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키워드로 읽는 웹소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10.0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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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과의 만남

만화를 보다가 장르소설로 넘어가고 더 재밌는 것이 없을까하다 만나게 된 것이 웹소설이었다. CRT 디스플레이 너머 웹의 세계에서 처음은 ‘모기’라는 사이트였다.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여기서 주로 판타지, 판타지 로맨스 장르를 읽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다 읽었다 싶었을 때 다른 사이트를 찾아 떠났고 조아라와 문피아에 정착했다. 조아라는 판타지 로맨스, 패러디가 볼만했고 문피아는 정통 판타지, 무협, 실험적인 현대물이 괜찮았다. 다른 장르에도 괜찮은 작품들이 몇 있었다. 나는 서사의 짜임새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드래곤 라자’ 같은 1세대 판타지 소설 계열이면 후한 점수를 주었다. 심심하고 지루한 10대 학창시절을 달래준 나의 웹소설들은 유료연재 시기를 거치며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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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문피아 하 조아라 로고)


2010년 초반기부터 여러 연재 플랫폼에서 조금씩 소설의 유료화 얘기가 나왔다. 당시 문피아는 자유 게시판에서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꽤 심했는데 결국 뒤늦게 그 흐름에 합류했다. 조아라는 이미 프리미엄과 노블레스 시스템이 있었지만, ‘나는 귀족이다’, ‘미궁의 들개들’과 같은 히트작을 계기로 유료연재에 붐이 일었던 것 같다. 충격적이었던 헌터의 귀족화와 미궁과 탑이라는 던전 성장물은 흔해진 지금에도 여전히 먹히는 설정이다.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소설이 등장했지만 팔릴만한 설정이 차용된 소설들 위주였다. 이전처럼 신선한 실험작이나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소설은 드물어졌다. 특히 조아라는 지난번 저작권 사태를 계기로 많은 작가들이 떠나거나 연재를 잠정 중단하여 남은 판은 더 열악해졌다. 문피아 골든 베스트는 현대 판타지가 점령한 이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가벼운 소비, 쉬운 비판

지금 웹소설을 찾는 사람들은 자아성찰하거나 시대적 통찰을 바라고 오지 않는다. 때문에 저자들 역시 본인이 즐길 수 있거나 남들이 즐길 수 있는, ‘재미’ 목적에 충실하게 글을 쓴다. 웹소설이 지탄받는 지점이 이 부분일 것이다.

아무 의미 없이 쓰이고 즉각적인 쾌락에 봉사하는 장르 문학의 총체, 사람들과 시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가벼운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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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카우치 포테이토,
TV 이후 인터넷사용자의 미래일까


원래 나 역시 이런 쪽으로 쓰려고 했지만 장르문학 비평 팀, 텍스트릿의 활동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가벼운 비판은 너무나 쉽지만 그 쉬움을 이겨내고 ‘다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현실에서도 지금의 정치권이나 타인의 무도함을 비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나쁜 것 뒤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그 맹점을 지적하고,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방향을 찾아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쓰려고 했던 글을 돌이켜보며 나도 모르게 너무 쉬운 말들만 한 것을 반성했다. 그래서 글의 방향을 바꿨다. 오늘날의 웹소설을 읽는 법에 대해 거창한 이론 대신 내가 보았던 세상과 읽었던 소설들로 말해보려 한다.



웹소설이란

웹소설은 인터넷이라는 망 속에서 ‘재미’를 위해 다양한 설정들을 변주하며 쓰인, 장르소설의 일종이다. 현대, 판타지, 무협, 로맨스, 미스터리가 대표적인 장르이며 플랫폼 별로 특징이 뚜렷한 편이다. 지금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웹소설은 카카오페이지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나 중국 유명 드라마 ‘랑야방 : 권력의 기록’의 원작 ‘랑야방’은 한 때 나라를 휩쓰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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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성균관 스캔들 우 랑야방 드라마)


과거의 장르소설이 웹에 연재한 이후 출판하는 루트였다면 오늘날의 장르소설은 웹에 연재한 이후 종이 출판 대신 유료 연재나 전자 출판으로 빠진다. 이전의 장르소설 독자는 웹과 도서 대여점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젠 웹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어졌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모바일 전성시대를 열었고 독자가 이동하자 자연스럽게 서비스도 바뀌었다.

