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그 개>, 고통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로 향한다 [공연]

포스터 속 바다의 색, 가장 따듯한 동시에 가장 차가운 색이었다
글 입력 2018.10.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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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을 해도 될까?

이럴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나쁜 의미는 전혀 아니다.

이 연극이 나에게 전해준 이야깃거리를

오랫동안 생각하며 행하며

그렇게 나의 삶에 새기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 개_최종포스터.jpg
 


시놉시스


"괜찮아,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야."


저택의 운전기사인 아빠와 둘이 살아가던 중학생 해일은 우연히 유기견 무스탕을 만나 우정을 키우고, 분홍 돌고래 핀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며 비밀스런 속내를 도화지 위에 펼쳐나간다.


그 무렵 위층에 이사 온 선영 가족을 만나게 되고, 난데없이 욕을 뱉는 틱 증상에도 애정과 위로를 보여주는 선영의 믿음에 해일은 웹툰 작가의 꿈을 점점 키우게 된다.


그러다 해일은 아빠를 대신해 장강의 반려견 보쓰를 산책시키러 저택에 드나들던 중, 장강과 아빠가 없는 빈 저택의 정원에 영수와 별이, 해일과 무스탕이 드론을 날리러 가는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소리 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포스터의 색감, 공연 연습 사진을 보며 유쾌하게 진행되는 극이리라 짐작했으나 그 짐작을 산산조각 내버린 연극이었다. 철저하게 뼈대만 남긴 시놉시스, 자세한 줄거리가 없었기에 더욱 이 연극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포스터의 색깔을 보며 나는 희망차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우당탕탕 야단법석 담았으려니 아주 가볍게 지레 짐작했다. 그렇게 쉽게 판단하고 짐작하려 든 나를 꾸짖는 듯 연극 <그 개>는 쉴 새 없이 나를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우울한 이야기로 빠져들게 했다.



― 거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난 후 세상의 변화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아주 작은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세상의 고통은 어쩌면 제일 약한 존재들로 흘러들어간다. 이 작품에서는 해일과 무스탕일 것이다. 해일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작품이다.


김은성 작가



고통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로 향한다. 절대적으로 가장 불행한 고통이 무엇인지 찾아보자는 말도 아니고, 서로의 고통을 비교하여 겨뤄보자고 배틀을 신청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봐야 한다. 김은성 작가의 말처럼 해일과 무스탕이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한다. 어떤 세상인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9. 그 개_해일과 무스탕 영수와 선영 장강과 보쓰.jpg
 


갑질을 일삼는 회장 장장강을 보며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의 인생 굴곡과 자신만의 사연에 빠져 자신보다 더 연약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전혀 살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비극은 장장강의 손에서 장장강의 돈으로 뻔뻔하게 꾸며졌다.



5. 그 개_해일과 무스탕 영수 별이 선영.jpg
 


장장강과 그의 반려견 보쓰가 만들어낸 비극은 약한 존재에게로, 그리고 그 약한 존재보다 더 약한 존재에게로 차례로 던져졌다. 마무리는 가장 약한 존재에게로 한꺼번에 안겼다. 해일이와 무스탕,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어린 별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별이는 이미 떠났고, 그 아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불행이 당도한 곳은 해일이와 무스탕의 세상이다. 해일이가 그리는 웹툰 ‘어비스 러브’는 끝을 맺지 못했다. 깊은 바다를 모험하는 대신, 그들은 바닷가에서 이별한다. 서로를 영원히 떠나보낸다. 어비스 러브의 연재 중단, 무스탕과의 이별, 해일이의 끝은 모두 타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학생 해일이의 의지로, 유기견 무스탕의 처지로 그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험한 세상을 미소, 바닐라 같은 부드러운 이름으로 살 수 있겠냐며  해일, 무스탕이라고 강인한 이름을 주었는데…… 이제 정말로 이 험한 세상을 강인한 이름을 지지대 삼아 꿋꿋하게 견디며 버티며 떠돌며 살아가야 한다. 허나 이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강인한 이름을 가졌어도 결국에 그들은 고통을 모조리 떠안고 이별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란 꾸준히 되뇌는 자기암시일지도 모른다. 가혹한 주문(注文) 그리고 잔혹한 주문(呪文)일지도 모른다. 강인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살라고, 그렇게 살아남으라고.


마지막으로 바닷가에 가 무스탕의 머리를 묶어주던 해일이의 표정, 그리고 해일이의 손길에 가만히 자리를 지키던 무스탕의 표정이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해일이와 무스탕의 표정이 너무나도 잘 보여서, 그 표정과 목소리는 누군가의 것과 똑 닮은 듯해 보여서 나는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11. 그 개_ 해일(마지막 장면).jpg


연극을 보던 날 비가 왔다. 하늘도 흐렸다. 연극이 끝난 후 비는 그쳤지만 길에서는 비에 젖은 냄새가 났다. 바닥에서는 차박 차박 옅게 물기를 품은 소리가 났다. 지하철을 타려다가 빗물에 불어버린 것만 같은 세상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어서 일부러 버스를 탔다.


눈물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서럽게 울어본 적이 있다. 그때의 내 시야처럼 세상은 뿌옇게 축축하게 물에 젖어있었다. 해가 다 진 늦은 밤이라 하늘은 어두웠고 세상의 빛은 물기에 번져 보였다.


버스 안의 사람들도 보였다. 늦은 퇴근길인지 혹은 주말을 앞두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인지 왠지 피곤하지만 들뜬 표정의 회사원, 술 냄새와 커피 냄새가 섞여 나던 아저씨, 음악을 들으며 창가에 고개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던 학생, 저들끼리 키득키득 웃으며 휴대폰 속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커플.



3.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연극을 본 후 나에게 남은 것은 퉁퉁 부은 눈, 침울하게 가라앉은 마음, 그리고 다시 이 침울함을 털어내고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다. 또한 ‘유기견’이라는 단어는 유기된 개 혹은 강아지들을 지칭하는 표현 그 이상이 되었다. 삶의 다양한 면을 함축하는 단어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유기견이라는 것, 고통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로 흘러든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모두 유기견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서로를 돌봐주고 살펴주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떠오른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록해둔다.






<그 개>
- 2018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



일자
2018.10.05(금) ~ 10.21(일)


시간
평일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7시
일 - 오후 3시
화 - 공연없음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20분


*


문의
서울시극단
02-399-1114



예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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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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