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문장들 [영화]

살며시 찾아온 우연은 나를 강렬하게 이끌고
글 입력 2018.10.0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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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빌 어거스트 감독

파스칼 메르시어 원작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리스본의 봄, 카네이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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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한 권의 책, 한 장의 열차 티켓으로 시작된 마법 같은 여행!


오랜 시간 고전문헌학을 강의 하며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위험에 처한 낯선 여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게 되는데…



우연히 마주친 여인, 우연히 보게 된 책, 충동적으로 올라타게 된 리스본행 열차. 그레고리우스가 낯선 여인이 남긴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가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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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 프라두는 포르투갈 살라자르 독재 정권 체제하에서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의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은 독재 체제의 현실 상황에 얽히고설켰다. 그의 친구 조지와 주앙, 그리고 그가 사랑한 여인 스테파니아 모두 레지스탕스로, 혁명에 가담한다.


그들이 준비한 혁명은 1974년 4월 25일에 일어난 포르투갈의 무혈 쿠데타, 카네이션 혁명이다. 혁명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혁명군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지지 의사를 표시한 데서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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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이전의 경험들과 장소는 과거일 뿐. 대부분은 잊혀져간다.



우린 우리의 일부를 남기고 떠난다. 공간을 떠날 뿐이지 떠나더라도 우린 그곳에 남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안에 남는다.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장소로 갈 때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도 시작된다. 그 여정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린 그 길에서 외로움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하지 않나? 그래서 미리 단념하는 걸까? 인생의 끝에서 후회할 만한 모든 일들을…….



결국은 자아상의 문제인가? 인정할 만한 삶을 살려면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그런 결정적인 모습들? 만약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설명될 수 있다. 계획한 대로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엄습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고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다.



리스본행 열차에 올라 스위스를 떠난 그레고리우스가 깨진 안경을 새로 맞추기 위해 안과에 방문한다. 안과에서 만난 마리아나가 기억에 남는 구절을 묻자 그레고리우스는 대답한다.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 연민, 매력이 가득한 감독.



‘우연이라면 운명을 의미하나요?’ 마리아나가 묻자, ‘무작위적인 가능성 같아요.’ 그레고리우스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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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을 떠나게 된다. 마리아나는 그레고리우스를 배웅한다. 열차에 오르기 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 생각해보면 아무데우와 스테파니아, 그들 인생에는 활력과 강렬함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 너무 강렬해서 결국 부서졌잖아요.

- 하지만 충만한 삶이었죠. 내 인생은 뭐죠? 지난 며칠을 제외하고요.

- 그런데도 다시 돌아가려 하시는군요.



그런데도 다시 돌아가려 하시는군요, 마리아나의 말에 그레고리우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열차가 곧 출발함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마리아나가 먼저 입을 연다.



- 여기 머무시는 건 어때요?

- 뭐라고요?

- 여기 계시면 안 되나요?



리스본을 떠나고 다시 열차에 오르기 전 그레고리우스와 마리아나의 대화, 그가 남았는지 떠났는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리스본행 열차를 타고 떠났듯 그는 다시 ‘무작위적인 가능성’에 놓인다.




충동으로 저지르고 이성으로 수습하는 삶



무리를 해서라도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피곤한 얼굴로 다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걱정을 했다. 친구들에게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며 나는 ‘충동으로 일단 저지르고 이성으로 열심히 수습하면서 산다’라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작은 충동심, 아주 짧은 순간, 아주 특이한 우연으로 내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 방향으로 걸어가며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 수많은 사소한 우연을 마주치고 스치며 내 삶의 물결은 흘러가고 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 놀라운 고요함 속엔 고결함이 있다.



마리아나로부터 새 안경을 맞추며 그레고리우스가 떠올린 아마데우의 책 속 구절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나는 그가 열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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