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답없는 변화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 [도서]

글 입력 2018.10.1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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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무지한 것이 부끄럽지만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래도 책을 받기 전에 좀 찾아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 알아보니, 순례길이니까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를 위해 걷는 길인가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관광 상품으로도 나왔으며 최근에는 가수 그룹 god가 TV 프로그램에서 걷기까지 하니 꽤 유명한 길이 분명했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지! 단편적인 정보만 가진 머리와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와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술술 잘 읽히고 마음 깊숙하게 와 닿는 책이다. 시험기간이라서 더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만 한 번 손에 잡히면 100페이지씩은 논스탑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걷는 길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특색과 이야기를 가진 것이 눈을 사로잡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대화 속에서 배울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무언가는 찾지 않을까?'하는 막연함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었다. 서론에서 이 말을 읽었을 때 정답이 없다는 말은 더욱더 막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구간, 두 구간, 저자와 함께 걷다 보니 나와 타인을 통한 무수한 앎이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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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제대로 묻지 않고 살았다




웨인의 말에 의하면

쐐기 벌레들의 행진은

자그마치 6일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사람은 과연 다른가?

무작정 앞에 가는 놈의 꽁무니에

머리를 박고 따라가는

행렬형 쐐기벌레들과 우리는 정말 다른가?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가는 길에서 저자와 다른 순례자들은 쐐기 벌레 무리를 만난다. 순례자들 중 한 명인 웨인은 쐐기 벌레들은 자기 앞의 벌레만 무작정 쫓아가며 절대로 무리에서 이탈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우리의 삶도 다를게 무엇인가. 남들이 하고, 남들이 좋아하며 우러러보는 일을 하면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인가?


나 역시 지금까지 쐐기 벌레 같은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의 시선과 가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지만 그렇다고 남들의 가치에만 초점을 두고 살다 보니 내가 만들어 나가는 삶이 아니라 남들이 만들어 준 삶을 그냥 생각 없이 따른 것이다. 공부만 하느라 내가 진정으로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잘하는지, 대학교를 꽤 다닌 지금까지도 실마리조차 잡기가 힘들다. 웨인의 말에 따르면 쐐기 벌레들의 행진의 끝은 죽음이라고 했다. 이대로 생각 없이 내 앞사람을 따르면 정말 죽겠구나 싶다.


수많은 정해진 가치 속에서 그나마 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왜'냐고 묻는 것이라고 한다. 왜 내가 이걸 해야 하고 왜 내가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또 질문하다 보면 쐐기 벌레의 끝없는 행진에서 잠시 비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더 넓은 세상을, 이를테면 나를 향해 쭉 뻗어 있는 산티아고행 길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까미노의 마법,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타난다.




까미노에서는 몇 가지 마법이 일어난다.

첫 번째는 만날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마법은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나바레테에서 아조프라까지 가는 길은 비가 무진장 많이 왔다고 한다. 책을 쭉 읽다 보면 스페인의 날씨가 굉장히 예측하기 힘든 편이라 비가 갑자기 미친 듯이 내리는 날이 잦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날이 이 날이었다.


비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이고 배낭 안에 있는 옷이 전부 젖어버린다면 누구나 걸을 힘이 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지친 그때, 저자는 한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나 비 속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선물 받는다. 그림 속의 자신이 마음에 든 그녀는 목적지인 나헤라에서 더 걸어가서 아조프라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조프라의 알베르게(순례자를 위한 숙소)에서 같은 순례자인 이스테트의 정성 어린 환영과 호스피탈레로의 의류 건조 서비스까지 받았다. 딱 필요한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살다 보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나타나는 경우가 꽤 있다. 잘 모르는 곳에서 몇 시간을 굶었을 때 나타난 밥집이라든가, 어딘가에 갇혔을 때 밖에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지나가는 것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일까지 누구나 겪어봤을 테다. 만약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은 만약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보거나 아니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만한 여지를 줘 마음에 든다. 차분히 기다릴 것. 그리고 필요한 그것이 오면 감사히 즐길 것.




피를 나누지 않았다고 해서 가족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족욕을 하면서 나는 가족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독일, 한국에서 온 사람이

각자의 답을 찾는 여정에서 만나,

함께 걸으며 응원하고 위로를 건네고

아픔의 상처를 나눴다.


피를 나누지 않았다고 해서

가족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까미노 순례길 후반부에, 저자는 까미노 인연을 만난다. 까미노 인연이란 산티아고 길에서 필요한 걸 얻게 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저자가 만난 까미노 인연은 루시, 론, 헨드릭, 데이브 총 4명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고 연령대도 서로 제각각이지만 운명의 단짝을 만난 것처럼 5명이 너무 잘 맞아서 산티아고에 다다르는 막바지 바로 전까지 같이 걸었다고 한다.


처음에 저자는 산티아고 길은 혼자 묵묵하게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성찰하면서 정답을 찾는 순례길이라고 여겨 다른 사람들을 피해 혼자 보내려고 노력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까미노 인연을 만나면서 혼자 걸으면서 얻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얻는 깨달음이 더 많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들은 서로의 아픈 부분을 꺼내어 얘기할 수 있고 또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 책 제목처럼 위로를 얻는 순간이다.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건네는 이들의 관계를 가족이라 한들 태클을 거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운명이 그들을 순례길로 이끌어 서로를 이어주고 끈끈한 관계가 되는 이 과정은 보는 사람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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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진부한 비유겠지만 이것 만큼 잘 맞는 비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로 인생을 압축해 놓은 길이다. 정답은 없지만 무수한 깨달음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것,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조금씩 꾸준히 변화하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나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진 선한 결과라는 것. 완전히 인생 그 자체다.


단 300여 페이지로는 아마 저자의 순례길 모두를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는데 이 책을 다 본 지금은 나 역시 똑같은 길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나의 까미노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저자가 심어놓은 씨앗이 언젠가 싹트길 바라며...



[송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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