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완벽한 날 1. 낯선

온통 물이야
글 입력 2018.10.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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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 Prologue



*



온통 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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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ngle}

-여름빛 물-

완벽한 날 1. 낯선




[7월 3일]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쓰기에는 어제부터 모르겠는 기분으로 여행에 올랐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했다. 내가 가는 곳은 계속 구름이 낀다고 한다.

음, 바다는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방에서만 굴러다니다가 어제 겨우 나갔다 왔을 때도 우중충한 하늘이어서 오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상상하지도 못한 구름의 환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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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구름이 좋은 이유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잊고 있던 낭만 어딘가로 훌쩍 데려다주기 때문일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구름이 다 모여있는 듯한 그 하늘을.


홀린 듯이 구름을 보다가도 놓치면 안 된다며 평소 찍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 사진을 마구 찍었다. 찍다 보니 무슨 하루 종일 집 안에만 박혀있다가 몇 년 만에 구름을 처음 보는 사람 같아서 이상하기도 했다.


"이상한 건가"


근데 이렇게 많은 구름을 본 게

정말 오랜만이긴 했고,

구름을 좋아하고 나서

이렇게 구름을 보는 것도 처음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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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파인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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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가듯 찍은 구름 사진들을 다시 보니 그리고 싶은 것들이 계속 떠오른다. 여행의 시작 중의 시작인데도 너무 많은 걸 얻은 기분이다. 구름 전시회를 열고 싶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이미 내 사진첩에서는 뭉게뭉게거리는 전시회가 파란색이 되었다.


"이상한 건가"


내 세계 어딘가에서 꿈꾸던 이상적인 구름을 만나는 듯했다. 그 세계가 잠시 실현된 것 같았고, 그냥 너무 좋았다. 꿈꾸던 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다만 우연이라는 기적이 필요했었을 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면 이상한 건가"



음음음

어린 생각만 시선 위에서 굴리는 것도 얼마 만인지

갑자기 튀어나오는 낯선 내가 좋았다.



"나의 이상이 이상한 거면 이상한 건가"



*



참, 낯선 날씨



하루 동안 몇 가지 날씨를 경험할 수 있을까.

비가 온다길래 별 기대 없이 가고 있는 내게 터널을 지날 때마다 바뀌는 날씨는, 계속 변하는 만큼이나 날씨에 대한 내 기대도 이리저리 감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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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할 때는 먹구름이더니, 터널을 지나니까 비가 그치고, 다시 터널을 지나니까 구름이 잔뜩 끼고, 다른 터널을 지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또다시 다른 터널을 지나니까 비가 멎더니, 또 다른 것을 지나니까 맑고 새파란 하늘이 나를 반기는 것이었다. 날이 개어서 햇빛이 쏟아지다가도 다시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이상한. 괜히 주목받고 싶은 이야기꾼의 잔뜩 부풀어진 날씨 이야기 같지만 이게 정말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현실이었나?"


비 구름 해 구름 비 해 비 구름


그렇게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날씨가 바뀌어서 내가 도착하는 곳의 날씨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하늘과의 날씨 내기였다. 그곳은 어떤 날씨 일지. 그렇게 버스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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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착한 그곳은 맑음이었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한다. 바다 가야지.


좋다.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든다. 너무 좋다. 

그냥 좋다.

그뿐이었다.

그뿐이어서 좋았다.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대충 내려놓고 바다 갈 준비를 한다. 뭘 챙길까 하다가 보이는 대로 일단 집어 들고 나간다. 밤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혹시 모르니까 얼른 다녀오고 싶었다.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웠고, 항구를 따라 걸었다.

전혀 덥지 않았다. 심심하지 않은 바닷바람이 좋았다.

그냥 바다로 걸어가는 그 시간이 좋았다.

오로지 바다를 보겠다는 마음만 있는 지금이 좋았다.


가려고 했던 곳을 찾아가던 중에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을 만났다. 그냥 그곳을 가기로 한다. 나는 바다를 보러 왔지 그 이상의 목표는 없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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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예쁘게 나뉘어있었다. 한쪽은 하얀 구름 한쪽은 파란 하늘 그 아래는 짙은 바다가 받쳐주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쉴 새 없이 불었다. 좋았다. 내가 숨쉬기보다는 입과 코에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바람이 내 숨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런 산소호흡기라면 너무 반가웠다.


