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 재벌 흑역사 - 롯데 [문화 전반]

한일 사이를 오가는 박쥐 같은 기업, 갑질의 달인
글 입력 2018.10.1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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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동빈.jpg
롯데 그룹 회장 - 신동빈



롯데의 창업자 신격호

롯데의 창업자 신격호는 자기 입으로 “롯데는 한국과 일본 반반에 기반을 둔 기업이다”라고 대놓고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반반’이라는 태생적 운명을 그는 거부하지 않은 것이다. 신격호는 1922년 10월 4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의 재산은 ‘보통’정도 였으나 큰아버지 신진걸이 부동산 매매로 큰돈을 벌어 둔기마을에서 유일하게 100마지기를 소유한 제1부자였고 그가 농업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큰아버지의 도움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학창시절 당시 성적은 좋지 않았고 18세가 되던 해 이웃마을 부농의 딸 노순화와 결혼했다. 노순화에 대한 기록은 롯데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부부의 정은 돈독하지 않았는지 신격호는 결혼한 지 1년뒤인 1941년 가족을 버리고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부인 노순화는 가출한 남편을 기다리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떠난다. 그녀는 남편을 찾기 위해 밀항선을 타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고 부산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바라보며 많이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으로 넘어간 신격호는 시게미츠 타케오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와세다 공업고등학교 화학과로 입학한다. 이 시기 그는 평생의 은인을 만나는데 당시 알바생으로 그를 고용한 사업가 하나미스가 신격호에게 5만엔을 빌려주며 사업을 권했다. 신격호는 이 돈으로 커팅오일과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 사업을 시작했으나 공장이 미군의 폭격을 두 차례나 맞아 첫 사업은 처참하게 끝나버린다. 이후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드는 공장을 차렸고 이후 껌 사업을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그는 자신의 사업체를 주식회사로 전환하였고 작가를 꿈꿨던 영향으로 회사 이름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와 롯데를 설립한다.

재일동포계 양대 거부에는 신격호와 서갑호가 있었는데 서갑호의 몰락을 보며 신격호는 그의 사업 스타일을 아주 보수적으로 유지했고 그 결과로 외환위기 때도 롯데는 자금난을 겪지 않았다. 또한 롯데그룹은 주식을 상장하는데도 매우 인색하여 비상장기업은 어떤 구조를 가진 기업인지 모르게 하였고 상장기업 또한 롯데 계열사의 지분율을 50%를 넘기게 하였다. 신격호는 주주회사라는 개념을, 주주가 왜 중요한지를 이해못하는 정도로 봉건적인 경영스타일을 고수했다.


신격호와 박정희

신격호는 1959년 용산구 갈월동에 껌 공장을 차리고 주식회사 롯데라는 회사명으로 한국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 롯데의 주력은 일본이었고 한국 롯데는 공장을 돌리는 정도에 불과했다. 박정희가 1965년 한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국에서는 재일동포의 자본을 유치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롯데는 195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고 한국 진출을 본격화한다. 껌사업의 롯데는 1970년 서울시 부정식품 특별단속반에 의해 껌에서 쇳가루가 적발되어 위기에 봉착한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신격호를 청와대로 불러 제조 정지 명령을 조치해주며 호텔롯데를 지어 경영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날이 롯데재벌 탄생이 결정된 날이다”. 박정희가 원한 일본자본은 신격호에게 위기가 아니라 상상도 못한 특혜가 되었고 롯데의 자금 대부분은 ‘외국 자본’으로 인정받아 각종 세금을 감면받았다. 서울 중심지에 있던 반도호텔을 인수하고 롯데백화점을 지은 롯데는 이때부터 박정희 군사정부의 후원아래 권력자와 유착이 사업 성공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롯데가 낳은 최고의 스타는 이대호가 아니라 신동학 – 재벌 폭행의 역사

