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까미노의 매력에 대하여,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 책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글 입력 2018.10.07 23: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무작정, 떠나게 된 길


산티아고.jpg
 

9월의 마지막 주말,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무얼 할까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기 전에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언젠가 여유가 흘러넘쳐 무료할 정도의 시간이 나면, 책을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퇴사 기념 회식 자리에서 동료로부터 '퇴사하면 무얼 할 거냐'는 물음에 산티아고를 갈 거라는 말을 뱉고,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산티아고로 떠나게 된 작가를 따라서 나도 무작정, 산티아고로 떠나게 되었다.


산티아고 본문 펼침면4.jpg
 

"운명은 딱히 갈 필요가 없는 길을 떠나도록 만든다."

- 본문 16페이지 중에서


스페인 북부지방부터 프랑스 남서부까지 아우르는 800km의 길. 1,000년여 전 선교를 위해 횡단한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걷기보다 저마다의 이유로, 전 세계 많은 이들을 걷게 하는 길이다. 책을 집어 들기 전부터 제일 궁금했던 건 작가가 산티아고에 오른 이유였다. 이에 대해 작가는 운명론자가 아님을 밝히면서도 그 길에 서게 된 건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무언가 사연이 있으려니, 자신의 까미노(스페인어로 길을 뜻하는 말,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일컫는 말이다.)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가며 산티아고에 오르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까, 하고 자연스레 호기심 촉을 세우며 책장을 넘겼지만, 이내 곧 그만두었다.

뮌헨에서 온 순례자 토마스가 까미노를 걷는 이유에 대해 그저 '자신의 결정이 곧 이유'라는 대답을 했다는 부분에서 심장이 덜컹했다. 3년 전, 휴학을 하기로 결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휴학 결정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잠시 쉼표를 찍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해? 내 마음인데!" 하며 이야기한 나였는데, 다시 또 이유가 필요한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에서 벗어난 나를 다시 돌아보며 이 책을 만난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14.jpg
 


까미노만의 매력


까미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매년 300만 명이 걷는다고 해도 대부분의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중세시대 교회 건물을 개조해 쓸 정도로 편한 것이 하나 없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말하는 까미노만의 매력은 굉장히 다채롭다. 까미노는 직업이나 학력, 재력은 고사하고, 미모나 체력 차이마저 아무 소용 없게 하는 곳으로 그저 모두 똑같은 부랑아 순례자로 만들어 버리고, 주인의 손을 떠난 1만 유로(한화 1,400만 원 정도)가 든 배낭이 돌고 돌아 결국 주인에게 돌아가는 순수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채 걷게 해서 지구라는 행성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까미노의 매력에 빠져 결국 자신도 까미노 병에 걸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까미노 병에 걸리면, 편안함 따위가 시시해져 버린다고 한다. 찢어지듯 아픈 뒤꿈치를 달래가며 이부프로펜(소염진통제)을 복용해야 잠들 수 있는 고통의 연속이지만, 이 고통의 대가로 얻는 하루하루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만 특별하게 외국어로 쓰인 것도 아닌데, 읽으면서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산티아고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생생하게 엿보고 싶었지만, 까미노를 걸은 사람만이 느껴본 고통만큼은 생경한 채로 남아있다. 아마 걸어본 사람만이 아는 게 까미노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싶다.


131.jpg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두 번째 스물다섯 살이 된 후에 '난 뭐가 되고 싶은가'를 다시 고민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작가는 순례길에서 스스로에 대해 묻고 답하며 걸은 시간이 더러 있었다.


동쪽 하늘 끝에서 솟아오른 해는 바람을 타고 와서 나의 등을 비추며 그림자를 길다랗게 늘였다. 그 때 나와 함께 서 있는 나를 만났다. 그날 아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기 시작한 때는.

- 본문 109페이지 중에서


까미노에는 화살표가 지천이다. 어디든 자리만 있으면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 덕분에 까미노에서는 길을 찾기보다 길을 잃기가 더 힘들다. 내가 제대로 걷고 있다는 응원의 표식이기도 했다. 누가 맨 처음 이곳에 화살표를 그렸을까? 최초의 화살표 위에 수많은 사람이 새로운 화살표를 더했다. 나는 노란 화살표가 이끌어 가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길을 표시해둔 사람. 그가 이끌어 주는 길을 걸으며 삶도 마찬가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앞서 걸었던 사람이 남겨둔 조가비와 화살표에 기대어 길을 걷고 삶을 이어간다. 

