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돌격 건설, 누구를 위한 돌격인가 [문화 전반]

재개발, 재건축...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글 입력 2018.10.1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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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스틸컷.jpg



“나쁜 사람은 없다는 거… 나쁜 상황이 있는 거지.”



12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신과 함께-인과연>은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와 웹툰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는 거주민을 생각하지 않는 무차별적인 재개발입니다. 부모님도 없이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현동이와 할아버지는 고물을 주워다 판 돈으로 판자집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곧 있을 재개발 때문에 집을 떠나야 하지만 고물 팔아 먹고 사는 처지에 다른 곳으로 갈 돈도 없습니다. 사채업자들과 용역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빼라고 위협하죠. 그런데 이런 상황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닌가요?

 

2009년 1월 20일 서울특별시 용산에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용산 4구역 재개발의 보상 대책에 반발해 온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 명은 그 날 새벽에도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합니다. 무려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이 끔찍한 사건. 우리는 이 사건을 ‘용산 참사’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무리한 강경 진압을 시도한 경찰들을 욕했고,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동료와 경찰관을 죽였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었죠. 김일란, 이혁상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에서는 이 사건의 희생자들이 서로를 탓하며 잔인한 말을 내뱉는 것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용산 참사 같은 일은 어느 한 사람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당시 서울시는 ‘도시환경 정비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재개발과 재건축 예정 구역을 책정하고 이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 전역에 걸쳐 618곳, 2318만 제곱 미터에 이르는 땅을 재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뉴타운으로 지정한 면적도 2406만 제곱 미터에 달했습니다. 이는 1973년부터 2008년까지 36년 동안 지정된 재개발 구역 면적 1939만 제곱 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도시에 살아가는 거주민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재개발이었던 것이죠. 영화 속 성주신(마동석)의 말처럼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서울시 정비 예정 구역.JPG


 

재개발 재건축 NO! 도시재생 뉴딜사업!



재개발과 재건축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낸 용산 참사 이후 사람들은 철거식 재개발과는 다른 도시 개발 방법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연구와 고민을 하던 끝에 지금 주목받고 있는 방법이 바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5년 11월 ‘2025 서울시 도시재생전략계획’을 발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죠. 그 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지금 가장 핫한 장소 을지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입니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다시 세상의 기운을 모은다 世運’는 의미의 프로젝트입니다. ‘한 때 ‘쌀가게와 연탄 가게를 빼고는 서울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곳’ 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발달했던 세운상가와 그 주변 일대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일으키겠다는 것이죠.


다시 세운 프로젝트.jpg


먼저 서울시는 을지로를 걷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도시 보행권을 되돌려 주겠다는 계획입니다. 공중보행교 및 녹지축을 조성하여 2017년 9월 1단계 사업을 마친 지금, 서울시는 2020년까지 삼풍상가부터 남산까지의 구간을 정비하여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은 도심사업과 문화, 관광의 연계를 통해 도시 자생력의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보수를 마친 세운상가 3층에는 청년 스타트업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였고 로봇, 3D 프린팅, 스마트 의료기기 등 기업의 창작 창업 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세운 메이커스 큐브, 거대한 보일러실을 개조한 교육/전시 공간 세운베이스먼트, 청년 기업 입주 공간, 기술 강의실로 활용이 가능한 SE:CLOUD 를 두어 을지로를 4차 산업혁명의 혁신지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해 청년 문화예술가들에게 향후 5년간 임대료 상승폭을 9퍼센트대로 제한하는 건물주와 임차인 간의 상생 협약을 이끌어내면서 을지로에 입주한 문화예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을지로가 핫플이 된 배경에는 서울시와 을지로 주민들, 그리고 문화예술가들의 공존을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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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라이트웨이 축제




다채로운 천변 풍경. 개천에서 용이 나는 비결?



지난 8월 18일에 이뤄진 네이버 열린연단 근대성 강연 30강. <두 개의 청계천 : 천변 풍경의 시간여행>에서 강홍빈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청계천변, 그러니까 을지로와 종로 일대의 다채로운 풍경은 면밀한 도시계획과 같은 정해진 대본에 따라 유능한 연출자가 잘 지휘하여 창조해낸 드라마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인간이 부딪는 생활 공간이 그렇듯 혼란스럽고 경쟁적이며 협력적인 상호작용이 빚은 진화의 결과입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 못난다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저는 다양한 풍경을 머금을 수 있는 이런 도시 공간이 정말 용이 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저명한 도시학자 피터 홀(Peter Hall)은 그의 저서 <문명 속의 도시>에서 혁신의 조건들을 찾기 위해 실증적인 연구를 많이 했는데요. 그는 지배적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이주민이 유입되며, 치열한 경쟁과 함께 일정한 상호 신뢰와 공동체 의식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혁신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혼란 속에서 혁신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조건을 을지로와 종로 일대에 대입해 봅시다. 여러 차례의 재개발 시도가 있었으나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못한 철거 중심의 재개발은 지배적 질서의 붕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업을 위한 공간을 찾아 들어온 청년 창업자들, 을지로를 살리고 있는 청년 문화예술가들은 새로운 이주민의 유입이라 할 수 있겠죠. 또한 이 곳에 원래 살고 있던 제조업자들, 청년 창업자들, 그리고 문화예술가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을지로의 부흥을 탐구한 책 <다시, 을지로>는 을지로의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들은 일종의 개척자라는 면에서 동질감과 연대 의식, 상부상조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을지로에서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삶에 서로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기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기대기도 한다.”


- <다시, 을지로>77페이지



하나의 지배적인, 통일된 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이 곳 청계천변은 도시재생 사업과 함께 다시 주목 받으며 사람들을 다시 모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용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죠.



 

바보 열 명이 천재 한 명보다 낫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보 열 명이 천재 한 명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이뤄졌던 철거 위주의 재건축, 재개발 계획은 정부 혹은 어떤 기관의 관점에서 쓸모를 판단하고 쓸모 없다고 여겨지면 ‘돌격’하여 ‘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하나의 지배적인 질서 아래 그 질서에 통용되지 못하는 것은 배제하는 식의 도시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도시계획의 폐해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대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의 을지로를 봅시다. 그런 도시 계획이 아니더라도, 제조업자, 소상공인, 문화예술가, 청년창업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든 복잡 다양한 공간을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근대주의 도시계획은 도시를 위계적인 눈으로 보았습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을 전체를 위해 작동하는 부분으로 보고 각 부분들의 기능과 용도에 따라 분류하고, 위계를 정하고, 질서가 통용되지 않으면 거침없이 밀어버렸습니다. 지금껏 부품처럼 여겨졌던 각 구역의 도시들은 모두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동하는 도시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볼 때 걷고 싶은 도시, 살 맛 나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요? 글을 쓰고 나니 앞으로 을지로에 더 자주 놀러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서울의 다른 곳들도,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들도 이렇게 재미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다시 을지로>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광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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