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자인 잡지 <CA> #240 ‘책’을 읽다 [도서]

글 입력 2018.10.1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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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뉴필로소퍼’와 ‘우먼카인드’, 합정 땡스북스에서 만난 매거진 ‘F’, 그리고 이번에 ‘CA’를 읽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이 잡지는 디자인 잡지라는 것을 글자의 배치를 통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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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얹힌 ‘DESIGN MAGAZINE, CA, 2018 SEP/OCT, #240, 을지로운 창작 생활, 책 디자인의 구조’ 글자들은 하나의 폰트도 겹치지 않고 한 가지 크기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으며 제각각 자신을 주장한다. 일단 제목이니까 ‘CA’를 메인으로 내세우는 것 같지만 눈길이 머무는 것은 찰나에 불과하고 다른 말들에 시선이 움직인다.

책을 펼치고 안을 한번 후루룩 넘겨보면 이미 표지에서 짐작했듯이, 현란한 레이아웃 소용돌이를 볼 수 있다. 잡지를 가로로 들고 읽어야 하는 곳도 있었고, 아예 페이지 가로 길이를 짧게 해서 포인트를 준 곳도 있다. 읽는 행위 외에도 손을 움직이는 행위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좀 더 즐거웠다.

다 읽고 나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을 세 군데로 압축해보았다. #을지로, #책디자인, #일러스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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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가 뜨면 보통 거리나 골목을 중심으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고 작은 가게들이 사라진다. 그렇게 새로운 번화가가 생긴다.

을지로는 그런 의미에서 꽤 기이하다.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고 독특한 가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그 거리에는 중심이 없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조용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과 간판조차 없는 그곳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을지로 구역 자체가 원래부터 정돈된 곳이 아니었고 해리포터의 움직이는 다리처럼 건물끼리, 내부 계단끼리 얼기설기 엮어져 있다고 한다. 서울의 도심지 한 귀퉁이에서 여전히 개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꽤 입주해있다.

여러 개 실린 예술인 인터뷰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두 개를 골라 보았다.


인터뷰1 – 도한결, 그래픽 디자이너

“간판이 아예 없거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숨은 공간들이 많아요.
... 4층에는 없던 복도가 5층에서 나타나기도 하고요.”

을지로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상상하게 해 준 말이었다. 간판이 없으면 원하는 상점을 찾기 위해 물어물어 다니거나 몸으로 익힐 수밖에 없다. 지도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면 정말 그 동네 거주민들만 알 수 있다. 복잡하게 꼬인 건물들 사이사이를 걸으며 익숙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하고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유사 업종끼리 모여 시너지를 내는 집적효과는 예술가에게도 해당 된다. 인터뷰이는 재료를 다루는 가게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을지로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 둘 예술가가 모이면 새로운 ‘예술적인’ 거리가 탄생한다.


인터뷰2 스튜디오 플랫플래그 – 염승일 아트 디렉터/ 방지숙 그래픽 디자이너

“동대문 종합시장 – 을지로 5가 목재거리 – 방산시장 – 대림상가 – 을지로3가 조명거리 – 충무로 인쇄소”

외운 듯 빠르게 말하는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가본 곳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곳도 있지만 흐릿하게나마 연결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전에 조명거리에 가봤을 때 생전 처음 보는 조명기구들이 상가 내에 혼란스럽게 놓여 있었다. 저걸 누가 사지라고 생각했지만 나 같은 일반 고객 외에 작업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사가는 것이었다.


소쇼룸.jpg
트위터 @soshoroom


을지로에서 추천하는 장소에 대해서 어떤 바와 쇼룸을 알 수 있었다. 언론에서 몇 번 카페를 보기는 했지만 이런 말은 처음 들었다. 특히 쇼룸은 비슷한 콘텐츠 기획을 해봤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매번 컨셉이 바뀐다고 하니 을지로를 방문할 때마다 슬쩍 들려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1910년 충무로 영화판부터 을지로에서 영화 전단을 찍었고 그 이전인 조선시대부터 서적 인쇄와 활자 제조를 담당하는 주자소가 있었다고 한다. 동대문도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부터 있었는데, 산업의 발전이 저 먼 역사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즐겁고 신기하다.



#책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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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챕터를 위해 페이지를 찾을 필요가 없다. 잡지를 여는 순간 자동으로 열리는 페이지, 그 가운데에 #책디자인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책을 보면 표지, 폰트, 배열, 크기, 디자인, 레이아웃 등을 훑어보는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챕터였다. 옛날 책의 표지와 새로 나온 책의 표지, 출판사 별 표지, 전집 별 표지가 또 다르고 스페셜 에디션 표지도 있다. 폰트나 배열도 보기 좋은 게 있고 불편한 게 있다. 여행 에세이, 디자인 책 등에 경우 사진이 많기 때문에 레이아웃에 상당히 신경 쓴다.


석윤이 디자이너

“책 표지 디자인의 시작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를 잘 봐야 한다.”

