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실의 시대> : 좋아함(like)과 사랑함(love), 그 사이에서 [도서평론]

글 입력 2018.10.0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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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로인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 상실의 시대, 413p 中



좋아한다는 말(like)과 사랑한다는 말(love)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랑은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언제나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나이를 먹어가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만큼 적지 않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이 둘의 차이는 보다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 지극히도 당연한 사실은 고요한 숲길을 걷듯이 찾아와 말없이 기억의 일부로 남는다. 빗대어 말하자면, 수많은 점과 점들이 찍힌 순간의 흔적들이 무심코 뒤돌아보았을 때 삶이라는 하나의 선으로 나타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첫사랑, 짝사랑, 그리고 풋사랑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상실의 시대'를 거친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ノルウェーの森)』(문학사상)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한 여성과의 하룻밤을 노래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의 노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잉 747기 좌석에 앉은 서른아홉 살 와타나베는 이 노래를 듣고는 젊은 시절에 있었던 나오코와의 첫사랑을 추억한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오코는 와타나베의 유일한 친구인 기즈키의 소꿉친구이자 애인이었고, 셋은 기즈키를 중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기즈키의 자살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통해 큰 변화를 겪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태연히 당구를 치고는 목숨을 끊은 그의 행동은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두 사람의 삶이라는 태엽을 멈추어 버린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의 한 소절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축을 잃어버린 둘의 시간은 어떻게든 열일곱 살이라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알아버린 어두운 '상실' 속을 표류한 채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는 고등학교라는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면서도, 두 사람은 우연히 도쿄에서 만나 서로에게 의지하려 애를 쓴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 과거를 잊으려고 애쓰면서도, 결국 과거를 매개로 관계를 지속해나가려는 두 사람의 태도는 앞으로 다가오게 될 결말을 나직이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오히려 서로를 만나고 교감할수록 기억을 되새겨내고,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던 '기즈키'를 추억해낸다. 금기시하던 그의 존재에 대해 둘은 자연스레 이야기하고, 둘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에는 어느샌가 '기즈키'가 녹아내린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지만, 끝끝내 나오코는 자살을 통해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나오코에게 '죽음'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좋지 않은 기억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던 나오코가 홀연히 잠에서 깨어나는 듯 말없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왜일까? 어쩌면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아닐까? 소설 전체에 걸쳐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은 풋풋하고 소박한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진심으로 서로에 대해 솔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좋아함(like)이라는 감정을 상대방, 혹은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모습과는 달리, 사랑함(love)라는 감정을 거의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주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실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과 사람을 파악해나갔다. 와타나베도, 나오코도 나름의 이유와 논리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선택을 내렸지만, '상실'에 의해 파괴된 주관적인 행동들은 결국 깨어나보아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백일몽과 같은 셈이었다.


실제로 둘 사이의 관계는 서로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사랑해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의 열렬하고 정열적인 관계를 갈구하면서도, 나오코와의 '책임'을 이유로 들먹이며 그녀를 포기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오코 역시 와타나베 자체를 바라보며 사랑하기 보다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죽었던 '가즈키'를 회상하고 상처받아 공허한 마음을 메우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두 사람이 기즈키를 매개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보다 전심전력으로 서로만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젊은 시절은 끊임없는 '상실'과 '혼돈'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은 이를 분간해내기에는 너무나도 어렸고, 막연한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섹스를 계속했으며, 그저 몸과 몸이 엉겨붙는 느낌으로라도 허무라는 공백을 어떻게든 메우고자 노력했을 뿐이었다. 젊음의 시기가 끝나가던 서른아홉살 와타나베가 흐릿해지는 과거를 되새겨보며 너무나도 서러운 슬픔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내가 아직 젊고 그 기억이 훨씬 선명했을 때, 나는 나오코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단 한줄도 쓸 수 없었다. 맨 처음 한 줄만 나와준다면 그다음은 무엇이든 술술 써지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한 줄이 아무리 애써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지나치게 선명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극명한 지도가, 그 극명함이 지나쳐 때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됐다. 결국 따지고 보면―하고 나는 생각한다―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오코에 관한 기억이 내 안에서 희미해져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녀가 나를 향해 "나를 잊지 말아줘."라고 부탁했는지, 그 이유도 지금의 나로선 알 수 있다. 물론 나오코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그녀에 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가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바로 나에게 간절히 호소했던 것이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말아줘.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줘."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참을 수 없이 슬퍼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상실의 시대, 24p 中



나오코는 희미해져가는 와타나베의 기억 속에 그녀가 남아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이십 년 후에야 그녀의 부탁이 그를 좋아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은 끝이 어떻건 간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추억에 한 켠으로 머물게 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세월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기억으로 덧입혀지므로. 그가 나오코의 감촉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녀를 생각하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의 터울을 보내며, 그제야 나오코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들어서 아는 것과, 경험을 통해 겪어서 아는 것은 애초에 깊이 자체가 다른 것처럼. 하지만 그 서글픈 진실을 알았을 때, 그의 젊음은 끝나가고 있었고, 나오코는 죽은지 오래인 채 그의 기억에서 더욱 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말로 표현할 없는 회한과 함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 속에 녹아 있었던 '상실'을 보다듬어주는 게 전부였다.


어쩌면 단어로 내려적으면 지극히도 쉽게 쓰이는 이 사실이, 마치 어느 가을 날 밤의 꿈처럼 스쳐지나가는 황홀한 슬픔으로 소설 내내 남기에  『상실의 시대(ノルウェーの森)』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책으로 자리매김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기쁨으로, 슬픔으로, 혹은 그리움으로. 여러 이름으로 각자의 삶 속에서 표현되는 것들이 '상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로 묶여 저마다의 존재 가치를 아득히 상기시켜주니까.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난 혼자임을 알았어요.)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난 그래서 불을 지폈지요, 좋지 않나요?)

Norwegian wood

(노르웨이의 숲에서.)

- The Beatles, Norwegian wood 中 -





[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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