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맨 마지막 세 번 째 줄, '그 개' [공연]

글 입력 2018.10.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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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내용을 말을 해줄 순 없지만 참 이상하게 마음의 오래도록 남는 대사가 있었다. "글은 맨 마지막, 세 번째 줄이 항상 중요하다." 이 공연은 글로 표현한다면. 이 공연의 맨 마지막에서 세 번째 줄은 과연 무슨 말로 그 장면을 설명해줬을까. 그래서 한 번 이 글도 최선을 다해 마지막 세 번째 줄에 하고 싶었던 말을 꾹꾹 담아보며 이야기를 써내려갈까 한다. '그 개'라는 공연은 기존의 다른 공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개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전혀 평범하지 않은 듯, 주위를 돌아보면 한 번 쯤은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의 관련된 이야기. '그 개'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3.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4. 그 개_보쓰와 장강.jpg
 

이 공연에서는 두 주인과 두 마리의 개가 나온다. 틱장애를 겪고있는 해일과 희고 조그만 강아지 무스탕, 그리고 비록 갑질을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외면받는 외로운 회장 장강과 그의 옆을 지키는 군견이 되지 못한 보스. 이들은 참 자신의 강아지와 주인을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외면할 뻔하거나 외면하게 되는 일을 맞이하게 된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공연을 보고나서 계속 그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누가 나쁜 것일까? 왜? 수많은 물음들은 계속해서 갑자기 욕을 내뱉던 해일처럼 입에서 질문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 공연은 맑아보이던 포스터와는 다른 감을 보여준다. 엔딩의 충격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이들은 진실된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시련이 와도 서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이 들기에 더 가슴이 아팠던 게 사실이다.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다. 개던 사람이던 그건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모든 사람과 동물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며 기뻐하고 때론 서운해한다. 공연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디서도 볼 수 있을 법하게, 그들이 잘 살던 못 살던 간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에 대해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이해하면 안되는 일에도 이해가 갔다. 나였어도 그랬을까? 그랬을 것이다. 서로가 아니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은 없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더 먹먹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넌 내가 지켜줄게." 그 말이 그토록 슬프고, 무섭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2. 그 개_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별이의 생일파티).jpg
 

개인적으로 이 공연이 더욱 더 소름돋게 느껴졌던 이유는 너무나도 인간의 끝과 끝을 극명하게 잘 표현해주었다는 점에서였다. 극에서는 두 개와 주인들의 이야기말고도 행복한 가정의 모습 또한 나온다.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도 나눔을 알고 혁명을 알던 젊은 부부와 아기. 자신들의 아기의 행복한 나날을 위해 부부는 오늘도 고군분투했다. 이렇게 행동적인 사람들이 실제로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부부를 바라봤다. 저렇게 높은 벽 앞에서도 서로의 얼굴만 보면, 아이의 얼굴만 보며 웃음꽃을 피던 그 가족을 보며 나까지 행복함을 느꼈다. '아, 저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같이 웃으면 힘을 낼 수 있구나, 서로 뭐든 함께 이겨나갈 수 있겠구나.' 그런 희망을 안겨준 부부였다. 실로 대단한 부부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현재 비혼을 생각 중이지만 저런 부부의 삶이라면 그래도 나쁘지 않겠구나, 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필자가 본 영화와 소설은 대부분 정말 초인적인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주인공이 다시 힘을 내일어설 수 있었다. 초인적인 긍정의 힘은 그 전염에 힘이 매우 크니까. 하지만 이 초인적인 긍정의 힘이 죽는다면 주인공은? 무슨 힘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긍정의 힘은 전염성이 꽤 강하다. 하지만, 부정은 긍정의 힘보다 그 전염성이 더욱 더 강하다. 악은 악을 더해 더 큰 악으로 성장한다. 매번 웃는 얼굴을 하던 친구가 한 번 화를 내면 더 무섭듯, 항상 긍정의 말을 쏟던 사람이 극적인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면 그 전염은 더욱 더 강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주인공들보다 이 부부로 인해 느끼는 감정의 변화가 심하게 요동쳤던 것 같다. 너무나도 그 정도가 심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토록 존경심까지 들었던 사람의 절망을 보는 것이란 너무나도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야지.' 저런 사람이란 대체 무엇일까, 꼭 아까까지만 해도 영화 속에 히어로들보다 더 멋있어 보였는데 그들도 알고보니 나랑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더 아프고 힘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나니 더욱 더 느껴지는 공허함이 크게만 느껴졌다.


10.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누구의 잘못일까?"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누가 나쁜 것일까, 이들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잘못일까, 동물의 잘못일까. 모르고 그런 것일텐데, 어쨌든 일은 일어났잖아? 무작정 옳지 않은 일을 했다고 어떠한 인과관계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들을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였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아무리 그래도, 정이 있다면 그렇게 해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세상은 좋지 않으니까. 그럼 세상이 나쁜 걸까? 질문은 반복해서 돌아간다. 누군가의 잘못 같으면서도 그 잘못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돌아가기엔 아무에게도 손가락질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럼 굳이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할까? 왜 굳이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론적으로는 그 생각을 이해하고 마음에도 입력하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살아온 삶으로 인해 만들어진 마음은 힘이 세다. 내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제 3자이기에 이렇게 질문이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의 잘못도 아니예요, 또 그렇게 허무하게 말하기엔 실제로 있을 당사자일 누군가에게는 억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남의 일이라고 막말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무런 답도 필자는 내놓을 수 없다고 셍각한다.

포스터만 보고 동화 속의 이야기를 상상하던 필자의 지난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공연을 보면 충격이 클 것이다. 진짜, 정말, 그런 내용일 줄 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바닷속 이야기는 뭘까, 개가 수영을 하나? 개가 잠수를? 미리 말을 해두자면 해일은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냥 혹시 저와 같은 관객이 있을까 이 부분은 미리 설명한다. 그렇다고 기대를 버리고 가란 말은 아니다. 생각보다 이 부분을 어떻게 연극으로? 라는 의문보다 훨씬, 예상치를 뛰어넘는 공연으로 연극은 즐거움을 선사해주니까.

이 연극은 "사랑의 힘"을 말해주는 공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처럼 일생에서 열렬하게 중요하다고 느껴본 무언가가 아직 없었던 사람이라면 간접적으로 크게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것, 굳이 연인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사랑의 힘은 이성까지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이 글의 마지막 세 번째 줄은 이렇게 남기고 싶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짐승, 그 사랑의 힘에 대해 보고싶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영화, '그 개'에 대한 리뷰를 이쯤에서 마치도록 한다.


그 개_최종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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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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