리커버 디자인은 일반적인 표지 디자인과 다른 점이 있다. 디자이너에게 실험을 허용한다는 것, 수면 아래 있던 책을 끌어올린다는 것, 번역/편집/교정/교열도 다 새로 하고, 인쇄는 한번 뿐이라는 것 등이다. 확실히 리커버 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으로 책을 만들고 그것이 소장욕구를 자극한다.


참존가 리커버북.jpg


내가 좋아하는 책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커버 북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보고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살까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다른 것을 이미 사서 다음으로 미뤄두었었다. 한정판이라면.. 지금이라도 살까?

알라딘의 굿즈 마케팅에서 시작된 출판사들의 특이한 마케팅 중 리커버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해주었으면 하는 것 중 하나다. 고전 중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매년 쏟아지는 수 만권의 틈바구니에서 쉽게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최근 데미안을 비롯해서 여러 문학 작품들 위주로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으니 참.존.가 외 다른 애장도서 리커버를 기다려 본다.


유지원 디자이너 - 타이포그래피

“한아름 꽃빛 옹이 왕 무늬 셋”

이 무슨 햇빛이 나뭇잎을 선명하게 핥는 소리냐고 한다면, 인터뷰이가 고안한 팬그램의 일종이라고 하겠다. 팬그램은 하나의 짧은 문장에 모든 철자가 들어가서 폰트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한눈에 알게 하는 문장이다. 일반적으로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를 쓰는데, 가로획 중성이 하나밖에 없는 등 치우쳐진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팬그램3가지.jpg

차례대로 함초롱바탕, 나눔바른고딕, 윤고딕 세 가지 폰트를 사용해 본 팬그램이다.

인터뷰이의 프로다운 대담도 인상적이었다. 적절한 타이포그래피를 위해서 글자환경에 대해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면 혹은 화면에서 글자를 아름답게 운용할 때는 그 문자문화권의 공간 관념과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다음 단계로 아름다운 비례를 찾아야 한다.

타이포그래피 속 저자성에 대한 생각도 주의 깊게 읽었다.


“좋은 가독성에 도달하려면 다양한 지식과 이해, 훈련을 갖춰야 한다. 파격을 행하기 위해서는 격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격을 무시하는 시도는 치기와 파행에 불과하다. 일단 가독성을 확보하는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능력을 갖췄다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서서야 ‘가독성만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안마노 디자이너 -그리드와 레이아웃

책의 외부와 내부 구조에 대한 챕터에서 판형, 페이지네이션, 판면 세 부분이 좋았다. 판형은 출판 마케팅에서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책의 크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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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이미지 COPYRIGHT© 2016 BOOKTORY


보통 여행용, 에세이는 국판이 많고 공부용 책들은 크라운판 이상이 많은 것 같다. 사이즈가 커질수록 책을 들고 다니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요즘은 내용은 줄어들고 크기는 작아지는 추세인 것 같다.

페이지네이션은 전체의 흐름을 보고 리듬에 맞춰 섹션 별 분량을 설정하는 작업이다. 인쇄소에서 종이를 16분절하기 때문에 16진법 사고하며 분량을 맞춰나가면 좋다고 한다. 책의 시작과 끝을 정하고 각 챕터 별로 중점을 어디에 둘지 설정하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판면은 페이지네이션과 반대로 전체가 아닌 한 페이지 내에서의 리듬감을 본다. 그 장 내부의  위계, 배치, 밀도를 다루고 인디자인 툴로 정리한다고 한다. 재밌었던 비유는 영화의 개념을 끌고 온 두 부분이다. 판면 안에서의 배치의 미감을 화면에서의 구도라는 미장센에 대입 하고 몽타주, 컷과 컷의 배치로 파생되는 어떤 새로운 의미나 기분들, 느낌들을 내용순서에 적용했다.



#일러스트

이미지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페이스북 보다는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보다는 유튜브가 인기다. 인스타그램을 하다보면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어도 자신의 그림을 올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의 지인도 손그림을 몇 개 업로드 하다가 제의가 와서 합동 일러스트 전시회를 열었다.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공짜로 작품을 보여주는 이곳에서 내 취향에 맞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CA’에서는 우리처럼 취향에 맞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던 기업들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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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브릿지와 티머러스 비스티즈가 협업한 포트넘 & 메이슨 백화점의 포장 디자인


위의 그림들에서 각 차의 특성에 맞추어 알맞은 일러스트레이터 섭외한 결과, 각각 다른 느낌으로 디자인된 차통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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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없음)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금옥당 양갱


인스타그램을 거의 하지 않는 나지만 일러스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최근 출판계에서 그림에세이가 강세이기도 하고 몇 년 사이의 핫한 가게와 골목의 특징이 BI가 도드라지는 인테리어와 제품 디자인 때문이다. 뜨는 동네에는 유명한 가게와 감춰진 가게가 여기저기 있고 방문객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맛과 향 등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겠지만 사람들을 끄는 가장 큰 원인은 특별한 디자인 때문이 아닐까.





CA를 처음 읽으며 마케팅을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책디자인을 다뤄주어서 더 즐겁게 읽었다. 다음 ‘CA’의 디자인은 무엇이 나올지, 11월/12월 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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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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