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렇게 또 현실을 마주해

연극 '그 개' 리뷰
글 입력 2018.10.15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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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 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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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 이후로 오랜만에 세종 M 씨어터를 찾았다. 광화문 앞에 행사가 있어서 그런가 극장 주변에도 사람이 북적였다. 처음 앉았을 때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무대였다. 가장 넓은 부분은 마치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고, 살짝 높은 무대는 테라스처럼, 그리고 맨 뒤에 가장 높은 무대는 언덕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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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했어"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처음 시놉시스만 읽고 프리뷰를 작성하면서 상상했던 극의 내용과 너무 달라 놀랐다. ‘이런 내용일 줄 몰랐다’가 나의 첫 감상평이었다. 막연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지 않을까-생각했던 나의 안일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전개였다.


여자아이를 극의 중심 화자로 삼은 것이 좋았고, 여자아이와 강아지가 극의 중심적인 흐름을 이끌어가는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두 시간이라는 공연 시간 중 반은 여주인공 해일 역을 맡은 배우가 혼자서 대사를 친 것 같다. ‘투렛 증후군’을 가진 여자아이를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맡은 역할과 표현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덤덤하고 한편으로 무심하게까지 느껴지는 대사들에 객석에 앉은 내가 아팠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숨 쉬던 공기가 해일에게는 숨을 막던 물이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우는 대신, 해일은 그림으로 말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곁에는 해일처럼 물속을 헤매던 무스탕(해일을 만나기 전에는 ‘바닐라’)도 함께였다.



5. 그 개_해일과 무스탕 영수 별이 선영.jpg

 


이상은 현실 앞에 힘을 잃고



선영과 영수는 극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이상적이다. 그들의 모습은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지만, 그들이 하는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한 번 받은 상금이 고정 수입으로 집계되어 의료보험료 3만 원이 올라 부담된다.’ 어쩜 이렇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는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별이’를 위해 격일로 근무를 나가고, 해일의 투렛 증후군이 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아이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는 모습까지 놀랍게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영과 영수는 현실에 없을 법한 유니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투렛 증후군 때문에 원하지 않게 심한 욕을 뱉어야 하는 해일을 곁에 두고 그림을 봐주고 아이를 맡기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절망하고 비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씩씩하고 밝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무대 아래의 한 사람 한 사람과도 닮아있었다.



2. 그 개_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별이의 생일파티).jpg
 


그러나 해일과 무스탕의 행복한 시간, 선영과 영수, 그리고 별이의 행복한 시간도 금방 끝나고 만다. 이상은 현실 앞에서 그렇게 힘을 잃는다. 제약회사 장 회장의 개 ‘보스’가 별이를 물어 결국 별이는 목숨을 잃게 되고, 선영은 빛을 잃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갔더라도 일찍 말했다면, 서류를 메일로 보냈더라면, 의료보험료 3만 원을 그냥 냈더라면...‘사람이 미치면 왜 뛰는 줄 알아?’라면서 무대를 정신없이 뛰는데 그 처절함에 함께 울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보스의 잘못을 모두 뒤집어쓴 것은 무스탕. 돈 앞에서 안 될 것 없다는 장 회장의 몹쓸 신조는 여기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무스탕 앞에서 속내를 털어놓고 함께 놀던 해일의 행복한 시간도 끝이 난다. 봉투 하나로 없던 잘못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에세이 작가를 두고 혼자 착각하고 스토킹(그 먼 LA까지!) 하고 종국에는 네가 여지를 줬다며 작가를 탓하는 장 회장의 모습이 전혀 놀랍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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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유기견이야



한 번 세상에 버림받았던 사람들은 그렇게 다시 한 번 버림받는다. 꿈을 이루지 못했던 선영은 자신의 빛이자 꿈이었던 아이를 잃고 절망한다. 해일은 무스탕을 다시 버려야만 했다. 해일은 무스탕을 잃었고, 자신을 조건 없이 지지해주던 엄마, 별이, 그리고 선영을 잃었다. 해일은 그렇게 세상을 잃고 다시 혼자가 된다. 유기견 바닐라에서 잠시 해일의 친구 무스탕이 되었던 ‘그 개’는 다시 이름 없는 ‘그 개’가 된다. 죽어야 하는 그 개, 버려야 하는 그 개, 두 번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되는 그 개.


 

10.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세상의 고통은 어쩌면 제일 약한 존재들로 흘러들어간다. 이 작품에서는 해일과 무스탕일 것이다. 해일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작품’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도 있듯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보스와 앉아 쉬는 장 회장의 삶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사실 장 회장의 몹쓸 착각과 무례한 언행을 생각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주변에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러나 버려지는 고통과 아픔은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바싹 다가선다. 그리고 연극 ‘그 개’는 그 모든 과정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씁쓸하고, 그래서 더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 개’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 답을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11. 그 개_ 해일(마지막 장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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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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