롯데의 경영권 싸움과 콩가루 가족 이야기는 재벌(가족이 소유한 대규모 기업집단)이 왜 한국에서 비롯된 세계 공용어임을 알려준다. 기업은 ‘주주의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받아 들인다 하더라도 경영권은 주주들의 이익을 높일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기업은 경영자, 노동자, 주주, 지역주민의 사회적 합의체로 봐야하지만 한국 재벌은 기업을 자기 소유에 머무르게만 하기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와 같은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신격호의 조카 신동학이 보여주는 기행은 실로 놀랍다. 1994년 당시 26세에 그는 처음으로 언론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 때의 한국 경제는 3저 호황을 바탕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오렌지족’이라 불리는 부유층 자제들이 강남구 압구정동에 등장했다. 롯데가문 2세로 영국 리치먼드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와 수입 오렌지 행세를 했고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의 손자이자 제일화재해상보험 이동훈의 아들 이석환과 어울렸다. 신동학과 이석훈은 1월 16일 청담동 나이트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 1시 45분경 포장마차로 향하던 중 프라이드가 자신들의 그렌져 앞에 끼어들었다고 프라이드 운전자를 폭행했다. 벽돌과 화분으로 사람들 패서 피해자들은 각가 4주와 8주의 중상을 입었고 한 명은 뇌출혈로 수술까지 받았다. 신동학은 현장에서 도망친 뒤 영국으로 몰래 출국하려다 김포공항에서 경찰에 붙잡혔고 1993년에도 폭력을 휘둘러 입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더욱 황당한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상급 기관인 서울 경찰청에 보고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재벌 2세가 언제나 그랬듯 집행유예로 마무리 되어 풀려났다.

신동학은 1996년 코카인과 대마초 복용 혐의로 두 번째로 구속되었고 2000년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46%인 상태로 경찰관을 차 문짝에 매달고 질주해 전치 12주의 증상을 입혔다. 신동학은 2005년 태국 방콕에서 추락사로 삶을 마무리한다. 재벌의 폭행은 1979년 한국시티즌공업 이사 하명준의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담뱃불 지짐, 2007년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의 조폭 동원 보복 폭력, 김승연의 3남 김동선의 변호사 폭행, 경찰차 파손 그리고 영화 <베테랑>에서 알 수 있는 SK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의 노동자 폭행 등 너무나도 많다.


셋째 부인을 위한 신격호의 배임과 횡령

신격호의 셋 쨰 부인은 서미경으로 신격호와 37살이나 차이가 난다. 미스롯데 출신으로 1970년대에는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누볐고 서승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신격호의 딸을 출산하고 공식적으로 ‘셋째 부인’이 되었을 때는 29세 였으나 신격호의 장녀는 당시 46세였다. 그러나 서미경은 신영자와의 첫대면에서 “내가 엄마 격이니까 반말 해도 되지?”라며 기선을 제압함을 보여주었다. 신격호는 서미경이 소유한 유원실업에 매점 운영권을 헐값에 넘겼고 이로인해 롯데 그룹이 입은 손해는 774억원이었다. 또한 이들의 딸 신유미는 32세에 롯데호텔 고문직을 맡았고 아무런 노동없이 받아간 월급이 117억원이었다. 2017년 12월 열린 롯데 총수 일가 배임 및 횡령 재판에서 재판부는 신격호의 행태를 모두 유죄로 판결했으나 이전에 열린 2015 9월 국정감사에서 투명경영을 하겠다며 아비와 형을 내치고 그룹을 장악한 차남 신동빈은 모르쇠로 일관하였고 이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롯데 갑질스