네이버는 2015년 누적 조회수 45억2300만 건 중 약 86%가 모바일을 경유했다고 발표했고 조아라에서는 2014년 80%이던 모바일 이용자 비율이 2015년 92%로 올라갔다고 한다. (출처 : 한 회에 5분…모바일소설 ‘허니허니’독자 500만) 저자와 플랫폼도 책을 내는 것보다 유료연재로 돌려서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이 더 이득이므로 판은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웹소설의 독법

1) 캐릭터

웹소설은 웹툰과 같다. 웹툰이 출판 만화를 벗어났듯이, 이것도 크게는 기존의 소설이라는 범주 속에 있지만 엄연히 이것만의 작법과 독법이 있다. 이 글이 작법을 다루는 것은 아니니 빼고, 독법만 말해보자면 캐릭터와 키워드가 핵심이다.

일반적인 소설은 인물, 배경,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요소는 조화로운 서사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웹소설은 중심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하다. 흔한 배경과 사건과 서사 속에서 분명히 다른 무언가, 그러면서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반걸음으로 승부한다.

그렇기에 중심인물은 독자를 대변해야 한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대신 그는 욕망의 대리자로 나서며 고난 받고 부를 누리고 성적 쾌락을 탐닉한다. 나의 아바타는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리고 신인 우리는 편당 100원에 그 즐거움의 일부를 나눠가진다.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말 같지 않은가? 인터넷 방송인들은 구독자들의 욕망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으로 돈을 벌고 구독자들은 댓글과 후원금으로 그들에게 명령한다. 현실에서는 다른 방식으로도 아바타 놀이가 성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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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베스티아'의 표지, 그림 추혜연)


웹소설은 자꾸만 실패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통제이기 때문에 과한 주제의식이 있으면 곤란하다. 사람은 스트레스 받을 때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원한다. 나는 다양한 책을 즐겨보는 애독가지만 당장 머리가 아플 때 피에르 부르디외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을 찾지는 않는다. 가끔은 생각하는 즐거움 대신, 쉬운 주제 속에서 쉬운 메시지를 듣고 익숙한 캐릭터들의 익숙한 서사를 즐긴다.


2) 키워드


캐릭터가 시대의 욕망을 보여주고

키워드는 시대적 스트레스를 나타낸다.



책을 고르고 들어 올려 앞부분을 읽고 더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이 시대, 더 빠르고 쉽게 그 책을 통째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소개글은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장르, 분야, 세부설정 등을 적어놓은 플랫폼에서 편하게 작품을 고르거나 아예 작가가 소개글에 #키워드 식으로 글의 주인공과 서사 방향을 스포일러 한다.

길게 읽는 것이 힘들어진 이유는 이미지가 텍스트를 대체한지 오래여서일까, 혹은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피로해진 사람들은 더 짧은 것을 원하고 한 장의 요약을 바란다. 장황한 것을 싫어하고 핵심만 말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긴 시간을 들여 음미하는 대신 10분짜리 소개영상을 틀고 10장짜리 카드뉴스를 읽는다.

장르 별로 중첩되는 키워드를 읽다보면 사람들의 욕망이 보이기도 한다. 가장 많이 보였던 설정이자 키워드는 #회귀, #빙의, #게임, #1919(생략)였다. 이 중 하나만이라도 잘 활용하면 웹소설 계에서 평타는 칠 만큼, 편안하고 강렬한 욕망들이다. 회귀는 지금의 자신 대신 내가 바라던 ‘나’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빙의는 손쉽게 타인의 가능성을 얻고 싶은 욕망을, 게임은 모든 것을 양적 수치화하여 예측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3) 로판과 현판의 세계

위에서 계속 언급했던 두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와 문피아에서 주류라고 말할 수 있는 두 장르, 로맨스 판타지와 현대 판타지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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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계~게임시스템은 장르소설 트렌드이고
계층~복수는 로판의 트렌드이다


판타지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는 엄연히 다르다. 앞에 나오는 것이 핵심인 장르이고 뒤의 것은 부수적인 배경이다. 지금 조아라에서는 로맨스 판타지, 현실 밖 세상에서 색다른 로맨스를 꿈꾸는 장르가 독보적이다.

