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극이란 붓으로 그린 삶, 연극 <그 개>

나로 대변되는 내 인생을 위해
글 입력 2018.10.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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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연극 <그 개>

예술감독 김광보
작 김은성
연출 부새롬



2. 그 개_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별이의 생일파티).jpg
 

<그 개>는 잔인한 연극이다. 대답의 생략을 통해 리듬감 있게 구축한 대화 양상이나,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각각의 이야기를 짜깁기한 방식, 그리고 소소하게 존재하는 코미디 적 요소로 인해 겉보기에는 극 전체가 경쾌한 톤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이 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미처 생각 못 한 삶에 대한 질문을 작품은 또렷이 던지고 있다. 꽤 집중을 필요로 했던 무대가 막을 내리면 이제 답할 차례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9. 그 개_해일과 무스탕 영수와 선영 장강과 보쓰.jpg


“괜찮아, 우리는 모두 유기견이야”라는 해일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극 중 인물을 가장 약한 존재에 비유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불행 속에서 매 순간 닥치는 위기를 피하고자 애쓴다. 아내와 헤어지고 틱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혼자 키우며 운전기사로 일하는 상근, 건강보험료 인상에 휘청이며 가난에 허덕이는 선영과 영수, 어릴 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 장강의 모습에는 이 세상을 ‘살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 담겨있다. 특히, 상근의 딸이자 극의 주인공인 해일과 반려견 무스탕은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조건이 집약된 캐릭터로, 자신을 진정 보호하는 법도 모른 채, 그저 무서운 건 피하고 좋은 건 즐기며 살고 있다.

이처럼 <그 개>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이들에게 잔인한 행복을 준다. 틱장애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는 해일에겐 맘이 잘 맞는 유일한 친구인 유기견 무스탕과 자신을 따뜻하게 아껴주는 이웃사촌, 선영과 영수가 등장한다. 가난에 지친 이들 부부에겐 아들 별이가, 홀로 외로웠던 장강에겐 첫사랑처럼 마음을 들끓게 하는 상대가 나타나는데, 마치 지쳐서 헤진 삶에 전에 없던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머지않아 다가오는 비극을 더 극명히 표현할 재료일 뿐이다. 작품은 이미 힘든 이들에게 그들이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불행을 안기고 모질게 돌아선다.

해일에게 무스탕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작품은 극 중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버거운 무게를 지우고 그저 감내할 시간만을 남긴다. 관객은 여느 열다섯 살과는 사뭇 다른 성장기를 보내는 이 아이와 마주한다. 이들은 해일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 충격을 저마다 그리며 이 아이에게 닥친 고된 세상을 안타까이 바라보게 된다.

 
8. 그 개_영수와 선영.jpg
  

그러나 주목할 점은, 작품의 인물들은 결국 또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닥칠 또 다른 위기에 만신창이가 되어도 다시 발을 떼고 살아갈 것이다. 왜? 만신창이가 되어 밟혀도 끝까지 살아낸다.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까지 살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곧 ‘나 자신’의 이유가 될 것이고,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는 내 삶의 기반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로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면, 변화무쌍한 인생이 무슨 그림으로 닥쳐도 결국 그 일부가 되어 나아갈 수 있다.

이유를 갖고 완성해 온 인생의 그림들은 그렇지 못한 것과 다르다. 주체가 되어 나와 내 삶을 볼 줄 아는 시각은 우리가 인생을 살며 마주치는 사건들을 더 큰 틀 안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분별을 준다. 시작점이 다르기에 각각이 펼치는 양상은 설령 모양이 같다 해도 결코 같을 수 없다.

연극 <그 개>를 관람한다면, 그저 불행한 소시민의 이야기보다는 그 기저에 깔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방점을 찍자. 하나의 비극을 온전히 겪고 다시 걷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이것이 곧 해당 삶 전체를 지탱해줄 무언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객석에서 받은 이 물음을 내 안에 다시 던져 나름의 답을 찾는다면, 그대의 그림에 당당히 주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5. 그 개_해일과 무스탕 영수 별이 선영.jpg

10. 그 개_해일과 무스탕.jpg
 




그 개
- 2018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


일자 : 2018.10.05(금) ~ 10.21(일)

시간
평일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7시
일 - 오후 3시
화 - 공연없음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20분




문의
서울시극단
02-399-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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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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