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서진 일상의 파편 위에서 - 연극 그 개

글 입력 2018.10.1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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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_최종포스터.jpg
 
 

아무 탈 없이 평화로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탁 트인 푸르른 정원에는 주인공 아이와 순진무구한 개 한마리가 즐거이 뛰어다녔으며, 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 감히 그들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 세상도 행복이 가득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누가 알았던가. 우리의 하루라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섬세하게 짜여진 천 같은 것이어서, 도리어 실밥을 하나 풀어버리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견고하다고 생각되었던 일상은, 행복하다고 느꼈던 일상은 사실 온 세상의 기운과 운명, 인연 그런 모든 조합이 완벽히 합을 이루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게 잘 풀려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때 아주 작은 일상의 일로 모든 것이 부서져버린 한 날들. 연극은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잔잔함 뒤에 숨어 있는 잔혹하고 괴로운 현실을 강제로 끄집어 내어 내 눈앞에 자꾸만 들이밀었다.



1. 그 개_ 해일.jpg
 
 

주인공 아이는 마치 틱장애처럼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욕설에 힘들어한다. 이런 자신을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주변 인들의 시선에 더욱 힘들어한다. 사람들은 수근수근 얘기를 나눈다. 저 아이는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고. 정서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아이라며 또 수근수근. 때로는 그냥 그녀를 비웃고자 쉽게 던지는 날선말들 속에서 주인공 아이는 더 마음이 버겁다. 그런 날일 수록 왜일까, 욕은 그치기 어렵고 도리어 더 심하게 나온다. 이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삶의 노동에 바빠 그녀를 제대로 봐주지 못했지만, 옆집에 이사온 당찬 신혼부부는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그녀가 미술학원 선생으로 불렸던 여자는 더 강인하고 대단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당장 생계를 먹고 살 걱정에 최대한 지출을 줄이려 버둥이며 살고 있지만, 주인공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여이 여기며 기꺼이 화답해주었다.



2. 그 개_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별이의 생일파티).jpg

 

문제는 그 개와 함께 정원으로 들어가 드론으로 놀기 시작했을 때. 신혼부부의 아이가 개에게 물려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범인으로는 주인공 아이의 개가 지목된다. 하지만 사실 범인은 정원의 주인인 큰 사냥개였는데. 이 때부터 자신의 내면에 조금씩 쌓여왔던 아픔과 괴로움이 외부 세계로 악화되어 표출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만다. 아이를 잃은 신혼부부는 지금까지 다져온 긍정은 아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이가 개에게 물리던 그 순간 논의하고 있던 그놈의 세금 감면 문제, 준비 서류, 이 하잘것 없는 문제로 아이를 잠시 혼자 두었던 것을 자책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이 부분에서 사람이 내적으로 망가져가는 모습을 아주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공 아이는 마음의 부채감으로 자신을 응원해주던 단 하나의 작은 세계에 순수히 다가갈 수 앖게 되고, 더욱이 범인으로 지목된 그 개는 안락사의 위기에 처한다. 정원 주인집 개도, 주인집 사장도 삶이 각박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지만 그들이 살기 위해 죄 없는 개가 안락사 위기에 처하게 됨이 괘씸하고 마음 아파 변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11. 그 개_ 해일(마지막 장면).jpg

 

모든게 어찌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이렇게 꿈과 희망을 찾기 힘든 연극은 난 꽤나 오랜만에 보았다. 무조건 해피 엔딩으로 결말을 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희망을 주었다가 빼앗긴 느낌 때문일까 나는 결말 이후에 참을 수 없는 찝찝함으로 객석에 계속 남아있기 힘들었다. 결국 우리 삶이 이렇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잘 굴러가는 듯 싶다가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었을까. 무어가 됐든 나로서는 현실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보기 힘든 연극이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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