나의 화살표는 무엇일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화살표를 그린 적이 있었나? 나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고, 그 길을 걷게 될 다른 사람을 위해 나는 어떤 화살표를 그릴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를 나를 까미노로 떠민, 막연했지만 강렬한 충동은 어쩌면 화살표를 찾으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 본문 207페이지 중에서


나는 천천히 걷고 싶었다. 혼자 산길을 걸으며 나를 만났다. 꽁꽁 숨겨뒀던 '나'였다. 잘난 척하는 나, 착한 척하는 나, 인색하고 꽉 막힌 주제에 너그러운 척하는 나, 멋진 척 하는 나, 강한 척 하는 나, 귀신같이 핑계를 찾아 책임을 회피하는 나 그리고 겁 많고 용기 없는 약해빠진 나를 만났다. 그런 내가 싫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였다. 아닌 척 하느라 힘들었떤 거라는 케이트의 고백처럼, 아닌 척 했지만 무겁게 짓누르던 내 안의 돌멩이는 나였다. 뻔뻔하게 다시 외면하지 말자.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같이 가자. 내가 손을 잡지 않는다면 누가 잡아주겠어."

- 본문 217페이지 중에서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인정하기 싫은 모습의 진짜 '나'를 제대로 마주하며 걸은 작가의 기록을 통해 나도 한번 까미노를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떻게 보면 걷는 것만으로도 고될텐데 까미노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는 게 대단하다 싶었고, 한편으로는 세상의 걱정으로부터 멀어진 만큼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는 까미노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16.jpg
 


함께 걷는 길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산티아고에 대한 인상은 '순례길'이라는 이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함께라기 보다는 혼자 걷는 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세상을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까미노는 함께 가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작가는 까미노 가족이라고 부르는 그의 인연들, 곧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독일의 순례자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까미노는 각자의 답을 찾는 여정인 동시에 함께 걸으며 응원하고 위로를 건네고, 아픔과 상처를 나누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온 이들이 까미노에서 겪는 고통을 공유하면서 친해지고, 마음을 터놓고, 함께 위기를 해결하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 또한, 결코 혼자 마무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듣고 보니 그렇다. 애초에 나는 이 길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지금은 내 인생에서 잠시 멈춰 지난 시절을 성찰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앞으로 걸어갈 길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런 건 혼자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피해 혼자 걷고 혼자 보내기 위해 노력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유치해서 웃음이 난다. 다 소용이 없었던 걸 보면 이 사람들을 통해 말 내가 얻어야 할 가르침이 있는 건 아닐까?

- 본문 274페이지 중에서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길


작가는 생장 피에 드 포르부터 땅끝이라는 뜻을 품은 피스테라까지 내딛고, 다시 산티아고에 돌아와 순례자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40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작가가 말하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의 감회를 통해 숱한 상처와 고통을 이겨내고 완주한 이들만이 느끼는 의미 있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순례자로 겪은 고통이 칭찬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하나.
고통을 당하는 자의 아픔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을 이겨낸 것과 같이
고통 당하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순례자.'
우리는 모두 세상에 온 순례자였다.

- 본문 317페이지 중에서


완주한 이들만이 순례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듯, 이 책을 다 읽어야 산티아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0일간의 여정을 생생히 담아 300페이지가 넘지만, 결코 다 읽는데 어려울 것이 없다. 책과 거리가 있던 나도 까미노를 걷는 마음으로 읽으니 어느새 까미노의 시작과 끝, 0.00km에 다다랐다. 간만에 책장을 넘기던 손에 남아있는 종이가 줄어들수록 아쉬움과 설렘이 가득했던 책이었다. 작가가 걸어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왠지 모를 용기가 생긴 이 가을에, 나는 이 책을 펴내며 두 번째 까미노 가방을 꾸리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산티아고 표지-평면.jpg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 -

지은이 : 박재희
출판사 : 디스커버리미디어
분야 : 여행 에세이
쪽수 : 320쪽
발행일 : 2018년 9월 5일
ISBN : 979-11-88829-05-7 (03980)






업데이트_명함태그.jpg
 
 


[이소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8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