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_까미노, 그 이상의 길

글 입력 2018.10.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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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 별다른 이유는 없는데,

그냥 그러기로 결정한거야. 걸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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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둔 저자는 무작정 산티아고로 향한다. “왜?” “뭐하려고?”라고 묻는 지인들에게 ‘그럴싸한’이유를 찾지 못해서 어눌하게 둘러댄다.


여행 중, 까미노를 다녀온 사람을 만났다. 나보다 2살 많았던 그 언니에게 왜 까미노로 떠났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땠는지 묻기도 전에 그저 멋져보였다. 만일,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를 읽은 지금 그 언니를 다시 만난다면 감탄을 하기 전에, 왜 떠나게 되었는지를 먼저 물었을 것이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까미노는 은연중에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산티아고 순례길. 비록 순례자는 아니어도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마치 뭔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솔직히, 그냥. 멋있으니까. 하지만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를 읽으며 단순히 멋지게만 생각했던 나는 그 이상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는 몇가지 마법이 일어난다. 첫 번째 마법은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난다는 것이고, 두 번째 까미노의 마법은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가 걸었던 40일간의 순례길. 모든 게 그렇듯, 매번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걸으면서 이상한(?)사람들도 만나고, 죽을 듯이 아프기도 하고 기대와 다른 까미노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인연은 정말 묘하고 신기했다.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난다는 것.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 사실 이건 까미노만의 마법은 아닐 것이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만날 사람은 만난다”라는 말을 느낀적이 많다. 스페인 여행 중이었다. 세비야에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누군가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난 이미 밥을 먹은 상태였고)상황이 신기해서,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뒤, 론다에서 또 그분과 마주쳤다. 혼자 저녁을 먹기 싫었던 나는, 인터넷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는데, 마침 동행이 세비야에서 만났던 그 사람인 것이었다. 우리는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봤고, 인연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지칠 때, 엊그제 만났던 좋은 인연을 오늘 우연히 다시 만난 다는 것. 생각만 해도 웃음이 지어진다. 좋은 인연은 꼭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까미노의 뜻이 아닐까?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마나 자주 내 맘대로 해석하는가? 필요하지 않는 호의는 폭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살아오며 자주 목격했었다.”



마엘은 12유로가 아까워서 저녁을 먹지 않는다. 젊은 여행자에게는 너무 큰 지출이었을까. 저자는 어린 학생이 밥을 못 먹는 게 신경 쓰여서, 우리(어른)가 1유로 씩 더해주자고 제안 한다. 하지만 한 여행자는, 마엘은 어린아이가 아니라며, 본인이 필요하다면 먼저 도움을 요청할거라고 저자의 말을 거절한다. 밥을 먹는 동안 저자는 계속 불편하다. 어린아이가 본인 때문에 밥을 못 먹는 것이라 생각하며.


다음날, 식당에서 마엘을 다시 만난다. 음식을 사 주겠다는 요구에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마엘. 저자는 나갈 때 마엘에게 음식을 미리 계산 해 뒀으니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말 한다. 그러자 마엘은 정색한다. 사실, 그에게 산티아고 순례는 온전히 순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굶주리고 고생했던 순례자. 그가 원한 순례자의 모습이 처음부터 확실했던 것이다.



“우리는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이 선하다고 배웠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필요를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를 주저하는 문화. 그 대신 어려움을 미리 알아채고 호의를 베푸는 문화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았다.”



마엘의 말에 놀란 저자는, 호의가 폭력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도와줘”라는 말보다 “도와줄까?”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 그렇다고 무작정 베푸는 성격은 아니지만, 도움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어색하지 않다. 저자가 1유로씩 보태주자는 제안을 했을 때, 그곳이 만약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이 나였다면, “마엘은 어린아이가 아니야. 본인이 필요하면 요구 하겠지.”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전혀. 오히려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 쳤을 것이다. 고작 1유로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도움으로 인해 한 여행자가 든든한 한 끼를 먹는다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지난 시간, 내가 베풀었다고 생각했던 호의들이 정말 그 사람을 위한 것일까, 내 편한 마음을 위한 것일까.



“훨씬 제한된 사람에게만, 나를 포함시키되 가능하면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야고보의 길이 허락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슬프게 울기도 하고 누군가를 향해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혼자 걸었으며, 함께 걸었다. 그렇게 참된 ‘순례자’처럼 계속 길을 걷다가, 관광지로 들어서게 된다. 그곳은 다름 아닌, 까미노의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이었다. 관광 상품을 통해 순례길을 걷고, 증서를 받는 많은 사람들. 저자를 비롯한 순례자 모두가 불편한 마음이다. 갑자기 순례길이 시장통처럼 북적거리고 꾀죄죄한 본인의 모습과는 다르게, ‘물병을 아령처럼 들고 다니는’ 심지어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고생한 저자에게 이런 사람들은 당연 꼴불견일 것이다. 순례자 코스프레를 하는 관광객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던 중, 지나갔던 차가 멈춰 섰다. 아들과 딸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리고,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는 것이다. 어머니처럼 보이는 사람이 휠체어에탄다.



“카미노는 이렇게 내가 비난 하던 것, 우습게 여기던 일, 나와 다르다고 쌓아올렸던 벽을 사정없이 무너뜨렸다. 까미노는 나를 항복시켰다.”



예전에 매체에서 봤던 게 떠오른다. 학생이 노약자석에 앉아있었는데, 누군가 ‘노약자석’이라며 비키라고 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은 다리가 불편했던 것이었다.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하며 잣대를 들이밀었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마음 한편에는 비난은 안 된다고 소리치지만, 내가 쌓아온 기준이 무너지는 걸 봤을 때, 그 순간은 참을 수 없었다. 저자는 화장을 한,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을 비웃었다. 그렇게 우연히 지나, 참된 ‘순례자’의 모습을 한 사람을 본 저자는 반가워서 옆에 앉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장에서 출발한 저자를 비웃는(?)상대방. 그 사람은 저자보다 더 힘들고 고된 여정을 지나온 것이었다. 그러니, 쉬운 길(?)을 선택한 저자의 길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을 밖에. "까미노는 나를 항복시켰다."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를 읽는 동안 나도 저자와 함께 걸었다. 어렴풋이 그가 느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저자의 깨달음을 통해 나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궁금해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까미노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은걸 느낄 수 있는 책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는 다짐과 확신을 갖게 된다면, 이 책을 다시 펼쳐보지 않을까.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
 
출판사: 디스커버리미디어


지은이: 박재희


분야: 여행 에세이


면수: 320쪽


가격: 16,000원


출간일: 2018년 9월 5일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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