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 다윈영의 악의기원 [공연예술]

어린 새의 성장과 추락에 관하여
글 입력 2018.10.0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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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수많은 연극, 뮤지컬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아이에서 벗어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어른’ 이라는 말에 담긴 무게와 가치에 대해 고찰한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를 포스터에 내건 ‘다윈영의 악의기원’도, 분명 그런 작품일 줄 알았다.


그랬던 나의 예상을 가볍게 깨뜨린 ‘다윈영의 악의기원’은 여러모로 불편한 작품이었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고난도의 넘버와 아름다운 무대, 문학적인 가사로 이루어진 최고의 작품이었지만, 보는 내내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어른이 된 나에게,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너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들과 정말 다른 사람이냐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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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으며

시간의 관문을 통과한다

어른이 된다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

그렇게 아이는 죽는다



이 작품에서는 16살 소년 다윈 영의 성장을 주요 서사로 다루고 있다. 많은 연극 뮤지컬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성장은 대부분 긍정적인 성격을 띠지만, 이 작품에서 ‘성장’을 다루는 방식은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이고 냉혹하다.


다윈의 아버지, 니스는 자신의 세계와도 같았던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친한 친구를 살해한다. 그리고 먼 훗날, 다윈은 아버지와 같은 이유로 같은 죄를 저지른다. 다윈과 니스의 선택은 모두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지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오히려 그들을 이전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한다. 죄 이전과 죄 이후, 내면에 도사리던 악에 잠식당한 그들은 순수했던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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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이후 니스는 아이였을 때의 모든 것을 잊은 채로 평생을 죄에 묶여 살아간다. 이런 니스에게 삶은 죽음보다 괴로운 형벌이다. 티 없이 곧게 자라 항상 순수하고 맑은 웃음을 띠던 16살의 다윈은 성장 이후 검은 후드의 그림자 속에 갇힌 무표정한 어른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다윈 영의 성장은 아이가 성숙하는 과정이 아닌, 내면의 악을 받아들이고 대물림하며 아이가 완전히 죽어가는 과정이다.


악을 대물림하며 성장하는 것은 비단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후디’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후디는 절망만이 남은 ‘침묵의 도시’, 9지구의 상징이다. 후디는 작품 안에서 많은 의미를 지닌다. 니스는 아버지가 1지구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친구를 죽이고, 다윈은 아버지가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같은 죄를 저지른다.


니스의 아버지이자 다윈의 할아버지인 러너가 후디의 편에 서서 1지구를 배신하면서부터 세 부자의 죄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후디는 ‘죄의 근원’이자 ‘악의 기원’이다. 또한 후디는 항상 인물들의 곁에 있다가, 그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절묘하게 나타나 그들을 옭아맨다. 따라서 후디는 인간의 내면에 본능처럼 자리한 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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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기원

인간은 용서받지 못한다

벌의 기원

인간은 감당하지 못한다

종의 기원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악의 기원

인간은 어디에서 죽는가




세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약해진 그들을 잠식하는 후디들의 모습은, 악은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은 아닌지, 그리고 악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인간의 본질이라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악을 자행한 니스와 다윈의 명분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생존’이며, 러너의 명분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정의’이다. 애초에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지금껏 진화해 온 인간의 역사 속에 살면서, 이들을 특별하게 악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윈의 대사처럼 수많은 시간의 관문을 통과해 오면서, ‘살인자가 아닌 집안’이 있기는 한 걸까. 이러한 물음들은 다윈과 니스, 러너의 본질에 관한 물음이면서, 생존을 위해 악을 선택하며 발전해 온 인간의 역사에 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검은 하늘 아래 역사는 시작되고

비에 젖은 풀밭의 악취 속에 자라나

어린 새가 추락할 때 완성된다는 것을



기차에서 레오를 살해하는 다윈의 머리 위로 제이를 살해하는 니스의 모습이 겹쳐지는 극의 연출은 아름답게 포장되어 왔던 인간의 역사에 관해 담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다윈에서 니스로, 니스에서 러너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죄와 악의 대물림은 시간의 관문을 따라 인간이 진화해 온 과정과 닮았다. 다윈이 내면의 순수한 어린아이를 죽이고 성장했던 것처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순수한 가치들은 생존의 벽 앞에 힘없이 스러진다. 순수하지만 약한 것들은 죽고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상관없이 강한 것들만이 살아남는 것. 인간의 역사가 완성되어 온 과정이자,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악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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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관람하는 내내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은 과연 친구를 살해한 다윈, 니스와 다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지탱하던 가장 중요한 것이 무너져 내렸을 때 우리는 과연 선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상황을 타개시켜 줄 내면의 후디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찝찝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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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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