금수저물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계층적으로 왕족과 같은 사회 최상류층에서 시작하거나 낮은 계층이어도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가끔 진중한 소설에서는 주인공을 굴리기 위해 하류층, 혹은 상류층에서 떨어지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로판에서 독보적인 변화는 여성의 삶에 대한 시선에 있다. 이세계 + 빙의물이 유행하며 판타지 로맨스에서 판타지가 슬그머니 뒤로 빠지고 여성의 삶과 성은 남성의 시각으로 다루어졌다. 여자 주인공의 순결은 필수였고 연약하고 화려한 꽃으로서 사교계에 나서야 했다. 모험하는 여성의 세계에선 덜 중요했던 것이 실내의 여성에겐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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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외부의 모험가, 내부의 아나운서 동일 여성 캐릭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그러다 복수물이 유행하면서 가족, 남성 파트너,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선언과 함께 자기 삶 찾기가 시작되었다. 주로 회귀라는 설정과 함께 시작된 이 주제는 매력적이다.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여성이 귀족으로서 정치를 시작하거나 천시 받은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기능사의 길을 걷기도 하고 상인으로서 성공한다.

이 시리즈의 대표적인 직업은 역시 기사일 수밖에 없다. 소설 ‘아도니스’ 여기사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조아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카카오페이지로 연재 처를 옮긴 이후 최근 614화로 완결을 냈다. 판타지성이 좀 더 강조된 로판으로, 여자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기존의 남자 주인공 못지않게 강하다. 꽃 같은 여성이라는 말에 질렸을 현실의 여성들에게 세계를 이끄는 강한 여성이 주인공인 ‘아도니스’는 충분히 멋있다. 나는 서사를 늘이는 것에 지쳐 중간에 하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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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아도니스 표지)


아예 악녀 캐릭터로서 당당한 로판물도 늘어났다. 사연 있는 악녀라는 캐릭터는 ‘로즈마리_귀족 아가씨’라는 2010년 작품에서부터 이미 있었지만 트렌드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은 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악당과는 조금 다른 악녀는 신데렐라 언니에게서 파생된 캐릭터이다. 아름다운 동생을 질투하고 괴롭히다 결국 벌을 받는 서브 포지션이었던 악녀는 로판에서 꾸준히 주인공 언니/동생/엄마, 남주 약혼녀/짝사랑녀 등의 역할을 맡으며 활약해왔다.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악녀로 매도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마치 마녀사냥에 묻혀버린  마녀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 같다. 주위가 악녀로 매도하기까지 있었던 모함과 오해, 그것을 당당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각광 받는 이유는 현실 속에서 며느리, 여자 상사, 여자 직원, 여자 후배, 엄마, 딸, 미혼녀 등 수많은 호명 속에서 오해 받은 여성들의 속을 풀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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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재조명된 마녀 말레피센트


도덕관에 대한 의문 역시 성적으로 번지기 시작하여 기존 성인 로맨스물과는 다른 차원의 성적 반란이 일어났다. 게임 시스템이나 꿈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섹스에서 주도적이고 흥미로운 섹스로 넘어갔다. 극단에는 금기를 짓밟는 모럴리스물이 있는데 분위기가 마치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 같다. 웹소설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고 2002년 나은진이 현대소설연구에서 쓴 「사이버 공간 소설에 나타난 여성성과 남성성」이 섹슈얼리티와 성적 변신에 대해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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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짐작되는 영화 님포매니악 분위기


집착물은 수동적인 여성도, 독립적인 여성도 아닌 중간 단계를 보여준다. 보통 잔인하고 강한 아버지, 남편, 동생의 비호를 받으며 그들의 사랑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문화라는 것이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단숨에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수동적으로 마냥 남성 권력자의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닌데, 결국 그의 권력 아래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간다.

성인 로맨스 소설에서 이미 많이 시도된 집착은 2014년에 연재를 시작한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를 거쳐 웹소설로 재탄생한다. 기존의 집착이 끈적끈적하게 끝이 났다면 웹소설 집착은 산뜻하게 시작하고 호구스럽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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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표지)


성녀와 마녀, 수동성과 적극성,
순결과 유혹, 의존과 집착 사이에서
오늘도 여자는 춤춘다.

*

02 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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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서바이벌이 현대 판타지의 트렌드이다.


로판에서는 지배하고 싶은 욕망과 지배받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고, 현판에서는 지배하고 싶은 욕망과 무시하고 싶은 욕망이 충돌한다.

