모습을 보며 변변찮은 돌멩이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은 하늘을 수놓는 별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관심의 영역에서 배제된 이들과의 시선을 권유받으며 ‘주체적인 예술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풍요롭게 한 그 시선은 동시에 나 자신에게 투영되었다. 다양한 타인을 담는 품도 넓어졌고, 나 자신을 담는 품도 넓어졌다. 내 안의 다양한 요소들도 결국 나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며 그것을 이끌어가는 자도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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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넓어진 시각이 따뜻한 시선을 비췄는지는 모르겠다. 이름을 붙이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소통’의 과정은 서로를 향한 애정을 전제한다. 꽃이 의미를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찬란히 피고 자라기 위해서는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졌다는 자만은 반동이 되어 역으로 차가운 시선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두 품어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잣대로 판단할 권리 정도는 가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이 시선은 나에게도 향했다. 넓어졌다고 자부한 시야는 아이러니하게 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기준을 더욱 단단하게 죄었다. 나는 나를 힐난하는 목소리와 맞서 싸워야 했다.

포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차가운 관조였으니, 자신 역시 포용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품을 넓히고도 ‘품이 넓은 나’로 자신을 섣불리 규정하며 그것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자신을 정의하고자 했던 애초의 목표는 나를 좁히고 있었다. 다양성의 시대를 예찬하면서도 다양하기 싫었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인정하는 방법에 한없이 무관심하면서도 나로부터 뻗어진 가지들을 한정된 미관에 맞게 쳐내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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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쁘지 않아도 일단 무성하게 가지를 뻗어보기로 했다. 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나를 모르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스스로 가리던 나의 모습을 알아가고 드러내는 과정을 더는 괴로워말며 즐겨보려고 한다. 그렇게 가꿔진 품으로 나를 둘러싼 세상과 다양한 별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 이번 에세이의 목표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나’의 마음과 함께 할 것이고, 수많은 별을 비추고 싶다.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하늘은 아직도 가려지는 별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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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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