차분한 날씨는 아니어서 그런지 파도가 하늘과 다르게 세차게 암석에 부서지고 있었다. 작년에 보았던 바다가 떠올랐고 그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렸던 내가 떠올랐다. 너는 부서져도 아름답구나, 라며 파도를 부러워했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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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에게(re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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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루기로 한다. 새소년의 여름깃 앨범을 바다를 보면서 듣고 싶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사이에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어올 수 있게 틈을 열어 놓는다. 그렇게 겹쳐지는 소리를 이루어내면 나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괜히 눈도 감아본다. 느껴보고만 싶었다. 그러니까 '느끼는 것만' 해보고 싶었다.


멍하니 바다를 보다 보니,

왜 떠나지 않았을까.

무작정 떠나온 내게 고맙다고 말한다.

왜 진작 떠나지 않았지, 뭐가 걱정이었던 거지.

이렇게 좋은데.


'파도'를 듣는다. 이럴 수가 나만의 세계다 이곳은, 이라고 무작정 외쳐버린다.

나의 앞은 바다 위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인데, 나의 뒤의 산에서는 무거운 먹구름이 쏟아져 오고 있었다. 곧 비가 온다는 게 맞나보다. 서로 다른 모습의 하늘 사이에서 그저 노래를 들었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 같은 그 기분에 더 머물기로 한다. 아무 노력 필요 없었다. 느끼기만 하면 됐다. 바다의 습습함과 먹구름의 눅눅함이 뒤섞인 느낌마저도 선명히 감각할 때까지.


그날 지친 상태에 쫓기다 아무 날짜 골라버리고 간 여행의 첫날,

구름과 바다가 쉴 새 없이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있었다.

낯설었다, 모든 것이 나를 위로해주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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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내가 바다에 와서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다와 하늘의 수평선을 살펴본다. 천천히, 천천히, 내가 느낀 그때의 것이 맞았을까 되짚어본다. 그때보다는 선명해 보이지만 여전히 모호하구나. 그래 그렇구나. 더 확신이 생긴다. 진짜 나는 하늘일까, 바다일까. 하늘일까. 오늘은 하늘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석과 생명, 간간이 떠다니는 쓰레기, 잠시 들렀다 가는 갈매기, 너무 많은 것을 포옹하고 있는 바다를 보니 그 뒤에 숨어있는 하늘이 진짜 나인 것 같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혹은 내 눈에 보이는 모호한 경계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나'라는 존재의 결론이 계속 바뀔 거라면, 나는 그 모든 결론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두 안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귀 기울이고 싶다. 그렇게.


바닷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몸이 끈적끈적해진다. 바다의 호흡이 내게 가득 찬 것만 같다. 내가 바다가 된 것 같다. 그럼 되었다. 돌아가기로 한다. 극과 극의 하늘 사이 햇빛은 여전히 밝았다. 딱, 바닷바람에 춥지 말라고 안아주는 정도로.


공기를 잔뜩 마셨으니 이제 목마르다.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낸다는 게 가능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 맥주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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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끈적끈적, 바닷바람에 심심하지 않도록 간간하게 간이 된 인간이 되어 맥주를 마시러 발걸음을 옮겼다. 끈적끈적. 비밀이(아니게 되었)지만 유일하게 미리 알아본 곳이 있었다. 조사 결과(?) 모든 조건이 완벽했던. 별거 하지 않았다. 맥주만 마실 뿐이었다. 사실 책도 읽고 맛있는 오믈렛도 먹고 내게 계속 다가오는 강아지를 쓰다듬어주었다. 음, 별거 하지 않았다. 완벽했다. 특별한 소음 없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조용히 흘러가는 이 저녁이.

내일 또 와야지. 유일한 계획이 된 진심을 무계획의 백지에 찍어버린다.


방에 돌아오고 나서야 몸이 무겁다는 걸 느낀다. 아슬아슬 눈이 감기는 느림 속에서 겨우 기억을 꺼내는데, 구름, 눅눅한 공기, 바닷바람, 기분 좋은 알코올. 아, 아마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버렸나 보다.


음.

좋은 것만 담아오는 무게는 좋았다.


음.

정말로


시계를 보니 밤 8시가 넘었다. 괜히 오늘 같은 날을 그냥 보내기 싫어서 씻고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고 나서의 계획도 내일의 계획도 없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뿐이다. 왜냐하면 아무 계획 없던 오늘이 완벽한 날이었기 때문에. 낯선 것들뿐이었던 오늘이.



그래, 완벽한 날이었어.



*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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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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