2016년 12월 21일 국회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열며 롯데가 관세청의 신규면세점 사업자로 등록된 것에 대해 반발했다. 그는 “관세청은 반칙과 특권의 대명사격인 롯데그룹을 기어이 면세점 신규사업자로 선정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또다시 날려버렸다”고 규탄했다. 그는 이사건을 최순실 국정농당과 연결해 해석했고 당시 대통령 탄핵안에서 제3자 뇌물공여죄에 주요 내용으로 특검에서 면세점 개선에 대해 조사중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이 나와있었고 그는 “비리 종합백화점인 롯데 그룹을 엄청난 이권이 걸려있는 강남지역 면세사업자로 선정한 관세청 심사결과를 강력히 규탄한다. 대대적 서명운동 전개를 비롯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가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롯데는 1998년 한겨레신문 경제면에서 롯데, 공정위 시정명령 독차지라는 기사를 실었고 2015년 한국일보에서 ‘롯데그룹, 불공정 행위 1위 불명예’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20년이 지나도 롯데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롯데에는 뒷돈을 챙겨주지 않으면 납품할 수 없다는 말은 비밀이 아니었고 2013년에는 아예 ‘롯데재벌 피해자 모임’이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이는 단지 몇몇 임원이나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 수준의 갑질이 아니었다. 검찰이 적발한 비리의 수장은 롯데홈쇼핑을 이끌던 대표이사 신헌이었고 그는 방송지원본부장에게 비자금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방송지원본부장은 고객지원본부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고객지원본부장은 납품업체로부터 6억 5000만원을 뜯어 이중 1억 6000만원은 자기가 먹고 나머지를 방송지원본부장에게 넘겼다. 방송지원본부장은 2억 6500만원은 자기가 먹고 또 나머지를 신헌에게 보냈다. 이후 신헌이 2014년 롯데백화점 대표이사로 영전하며 롯데가 얼마나 무능력한 기업임을 보여주었고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또다시 롯데 홈쇼핑의 갑질을 적발해 징계를 내렸다. 이와 더불어 하이마트 대표 이동우 또한 쓰레기 같은 갑질을 보여주었다. 나이가 든 직원의 백발을 문제 삼으며 징계를 내리겠다 협박하고 복장 불량으로 보직 대기를 남발하며 자신이 마셔야 할 특정 탄산수가 없어지면 매장 CCTV 전체를 돌려보았다. 더군다나 자기가 지점을 방문할 때면 여성노동자로 하여금 사진 찍자고 달려들게 만들라고 했다. 이동우는 이후 사표를 냈으나 이사진을 그것을 반려하였고 롯데는 지배 구조를 공개하고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뼈를 깎는 개혁을 한다 했으나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이완배 저자는 말한다.


롯데는 한국 기업인가? 일본 기업인가? 박쥐인가?

글로벌 시대에 초대형 기업들은 이미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롯데는 그룹 매출 중 90%가 한국에서 발생하고 10%는 일본에서 발생한다. 일본의 금리가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자금의 대부분을 일본해서 조달한 롯데는 다국적 기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롯데가 한국에서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이용했고 이에 반해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인정되어 한국에서 각종 혜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롯데는 2015, 2016 자신의 건물에 3.1절을 맞아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쳤다. 그러나 신격호의 아들 신동주와 신동빈은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한국 재벌들 중 병영을 기피한 사람은 대다수이나 이들은 병역의무를 이행할 나이에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40대가 된 이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더 이상 군대에 갈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고나서 말이다.

삼성 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이나 호텔 신라,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SK그룹 계열사인 SK텔링크,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토탈 등이 모두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롯데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자본의 이동 덕에 이루어진 일이지 롯데처럼 처음부터 일본의 자금으로 세워진 회사고 일본 돈으로 한국에 진출한 회사다. 그리고 10대 그룹 계열사 중 일곱 곳 중 한 곳이 외국인 투자기업에 비해 롯데는 세 곳중 한 곳이 외국인 투자기업이다. 롯데는 그냥 솔직하게 “우리는 일본에서 시작했고 한국과 일본 양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이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3.1절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것이 가증스러운 것이다. 신동주와 신동빈이 경영권 싸움으로 신동주가 일본 롯데에 국민정서를 건드리고 신동빈이 한국 롯데에 국민정서를 건드리는 것처럼 이들이 먼저 필요에 따라 박쥐처럼 행세를 한 것이다.


그 외

신격호가 서미경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706억원의 증여세를 포탈했을 때도 사법부는 “증여된 주식이 일본 주식이고 서미경이 실질적으로 국내에 거주하지 않아 한국 조세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면죄부를 주었다. 롯데가 이명박과의 유착이 너무 강했기에 박근혜 정부 당시 고초를 겪었으나 신동빈은 박근혜에게 70억원을 건네며 정경유착을 이어나갔다. 박정희가 롯데에게 명동에 쇼핑센터 허가를 내주고 신격호가 전두환에게 비자금 50억원 건네며 송파의 땅을 롯데가 절반 가격으로 차지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은 제 2롯데월드의 건축 승인을 신동빈에게 내준다. 박근혜 정권이 친 이명박 기업을 처단하면서 롯데, CJ, 포스코, 효성을 털었지만 이는 롯데가 투덜거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보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신동빈이 다시 집행유예라는 판결을 받았고 검찰은 이에 대해 항소를 진행중이다. 신격호의 시대가 저물고 신동빈의 뉴 롯데 시기가 도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갑질의 상징 롯데가 뉴 롯데로 탈바꿈하려면 이들의 패악질을 뜯어고칠 시민사회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김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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