보통 주인공은 부유하지 않은 평범한 서민층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재능이나 기연을 바탕으로 자수성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 갑질하거나 독보하거나. 뉴스에 갑질이 보도되면 사람들은 욕하는 동시에 그럴 수 있는 권력을 부러워한다. 그것을 주인공 아바타를 통해 충족하면 나도 슈퍼갑이 되는 것이고 그런 갑질을 무시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하면 지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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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갑은 힘이 세다.


현판의 배경이 현대라는 것은 판타지라는 세계관보다 독자가 살고 있는 현실과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흙수저 인생 대신 금수저 인생으로 역전하고 싶은 심리가 강하게 나타난다. “나도 기회만 있었으면”이라는 생각을 반영하듯 기연이 주어지고 주인공은 재능, 권력, 부, 명예, 성적 능력 등을 쟁취한다.

이전 기고에서 말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냥꾼의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현대 판타지이다. 특히 조아라의 ‘나는 귀족이다’로 시작된 현대 귀족 헌터는 용을 무찌르고 보물을 얻는 서사를 좀 더 속물적으로 보여준다. 이세계에서 돌아오든, 미래에서 회귀했든, 기연을 얻었든 끝은 내가 행복한 노후이다.

문피아에서 유독 특별함을 과하게 강조한 S등급 분류가 유행하는 이유도 ‘나’라는 개인의 특별함을 어떻게든 보이는 지표로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것이 소설 속 주인공이든, 그 글을 쓰고 있는 저자든 말이다.

헌터 계에서 세계멸망의 위기 속에서 분투하는 주인공을 그려내는 소설도 꽤 있다. 보통 기연, 게임 시스템, 던전, 회귀가 따라온다. 동료들은 대부분 장식이고 주인공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용, 신, 괴물 등을 이겨내고 힘, 여자, 명예를 얻으며 결국 영웅이 된다.

일본의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소년소녀들이 세계를 구했고 한국의 웹소설에서는 취직 못한/해고당한/무능력한 청년들이 세계를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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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은 영웅을 꿈꾼다.


현대 판타지의 문제는 결국 ‘성공’이 목적이기 때문에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건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경이나 인물에 대한 발전은 거의 없다. 전형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2차원에서 놀고 있고 배경은 이미지 복사한 블루 스크린이다.

그래서 서사와 캐릭터 대신 소재에서 승부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대부분 서민 계층이지만 스포츠 선수, 배우, 가수, 아이돌, 인터넷 방송인, 요리사, 의사, 헌터, 비즈니스맨(상인) 등 직업 별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선악구도는 로판과 비슷하게 주인공이 선한 용사가 아니라 계략적인 측면이 강하거나 안티 히어로의 길을 걷는 쪽으로 변했다. 과거 판타지 모험물이 주류였을 때는 흔들리면서도 선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성격, 혹은 아예 과감하고 저돌적인 성격이 독자들에게 이해받기 쉽다. 유료연재 특성상 독자는 전개가 마음에 안 들면 금방 하차하고 구매지표가 떨어지기 때문에 차근차근 성장하는 것 대신 빠른 쾌감을 줄 수 있는 전개가 중요하다.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인기 있는 설정은 게임 시스템이다. 현대 판타지 속 어떤 서브 장르에도 잘 어울리는 이 설정은 스텟, 스킬, 퀘스트를 통해 주인공의 성장과 시련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게임에 익숙한 남성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고 있어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 1인 미디어와 결합한 게임 시스템을 배경으로 유료연재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를 보면 일반소설과 마찬가지로 웹소설에서도 시스템과 그 속에서 분투하는 인간은 좋은 소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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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 표지)


갑질과 무시, 성공과 실패,
쿨함과 허세 사이에서
오늘도 남자는 뛴다.





웹소설 중에서도 로맨스 판타지와 현대 판타지만 말했기 때문에 이 글만으로 전부 판단내리는 것은 섣부르다. 키워드를 활용한 빠른 소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할만한 장르일 뿐이다.

웹소설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까? 지금처럼 빠르게 설정을 소비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극에 금방 익숙해지고 더 한 자극에는 한계가 있다. 반응 연재도 좋지만 웹툰이 에이전시를 끼고 기획을 먼저 하는 것처럼 웹소설에도 기획이 필요할 것 같다.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식 스토리텔링의 강점인 디테일을 촘촘히 넣고 캐릭터의 매력을 확실히 하자. 이것만 잘 해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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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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