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나의 인생은 여행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_ 도서 리스본행 야간열차

글 입력 2018.10.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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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책이 정말 궁금해졌다. 영화도 좋았지만 영화가 책의 내용을 다 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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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 교수이다. 이혼을 했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다리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포르투게스”


그레고리우스는 여성이 내뱉은 단 한마디의 포루투갈어를 곱씹는다. 무엇에 홀린 듯 그레고리우스는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 헌책방에 들리게 된다. 그곳에서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슴술사”를 보게 된다. 헌책방 주인이 해석해 준 단 한 문단을 듣고 그레고리우스는 책을 구입한다.


평생 고전어에 시간을 바친 그의 인생. 학생들에게조차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뭐든지 다 알고 있는 완벽한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학교를 떠나 일탈 아닌 일탈을 한 것이다. 단한번도 만나지 못한, 몇시간 전에 알게 된 그 작가를 찾으러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언어의 연금술사 작가인 프라두를 찾아 나서고 책 속의 이야기와 연결된 현실 세계의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그레고리우스 본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그레고리우스는 무작정 떠났다. 가끔 우리도 갑자기 어디로 떠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걸 실현으로 옮기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냥 떠나면 되는 걸 텐데 우리는 왜 고민하고 망설이는 걸까. 나는 이런 그레고리우스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환상 속 이야기, 즉 판타지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레고리우스의 이 일탈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책 속의 한 문단을 읽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다가간 것일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생에서 깨달음 혹은 인생의 전환점은 예고를 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그레고리우스처럼, 판타지 영화처럼, 갑작스럽고 뜬금없이 찾아온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아마데우 프라두의 글귀가 이끌고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지만 철학자 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프라두의 글에는 철학적인 부분이 굉장히 많이 쓰여 있다.

 


완전한 삶, 그건 과연 뭘까? 단편적이고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변하기 쉬운 우리 인생을 생각해 볼 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완전한 삶을 구성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언어의 연금술사 중에서 (p.267)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언어의 연금술사 중에서 (p.279)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스스로를 견디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될 테니까. -언어의 연금술사 중에서 (p.279)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계발할 수 없고 스스로를 향한 먼 여행을 떠나 지금의 자기가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 발견할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언어의 연금술사 중에서 (p.318)


 

이 책을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이지만 왠지 모르게 빠르게 읽혀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인물의 말에는 무슨 뜻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며 모든 인물들에게 이입했던 것 같다.


***


사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레고리우스를 처음 본 사람이다. 아마데우의 동생 아드리아나를 찾아갔을 때. 만약 나의 집에 찾아와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당신의 가족에 대해 알고 싶어요’라는 말을 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런데 아드리아나, 아마데우 프라두의 옛 친구들, 심지어 연인들 까지 그레고리우스에게 모든 걸 털어 놓는다. 이제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왜 그럴까? 우리는 원래 알고 있던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 마음 속 가장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게 더 편할 때가 있다. 아드리아나가 이방인 그레고리우스에게 본인의 오빠 이야기를 한 것도, 가장 소중한 아마데우의 편지를 전해준 것도, 멈춰 있던 시간들을 다시 시작하게 해준 것도. 그녀가 그레고리우스에게 마음을 열었던 이유를 그가 이방인이기에,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마데우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그레고리우스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해 그 어려운 발길을 향한 것일까. 나는 이런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떠올랐다. 3중의 액자 구성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매우 간접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사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감독인 웨스 앤더슨은 20세기 초반에 대해 향수를 느끼게 만들었다. 우린 모두 이상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비록 겪어보지 않았던 시대일지라도 그 모든 순간은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의미 있는 시대 속 아마데우를 동경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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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고대 드라마에 등장하는 적들처럼 한 도시에서 마주 바라보는 언덕에 살면서 서로 두려워하는 마음과 표현할 수 없는 애정으로 묶여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썼다. 두 사람은 침묵에 싸여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한쪽의 침묵이 다른 쪽의 침묵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는 그레고리우스 (p.382)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아마데우 프라두)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썼다. 왜 직접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왜 평생을 아버지와 아들이 그 무서운 침묵 속에서 살아온 것일까. 아버지는 아들이 두려웠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레고리우스는 안경을 벗고 머리를 무릎에 묻었다. 눈물이 이끼위에 뚝뚝 떨어졌다. 덧없음. 프라두가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라고 마리아 주앙이 말해주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 단어를 몇 번이나 소리 내어 발음해보았다. (p.519)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레고리우스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행.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특별한 경험이 부러웠다. 지금 나의 인생은 여행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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